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생산감축 목표 초안에 없어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정부간협상위원회(INC-5.2) 폐막을 하루 앞둔 13일(현지시간) '의장 제안 초안(Chair's Draft Proposal)'이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 초안을 수용하지 않으면서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 INC 의장은 "임무를 완수할 시간이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지만, 내일까지 결론을 내기엔 속도가 부족하다"며 지난 11일 이뤄진 비공식 논의를 반영해 의장 초안을 배포했다.
의장 초안은 플라스틱 오염 저감·순환경제 촉진·국제협력 부문에서 포괄적 틀을 제시하고 있다. 플라스틱의 전 생애주기 관리를 기반으로 생산·설계·사용·폐기·정화 규율이 담긴 점이 특징이다. 또 국제적 재정과 기술, 역량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정의로운 전환 및 사회적 약자 보호를 명시했으며, COP와 보조기구를 통해 지속적인 검토·평가·개정 구조를 확보할 것을 담았다.
하지만 플라스틱 생산량 자체를 감축한다는 문구는 명시되지 않았다. 서문과 원칙에서 생애주기 관리를 전제하고 있지만, 플라스틱 설계 개선 및 대안의 촉진, 특정 제품군의 제조·수출입을 제한할 수 있는 절차·근거만 두었을 뿐 총 생산량 감축 목표는 부재하다. 플라스틱 생산·소비 구조를 바꾸는 조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전반적인 의무 표현도 'shall/should'로 에둘러 나타내고 있다.
이에 대부분의 국가는 초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초안이 심각하게 부실하다"고 혹평했다. 특히 범위(scope)와 지속가능한 생산 관련 조항, 구속력 있는 목표가 부재하다는 문제점이 제기됐다. 이날 회의장 분위기도 "혐오스럽다", "모욕적이다", "항복 문서"라는 날선 비판이 나오는 등 상당히 격앙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선진국과 환경취약국은 생산 부문 규제가 부재하고 구속력 및 과학적 근거 반영이 미약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명하고 포괄적인 협의 아래 구속력 있는 목표를 갖춰 새 초안을 작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칠레는 "플라스틱 위기 규모에 비해 대응 수단이 부족하다"고 비판했고 EU도 초안의 구속력과 구체성이 부족함을 꼬집었다. 필리핀과 브라질은 폐기물 관리 외에는 실질적인 의무가 없다는 점과 건강 부문 조항이 빠진 점을 문제삼았다. 파나마는 "회의의 목적은 조약 체결이 아니라 플라스틱 생산 규제"라고 강조했다.
콜롬비아와 프랑스는 120개국이 제안한 COP 의사결정 절차가 누락됐다고 지적했으며 케냐도 COP·사무국 관련 조항을 복원할 것을 요구했다. 쿠바는 보상기금과 국제협력을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
말레이시아는 포용성과 균형이 부족하다고 보았고 캐나다와 노르웨이는 원주민 언급을 삭제한 점에 실망을 드러냈다. 나이지리아와 우간다, 방글라데시는 전 생애주기와 건강, 화학물질 관련 조항과 더불어 저·중소득국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데에 불만을 품었다.
중국, 쿠웨이트, 인도,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등 개발도상국은 CBDR(공동의 그러나 차별적 책임) 원칙 반영, 재정·기술 지원 명확화, '재정여력 있는 개발도상국' 분류 삭제를 요구했다. 협약 이행 과정에서 개도국에 부담이 쏠릴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도와 중국은 초안이 불완전하지만 출발점으로 수용은 가능하다며 비교적 온건한 자세를 취했다.
미국은 초안이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새로운 협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절차·작업방식에서도 논쟁이 첨예하다. 바야스 INC 의장은 지역그룹 중심으로 협의 후 초안을 개정할 것을 제안했지만 포괄성·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본회의 내 초안 개정 논의 여부에 대해서도 멕시코는 찬성하고 이집트는 반대하는 등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렇듯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은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으나, 일부 국가들은 여전히 성과를 낼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한 대표단 관계자는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며 "우리는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INC-5.2는 오는 14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마지막 담판을 벌인다. 이날 초안도 대표단장 회의와 비공식 협의를 통해 개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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