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가 개막했다. 이제 인류의 시간은 인공지능 이전(Before AI)과 이후(After AI)로 구분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AI 기술의 발달은 산업 현장은 물론 경제·사회 전반에 생산성 증가과 인력 대체 등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AI의 기세는 이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불과 5년 이내에 기계가 인간과 같은 인지 능력, 학습, 추론을 구현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무너지는 '특이점'도 2045년쯤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 이때가 되면 AI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 뒤 스스로 개선하면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게 된다는 섬뜩한 얘기다.
AI가 사회경제적 변혁을 가져올 것인 만큼 기업의 ESG 경영도 그 영향권 안에 놓이게 될 것이다. 직접적으로는 AI를 구동시키기 위한 데이터센터가 막대한 규모의 전력과 물을 필요로 해 환경 문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전력 문제가 심각하다. 데이터센터의 대규모 전력 수요는 일차적으로는 전력 생산의 양을 크게 늘려야 하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지만 그만큼 탄소배출 증가에 대한 걱정을 키우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이나 재생에너지를 대폭 확충해야 하는 숙제가 주어져 있다. 다른 한 편으로 AI는 기후 데이터 수집과 계산 그리고 공시를 자동화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여 탄소배출을 줄이는 효과도 가져올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AI가 ESG 경영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더 눈여겨봐야 할 '대형 이슈'는 AI에 의한 노동 대체이다. 만약 AI가 심각한 정도로 일자리를 줄여나간다면 이는 ESG가 지향하는 가치와 충돌해 ESG 경영 자체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 그 이유를 짚어보자. ESG는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근로자 채용과 합리적인 노사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S(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지표에 신규 채용 및 고용 유지, 정규직 비율, 교육훈련과 복리후생, 결사의 자유 보장, 다양성 및 포용성, 장애인 고용 등이 포괄돼 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이 중 신규 채용 및 고용 유지는 기업이 인력 채용을 통해 지속적 성장에 필요한 인적 자본을 축적함과 동시에 일자리 창출과 고용 안정에 얼마나 기여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기업이 구성원의 교육과 훈련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지와 직원 만족도 제고를 위해 복리후생비를 잘 지급하고 있는지 등도 S가 중점적으로 들여다보는 항목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근로자는 ESG 경영을 하는 기업이 존중하고 소통해야 하는 이해관계자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는 한국과 미국의 기업이 이해관계자를 중시하는 경영을 해나가겠다고 공표한 선언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22년 대한상공회의소는 '새로운 기업가정신 실천 명제'를 통해 좋은 일자리가 확산될 수 있도록 하고 조직구성원이 보람을 느끼고 발전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조성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앞서 2019년에 미국의 재계 단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은 '기업의 목적에 관한 성명'에서 근로자에게 투자하고 공정한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ESG는 일자리를 계속 창출하고 근로자를 중시, 존중하겠다는 정신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런 만큼 AI 도입에 의한 대규모 일자리 대체 여부는 ESG 경영의 관점에서도 주시해서 봐야 할 이슈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AI는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까?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리고 있다. 먼저 낙관론. 세계경제포럼(WEF)은 AI가 산업혁명 이후 가장 중대한 노동 개혁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오는 2030년까지 일자리 9200만개를 대체하는 반면 1억7000만개를 새로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상당히 장밋빛이다.
하지만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국내 한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8명은 향후 10년 이내에 AI에 의해 일자리가 대체될 것으로 우려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연구진의 분석에서는 AI에 의해 위협받을 것으로 보이는 700개의 직업 가운데 절반 이상의 자동화 가능성이 50% 이상이며 텔레마케터나 보험심사역 같은 직업은 그 가능성이 9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캐피탈 그룹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38%는 향후 2~3년 안에 가시화할 투자 리스크 중의 하나로 AI에 의한 인력 대체를 꼽았다. 세계적 베스트 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공저서 '초예측'에서 "21세기에는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의 발달로 무용(無用) 계급이라는 새로운 집단이 등장할 것"이라면서 "앞으로 자동화가 더욱 심화되면 수억 명의 사람들이 경제적 가치를 상실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라리는 특히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고 하는데 자기 일을 잃어버린 사람이 새로운 업무에 적응해 취업할 것이라는 낙관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예컨대 실직한 트럭 운전사가 3D나 VR 그래픽 디자인 같은 일을 배워 재출발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보면 최근 CES 2026에서 공개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에 대해 현대자동차 노조가 보인 경계심은 노조로서는 보일 수 있는 반응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물론 이런 움직임이 AI자체를 거부하는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처럼 비화돼서는 안될 것이다. 치열하게 전개되는 글로벌 기술 경쟁 속에서 AI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의 생존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AI의 ‘지혜로운 활용’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같이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ESG의 가치이다. ESG는 일자리 창출과 근로자 존중을 중시하고 있다. 따라서 AI 활용도 ESG 경영의 틀 내에서 조화롭게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AI가 산업 현장에서 근로자를 몰아내며 진군(進軍)하듯 들어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감원을 최소화하고 기존 근로자와 협업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형태로 활용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기존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되 퇴직 등으로 인한 자연 감소분에 한해 로봇을 도입하자는 의견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일을 로봇이 맡는 극단적 형태의 공장을 AI의 미래로 상상하기도 한다. 이는 로봇 도입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는 기업이나 계층에 세금을 물려 이를 재원으로 피해를 보는 계층에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시나리오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의견 또한 인간의 실존적 필요를 도외시한 것이다. 사람은 돈도 돈이지만 일을 통한 '삶의 의미'도 제공돼야 하는 존재이다. 이를 감안하면, 혁신 기술인 AI의 도입은 AI가 사람과 협력하고 사람을 돕는 방식으로 연착륙해야 한다. 이게 ESG 경영의 기본 틀 내에서 AI를 합리적으로 이용하는 길이기도 하다. 만약 이를 외면하고 AI가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도입돼 유발 하라리가 얘기한 대로 대규모 무용 계급 발생이 현실화한다면 이는 디스토피아로 가는 통로가 될 것이며 ESG 경영도 그 의미가 퇴색할 가능성이 크다. AI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맞으면서 ESG 경영 자체가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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