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칼럼] 한강의 글쓰기는 '애도 작업이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4-11-13 0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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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 (사진=연합뉴스)


"러시아 - 우크라이나 또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면서 기자회견을 안 하기로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된 직후 소설가 한강은 국내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를 죄다 고사하고,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이 딸을 대신해 이렇게 밝혔다. 이런 반응에 감동을 받는 이들이 많았지만 무언가 어색한 엇박자를 느낀 사람들도 있었다. 어찌 먼 곳에서 일어난 전쟁이 모두가 기뻐하는 경사와 잔치 분위기에 찬물을 들이붓는 일이 될 수 있는가?

소설가 한강은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죽임 당한 이들과 살아남은 자들의 서사를 슬프게 그려냈다. 그녀는 타자의 죽음에 유독 민감하다. 특히 폭력에 의해 집단적으로 죽이고 죽임당하는 현상에 집착한다. 시신을 찾지 못하고, 묘지를 만들어드리지도 못하고, 묘비 앞에서 애도의 말을 남기지도 못하는 '애도 불가능성의 상황'을 자꾸 파헤친다. 두 소설에서 다루는 서사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애도에 참여하며 함께 울고 아파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아마 그녀의 소설 쓰기는 애도 작업이었으리라. 지금도 애도하고 있고, 도처에서 애도를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이 발생하는 현실에 몸서리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들 기뻐하는데 한강은 조용하다. 환히 웃는 모습을 포착하기 힘들다. 아니 그녀는 웃음을 잃어버렸다.

◇ 애도하는 주체

"나는 애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I mourn, therefore I am. 자크 데리다

강남순 교수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철학을 입체적으로 다룬 <데리다와의 데이트>에서 데리다의 이 말을 책의 부제로 삼았다. 데리다의 알려진 철학적 진술들이나 경구가 아닌, 어딘가 깊숙한 곳에서 알려지지 않은 문장을 끄집어내어 소개하는 덕에 우리는 애도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소설가 한강이 애도의 스토리를 다뤘다면 학자 강남순은 애도의 철학을 알려주는 것같다.

인간은 애도하는 주체다. 우리는 애도 주체이며, 애도해야 할 운명을 지닌 채 만남을 형성하고 살아가고 있으며, 언제가 또한 애도받아야 할 주체라는 것이다. 나와 너는, 나는 너의 삶의 종국을, 너는 나의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와 너는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기 힘들고 누군가 먼저 떠나야 한다. 그것이 죽음성의 특성이다. 그것이 사별이든 때로는 이별이든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내고 슬퍼하고 애도한다. 코기토(cogito) 주체에서 애도 주체로의 전환, 이것이야말로 인간다움을 발견하고, 삶의 진실을 제대로 조우하는 과정이 아닐까. 우리의 애도는 대개 묘지 앞에서 이뤄진다. 자크 데리다는 <아듀, 레비나스>에서 묘지에서 진행되는 애도의 방식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묘지에서 발언하는 이들은 때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고, 더 이상 거기 있지 않다고, 더 이상 대답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죽은 이, 필자)에게 직접적으로, 아주 곧바로 말을 건넵니다. 비탄에 잠긴 목소리로 – 그들은 침묵을 지키는 타자르 친밀하게 부릅니다 – 에두름 없이 매개도 없이 호명합니다. 갑자기 부르고, 인사하고, 토로합니다."

데리다는 망자의 이름을 호명하는 일, '안녕'이라고 말하는 인사와 같이 그/그녀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발화는 애도 작업의 숭고함을 보여줄 뿐 아니라, 이는 단지 해묵은 관습이 아닌 지극히도 인간적인 애도라고 말한다.

◇ 애도는 우리 몸에 남겨진 타자의 흔적

데리다는 애도의 철학적 윤리적 공동체적 차원을 깊이 성찰했다. 그의 책 '애도 작업'The Work of Mourning과 '아듀 레비나스'Adieu to Emmanuel Levinas에서 그는 애도에 대해 깊이 사유한다. 데리다는 애도가 인간의 본질이며, 죽음으로 상실한 타자에 대한 근원적인 태도라고 본다. 우리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애도를 통해 우리는 삶의 의미와 인간관계의 깊이를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애도 역시 불가피하다. 과연 인간은 애도하는 존재다.

