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이 미국 웨스팅하우스(WEC)와 맺은 불공정 계약으로 인해 원전 수출길이 막히면서 우리나라 원자력 산업이 사실상 올스톱 상황에 직면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는 이재명 정부 기조로 볼 때, 국내에서 신규 원전을 건설할 가능성도 없어 국내외 모두 꽉막혀버린 상황이다.
뒤늦게 밝혀진 한수원과 한전이 미국 WEC와 체결한 글로벌 합의문에는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원전을 수주하는 것이 WEC의 배만 불려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비판을 들끓게 하고 있다. 앞으로 50년간 원전 1기를 수출할 때마다 1억7500만달러(약 2400억원)의 라이선스비를 내야 하고, 6억5000만달러(약 9000억원)어치의 물품·용역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독소조항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전1기를 수출할 때마다 WEC는 1조1400억원의 수익을 챙기는 식이다.
뿐만 아니다. 이 '협정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북미와 유럽에 원전을 수출할 수 없다. 수출 가능지역은 체코와 중동, 중앙·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만 가능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하면 원전 원료인 우라늄을 100% 공급받아야 하고, 그외 지역은 50% 공급받는 조건도 들어있다. 심지어 독자개발한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원전을 수출할 때에도 WEC의 검증을 받도록 돼 있다. 이 협정서가 체결되면서 한수원은 실제로 스웨덴과 슬로베니아, 네덜란드, 폴란드 등 유럽 국가의 원전 수주 사업에서 철수했다. 체코 원전수주를 놓고 '유럽시장 교두보'라고 했던 평가가 허장성세였던 셈이다.
공기업인 한수원과 한전이 이처럼 불공정한 계약을 WEC와 체결한 배경은 체코와 원전 본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정부는 체코 원전 수주를 대단한 업적으로 알렸는데 WEC가 원천기술 사용에 대한 승인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송을 걸었고, 한수원과 한전은 본계약을 앞두고 제기된 소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WEC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결국 이 협정서에 발목이 잡혀 한수원은 원전 수출지역도 제한받는 데다, 수출할 때마다 1조원이 넘는 돈을 WEC에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WEC가 수출을 허락한 중동과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원전을 수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원전 건설을 앞두고 있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와 중국이 선점하고 있고, 아프리카 역시 마찬가지다. 러시아 원자력공사 로사톰은 이집트 원전을 수주한 것 외에 아프리카 지역에서 최소 20개국과 원전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중국도 자체 개발 원자로인 화룽 1호와 기술 이전·건설·금융 등 패키지를 만들어 아프리카 국가들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원전 신설은 국내에서도 쉽지않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올초 확정됨에 따라 오는 2038년까지 신규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 건설은 확정된 사안이지만, 지역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는 이재명 정부의 기조대로라면 원전 추가 건설은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확충하려면 원전을 늘릴 수가 없기 때문에 신설할 계획인 대형 원전 2기도 사실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원전업계 한 관계자는 뉴스트리와 통화에서 "원전 수주 사업을 주도하던 한수원의 발이 묶이면 수출길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원전시장의 노른자위라고 할 수 있는 유럽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는 것은 뼈아픈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다만 협정은 한수원과 한전에 한정된 것이기 때문에 원전 건설, 설계 기술사 등 원전 산업이 완전히 막혔다고 보긴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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