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친일파 후손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1-08-13 0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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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출마자가 친일파 논란 해명없이 당당한 태도
광복 76년이지만 친일 행각은 시효없는 '범죄'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자 최재형 전 감사원장 (사진=연합뉴스)

최재형 야권 대선후보자의 '친일파 발언' 논란을 바라보면 아연실색하게 된다. 최 후보자의 부친인 고 최병규 씨가 만주에서 일제가 만든 조직인 조선거류민단장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보도된 데다가 증조부의 친일파 논란까지 일자 최 후보자는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도 친일파'라고 말하며 현직 대통령을 물고 늘어졌다.

흔히 궁지에 몰리면 스스로를 변론하기보다 타자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쟁점을 바꾸는 프레임 전술을 구사하게 된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몸값을 올려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라고 해도, 그의 발언과 태도는 우리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그 이유는 합리적인 해명을 통해 자신을 변명해야 할 이가 오히려 큰 소리를 치며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의 태도는 선친의 친일 행각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은 일각의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해명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듯 보인다. 나아가 친일 부역을 정당화하고 당연시하는 분위기마저 풍긴다.

최 후보자는 언론보도의 사실 여부를 설명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었다면 자신은 일본 친화적 사람이 아님을 담담하게 설명하면 족했다. 설사 반박을 당하더라도 연좌제가 사라진 지금 정치적 목적으로 자신에게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부당한 딱지를 붙이지 말라'고 되받아칠 권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치공학적 발언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됨됨이(being)를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얼핏 최 후보자의 계책이 효과가 있는듯이 선친의 친일행각 사실여부가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으로 초점이 옮겨진 것일까? 아니다. 논란의 프레임은 최 후보자의 자질과 정치스타일에 급격히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직 대통령 밑에서 감사원장을 지낸 공직자가 할 말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사람이 대통령을 걸고 넘어지는 것은 후보자로서 자격이 없다고도 말한다. 나아가 인간적인 금도를 넘어선 발언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기존의 고형적 권력질서 담론에 근거한 비판이나 정치적 수사에 대해서는 그리 귀기울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 후보자는 가장 치명적인 오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것은 문제를 대하고 처리하는 그의 리더십 스타일에 결정적인 하자를 드러낸 점이다. 정치적 발언이 설득력을 지니는 것은 그것이 사회적 상식과 다수 국민의 정서와 부합할 때이다. 특히 그 발언이 심리적 호소력을 지니거나 상당히 정당하다는 대중적 감응(affect)과 연결되어야 한다. 다른 표적을 공격하더라도 사실(fact)에 근거한 합당한 맥락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발언은 설득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논란의 쟁점이 선친의 친일파 사실여부에서 인간 최재형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세 요소로 로고스(logos)와 파토스(pathos)와 에토스(ethos)를 꼽았다. 로고스는 이성에 근거한 합리성, 파토스는 감정을 움직이는 힘,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의 진정성에 대한 신뢰다. 최 후보자의 결정적 오류는 이 세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사람됨과 진정성의 빈곤을 드러내 버렸다는 것이다. 지도자로서 자신의 충분한 리더십과 건강한 정치철학을 입증해야 할 시점에서 극단적 발언을 내뱉고 계책에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스스로에게 덧씌운 셈이다.

정치는 정치술이 아니다. 정치는 건강하고 통합적인 인간학에 근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 어떤 논박이라고 할지라도 시민적 교양을 지니고 합리적 방식을 취해야 호소력이 있다. 게다가 대일 감정이라는 요소는 우리 사회에서 아주 예민한 정서적 영역이다. 그래서 친일파 논란의 당사자로서 되레 목소리를 높이는 전술은 대중에게 마치 친일파의 오만함과 뻔뻔함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

우리 사회에서 친일 전력은 나치 전범의 죄악처럼 시효가 없는 범죄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그것이 한 번도 처벌된 적이 없다. 심지어 많은 친일파가 해방 후 독립운동가를 자처하고 애국자로 변신했다. 나아가 친일파와 그 후손이 정치와 법조계와 재계와 학계와 문화계 등 모든 영역에서 이 땅의 기득권자와 권력엘리트로 득세했다. 그래서 친일파 논란에 대한 국민의 정서는 예민하고 그 정죄심리는 극렬하다. 아직 그 트라우마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재형 후보자는 이를 피하려다 더 큰 덫에 갇혀버렸다.

해방된지 76년이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친일파는 논란꺼리다. 하지만 이 논란은 단지 한 대선 후보자와 관련한 것만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쟁론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핵심이 아니다. 이 논란은 적확하게 중심을 향하여야 한다.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 할 논란은 일제잔재 청산이다. 친일 잔재가 청산되지 않았다는 사실, 이것이 친일파 논쟁이 정쟁이 되는 이유다. 친일파 논란의 당사자가 오히려 당당하고 고압적인 현상, 이는 친일파가 여전히 쟁쟁하고 살아있다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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