데리다에 의하면 애도는 타자의 잔재와의 관계맺음이다. "타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타자는 나의 내면에 남는다." The other does not disappear; the other remains within me. 애도는 단지 죽은 사람과 이별하고 망각으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 혹은 그녀, 그 사람의 흔적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 타자의 흔적은 애도하는 자의 삶에 계속해서 남아 있게 된다. 따라서 애도(mourning)는 진행형(ing)이자 과정이다. 그래서 데리다는 이렇게 말한다. "애도는 살아 있는 이의 몸에 남겨진 타자의 흔적이다." 애도는 타자의 부재를 내 삶 속에 새기고 기억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를 통해 애도하는 이가 그 상실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그녀의 부재를 절감하며 그 상실을 지속적으로 품고 살아가는 방식을 찾게 된다.

데리다는 애도는 타자의 존재/부재를 기억하고, 그를 잃음으로써 생기는 빈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로 본다. 이는 서로 이어진, 함께 살아온, 뗄 수 없는 공동체의 삶을 이룬 관계성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데리다는 애도의 윤리를 선언한다. '애도는 타자의 삶에 대해 지닌 나의 윤리적 책임이다.'

애도 작업을 하는 이는 죽음을 인식하고 성찰하게 된다. 나 자신의 끝을, 종국을,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각성하게 한다. 타자의 죽음을 통해 나의 죽음을 의식하게 되고 죽음과 삶의 의미를 다시금 성찰하게 하는 자기 인식의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애도는 창조적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애도는 남은 자에게 상실을 딛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가도록 돕기 때문이다. 물론 충분한 애도 작업, 애도의 행위들과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슬픔을 딛고 슬픔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찾는다면 애도는 단순한 상실감의 표현이나 정서적 침잠을 넘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힘으로 작용될 것이다. 애도를 통해 남은 자들과 공동체를 새롭게 창조하고 조성하는 힘을 지닌 사회가 그리운 것이다.

◇ 애도할 권리, 애도받을 권리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쓸 때 매일 울면서 썼다고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집필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번역자도 소설을 번역하면서 울면서 번역했다고 한다. 그의 두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흔히 이렇게 후기를 말한다. "울면서 읽었다", "책장을 넘기며 살갗이, 몸이 아팠고 울면서 책을 덮었다." 슬픔이 전이되고,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애도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고 깊어진다. 묘지 앞에서 건네는 마지막 인사의 말만이 아니다. 타자의 부재를, 이별의 아픔을, 그리움을, 온갖 슬프고 기뻤던 기억들을 말과 글로 표현할 때 구체화된다. 언어는 애도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묘비에 쓰는 글, 추념사, 기억을 읊조리는 대화, 망자에게 헌정하는 시, 기도문, 일기, 고인에 대한 글과 책을 써서 기념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를 사별한 후 마망을 그리워하며 쓴 <애도일기>도 그런 애도 작업의 흔적이다. 특히 언어는 애도의 경계를 넘어 타자와 소통하게 되고, 개인적 슬픔이 공유되어 사적 고통과 슬픔이 공동체의 연민과 이어지게 한다.

특히 문학은 떠난 이의 서사를 말하거나 남은 이의 슬픔과 고통을 그려내면서 애도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한강의 소설 쓰기는 처절한 애도 작업임이 분명하다. 아직도 진행 중인, 시신을 찾을 수 없어 무덤조차 만들지 못하는 극한의 농도를 지닌, 여전히 혼란스럽고 끝낼 수 없는 애도 안에서 한강은 애도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애도할 권리와 애도 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이 슬픈 땅에서 우리는 함께 애도하고, 애도를 깊이 사유하고, 애도를 막는 힘들에 맞서 온전한 애도를 실천하여야 함을, 촛불을 끄지 말아야 함을 호소하는 듯하다.

강남순 교수는 탈낭만화된 애도를 강조한다.

"데리다의 애도란 단순히 슬퍼하는 것만이 아니다. 생존하여 있는 내가, 나보다 먼저 간 사람들이 이루려고 했던 삶의 책임성을 어깨에 지고 살아가는 과제를 실천하고자 하는 '탈낭만화'된 애도다." <데리다와의 데이트>

'탈낭만적 애도'라는 말은 흔히 정서적 애도에 머물거나, 의례와 의식으로서의 애도에 머물기 쉬운 우리들의 애도를 근원적으로 환기시키는 힘이 있는 듯하다. 잠시 슬퍼하고 기억하고 고개 숙이고 눈물을 훔치는 데 머물지 않는 그런 애도를 일깨우고 제안하고 있다. 개인적 사별, 4.3, 5.18, 세월호, 이태원 등 크고 작은 참사 사건을 애도하는 우리가 단지 추념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깜박거리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한강 읽기가 눈물의 서사 읽기에 머무르지 말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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