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양말도 못신고 나왔다"...구룡마을 이재민들 '망연자실'

조인준 기자 / 기사승인 : 2026-01-16 15: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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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는 구룡마을 ⓒnewstree

"여태 난 불 중에 가장 크다, 목숨 빼고는 아무것도 못챙겼는데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하나 막막하다."

3년만에 또 대형화재가 발생한 구룡마을 사람들은 화마에 다 타버리고 흔적만 남은 집터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한겨울 몸을 녹일 따뜻한 방 한칸마저 사라져버린 것이다. 

서울 강남구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에 화재가 발생한 것은 16일 오전 5시 무렵이었다. 지난 2023년 화재가 발생했던 4지구 마을회관 인근 빈집에서 시작된 불길은 삽시간에 6지구까지 번졌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불이야!" 소리에 뛰쳐나온 주민들은 옷도 제대로 챙겨입지 못한 채 몸만 간신히 피했다. 불길이 6지구까지 번지면서 화재 피해 주민들은 4·5·6지구에 걸쳐 258명으로 늘어났다.

4지구에서 딸과 함께 살고 있다는 임모씨는 "불이 났다는 소리에 너무 놀라 양말도 못신고 빠져나왔다"며 "불길이 순식간에 번지니까 주민들이 이 추운 날에 개울로 뛰어들어 도망쳤다"며 당시 상황을 말했다.

30여년 구룡마을에서 살았다는 김모씨는 "여태 난 불 중에 가장 크다"며 "불길이 잡혔다는 얘기를 듣고 살던 집에 돌아왔더니, 아무것도 없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챙겨오지 못했는데..."라고 말하는 김씨는 이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화재 진압중인 소방관 ⓒnewstree

이날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하필 시야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한 안개 때문에 소방헬기도 뜨지 못했다. 초기 진화가 늦어지는 사이에 불길은 계속 번져나갔고, 가스통이 펑펑 터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화마가 됐다. 

소방당국은 부랴부랴 오전 8시 49분 대응1단계를 2단계로 격상했다. 불을 끄기 위해 소방인력 297명, 구청 120명, 경찰 70명 등 인력 427명과 장비 69대, 차량 85대를 투입시키며 불길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인근 강동·서초·송파소방서 인력까지 총동원됐다. 소방관 343명과 경찰 560명, 구청 직원 320명을 포함해 1258명의 인력과 펌프차, 구조차 등 장비 106대를 투입한 끝에 화재 발생 6시간30여분만인 오전 11시34분쯤 불길을 잡았다. 소방헬기는 오후 12시29분에 이륙해 공중에서 잔불을 정리했다.

▲떡솜과 비닐, 합판으로 이뤄진 판잣집과 좁은 골목으로 인해 화재 피해가 커졌다 ⓒnewstree

구룡마을 도심개발로 살고 있던 터전을 잃은 철거민들이 마지막 보루로 집단을 이루며 살고 있는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이다. 그러다보니, 거주하는 집들의 대부분은 보온을 위해 '떡솜'이라고 불리는 솜뭉치를 사방에 두루고 있어서 불이 쉽게 번진다. 여기에 비닐과 합판, 스티로폼으로 이뤄져 있어 화재에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게다가 골목길이 성인 1명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아서 소방차 진입이 어려워 진화 작업에 애를 먹었다. 전선이 거미줄처럼 뒤엉킨 골목길 곳곳에 놓여있는 액화석유가스(LPG) 통은 폭탄급 무기나 다름없어서 함부로 진입했다가 인명사고가 날 수 있어 진화 작업을 더 더디게 만들었다. 

2지구에 거주하는 윤모씨는 "원래도 작은 불이 큰 불로 번지기 쉬운 판자촌이라 화재가 자주 나는 편"이라며 "그나마 오늘은 바람이 안불어서 다행이지, 바람까지 강했으면 여기(2지구)까지 싹 다 탔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구룡마을은 화재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09년부터 현재까지 20건이 넘는 화재가 발생했을 정도다. 3년전인 2023년 1월에는 대형화재로 주택 60여채가 몽땅 타버리기도 했다.

이날 주민들 사이에선 소방당국이 주택의 불을 끄는 것보다 불길이 산으로 번지지 않기 위해 막느라 진화가 더 늦어졌다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화재 현장을 계속 지켜봤다는 신모씨는 "진입한 소방차들이 집에 난 불을 끄는 게 아니라 산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려고 가더라"며 "산불이 위험한 건 알지만, 그럼 우리가 사는 집은 모조리 타버려도 된다는 거냐"고 말했다. 

이날 소방당국은 인근 구룡산으로 불길이 번질 가능성을 대비해 주변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확산을 막는데 주력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뉴스트리와 통화에서 "산불로 번질 가능성을 염두한 건 맞지만, 이를 우선하느라 진화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구룡마을 화재는 불길이 시작된지 약 8시간만인 오후 1시28분에 완전히 진화됐다. 666가구 가운데 165가구 258명이 대피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200명이 넘는 이재민들은 현재 구룡중학교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 있다. 서울시는 추가 숙소를 확보해 이재민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소방당국은 잔불 정리가 마무리되는 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과 재산 피해 규모를 조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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