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코로나19 팬데믹은 정치적 실패" 일침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1-03-26 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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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 기고문에서 각국의 이기적 태도 비판
충분히 극복가능한데 정치적 의무 저버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할퀸 2020년. 많은 이들이 자연 앞에 무력함을 재차 실감하며 좌절하는 이때,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고개를 들어 실상을 제대로 보라며 귓볼을 꼬집는다.

그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즈(FT)에 '코로나 한 해로부터의 교훈'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2020년이 다름아닌 "과학적 진보와 정치적 실패의 한 해"라고 일축했다. 하라리가 넓은 역사적 관점에서 정리한 2020년, 우리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아래는 유발 하라리의 FT 기고문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이제 코로나19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이 아니다.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디지털 감시가 활발히 이뤄지는 세상이다. 질병의 매개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고, 전조증상을 보이는 사람과 무증상자를 재빨리 구분해 격리조치하는 등 선별적이고 효율적인 대처를 할 수 있다. 자동화와 인터넷 덕에 장기간 봉쇄가 가능해졌다.

농업만 보더라도 수천년간 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 미국은 1.5%만 농업에 종사할 뿐이다. 이들은 자국민을 위한 식량은 물론 세계 식품 수출을 선도한다. 1349년 농가당 하루평균 5부셸(bu)의 밀을 수확했지만 2014년 하루 3만부셸을 넘게 수확했다. 병원균의 영향을 받지 않는 기계들은 코로나19 이후에도 변함없이 밀을 거둬들인다.

운송도 마찬가지다. 흑사병 발발 당시 상인들은 동아시아에서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여행했다. 수레를 끌려면 수레꾼이, 작은 돛단배 하나에도 수많은 선원이 필요했고, 여관은 전염병의 온상이 됐다. 하지만 자동화 덕에 아주 적은 수의 사람이 운용하는 컨테이너선 하나가 근세 왕국 상선 전부를 합친 화물보다 더 많은 양을 수송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람의 이동이 제한된 2020년에도 세계 해상무역 감소량은 4%에 불과했다.

디지털 전환으로 서비스 산업이 큰 전환을 맞이하기도 했다. 1918년 스페인독감이 유행할 때 사무실, 학교, 법원, 교회가 봉쇄조치가 내려진 상황에서 제대로 기능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을까? 당시 물리적 세계에만 머무르던 인류는 스페인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인류는 상당부분 가상세계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코로나19 상황이 몇개월에 걸쳐 퍼지는 동안 수많은 인구가 디지털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이 물리적 세계의 다리처럼 무너져내리지 않고 버텼기 때문이다. "코로나 다음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공격'이 위험요소다. 학교, 사무실 등이 빠르게 가상공간으로 옮겨간 만큼 반대로 하루아침에 가상공간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코로나19에 의해 노출된 기술적 한계로 위에 기술된 문제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과학은 정치를 대체할 수 없다는 문제다. 우리가 갖춘 정보가 아무리 정확하고 신뢰할만 하더라도 어떤 수치를 계산하고, 그것을 누가 결정할지 정하는 일은 과학이 아닌 '우선순위'의 문제다. 정치인들이 의료, 경제, 사회를 망라하는 균형잡힌 정책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새로운 감시체계와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어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동시에 우리의 사생활이 위험에 처하면서 전례없는 전체주의 압제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전염병과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자유를 얼마만큼 파괴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나온다. 디스토피아적 악몽과 쓸모있는 감시체계 사이의 균형은 공학자가 아닌 정치인이 할 일이다.

디지털 독재를 막으려면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우선 데이터는 사람을 돕기 위해 사용되어야지 그들을 조종하거나 통제하고 해를 끼치기 위해 사용되어선 안된다. 둘째로 감시는 항상 양방향이어야 한다. 시민에 대한 감시가 늘었다면 정부와 대기업에 대한 감시도 늘어야 한다. 셋째로 데이터를 한 곳에 몰아넣어선 안된다. 데이터를 나누는 과정이 다소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디지털 독재를 막으려면 약간의 비효율은 안고 가야 한다.

다시 정치의 문제로 돌아오면, 흑사병 당시 3분의 1의 영국인이 사망했어도 에드워드3세는 왕좌를 지켰다. 지도자의 능력을 벗어난 일이라는 게 명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0년 정치인들은 과학기술로 코로나19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음에도 정치적 의무를 저버리고 정치적 계산을 택했다. 미국과 브라질 대통령은 포퓰리즘으로 일관했고, 영국은 코로나19보다도 브렉시트에 더 신경을 썼다. 그 결과 예방할 수 있었던 수십만의 목숨을 잃었다.

과학의 성공과 정치의 실패를 가른 것은 '협력'이다. 전세계 과학자들은 정보를 나누고 국제적인 팀을 꾸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정치인들은 공동전선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초강대국은 전염병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며 반목했다. 부족한 의료장비를 나누는 데도 분쟁이 불거졌으며, '백신 민족주의'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국익이 이타주의에 우선할 수 없겠지만, 현시국엔 이타주의가 곧 국익이다.

2020년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계속되겠지만, 정파를 떠나서 세 가지 교훈에는 모두가 동의해야만 할 것이다. 첫째는 디지털 인프라를 지키는 일이다. 팬데믹 상황의 구세주였지만 그보다 더한 재난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둘째로 각국이 공공의료체계에 더 투자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대부분의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이 무시한다. 셋째로 팬데믹을 예방하기 위한 강력한 세계적 감시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끝으로 하라리는 코로나19가 2021년에도 계속된다면, 그리고 2030년에 더 심각한 팬데믹이 닥친다면,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자연재해나 신의 심판이 아닌 인재일 것이며, 더 정확하게는 '정치적 실패일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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