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나비의 도시'에서 나비가 사라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에 위치한 소도시 퍼시픽그로브(Pacific Grove)에서는 호텔의 벽화나 간판, 가게이름 등 제왕나비가 새겨진 곳이 수두룩하다. 매년 가을이면 아이들이 나비 복장을 하고 행진하는 퍼레이드가 열리고, 심지어 제왕나비를 해칠 경우 최대 10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되는 조례까지 제정돼 있다. 그래서 이 도시를 '버터플라이타운(나비도시)'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곳에서 '제왕나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미 서부지역에서만 제왕나비 개체수가 1980년대 이후 이미 99% 감소했다고 가디언이 지난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금 추세로 간다면 2080년 무렵에 제왕나비가 완전히 멸종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퍼시픽그로브가 제왕나비의 상징도시가 된 이유는 태평양 북서부에서 남하하는 제왕나비들이 매년 늦가을과 겨울을 이곳에서 보내는 주요 월동지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수만 마리의 왕나비가 유칼립투스 나뭇가지에 가득 매달려 있고, 주황색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던 장관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월동기인 지난해 12월 1주일동안 이 지역에서 집계된 나비 개체수는 고작 107마리에 그쳤다. 불과 2022년 같은시기에만 해도 개체수가 1만6000마리였는데 그 사이에 또 급감했다.
제왕나비 개체수 급감의 원인은 살충제, 서식지 파괴, 이상기후 등으로 꼽힌다. 1980년대 이후 해안지역이 개발되면서 나비 서식지가 빠르게 사라졌고, 기후위기로 인한 고온과 가뭄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여기에 살충제 문제가 결정타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2024년초 퍼시픽그로브에서 제왕나비 집단폐사까지 발생했다. 조사결과, 폐사한 나비 체내에서 15종에 달하는 살충제가 검출됐다. 유기농으로 표기된 가정용 살충제조차 나비에게 치명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수백 마리의 나비가 경련을 일으키며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생물학자들에게 제왕나비는 다른 수분곤충들이 처한 위험을 미리 보여주는 '탄광 속 카나리아' 역할을 한다. 무척추동물보호협회의 엠마 펠턴 선임학자는 "제왕나비는 가장 연구가 잘된 나비 중 하나"라며 "이들이 직면한 위협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곤충들이 겪을 위험을 이해하는 것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미국 어류야생동물관리국은 미국 제왕나비를 멸종위기종법(ESA)상 '위협종'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미 연방정부는 아직 이렇다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 제왕나비는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퍼시픽그로브 시민들이 직접 나비보호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이 매주 조사하는 나비의 개체수를 조사하고 있는데 이 데이터는 캘리포니아 전역에 서식하는 제왕나비의 실태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퍼시픽그로브 자연사박물관의 교육매니저 나탈리 존스턴은 집집마다 살충제 사용을 자제하고 토종식물을 심을 것을 호소하면서 제왕나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보호를 촉구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종이보다 가벼운 몸으로 하루 160km 이상을 날 수 있는 강인함, 애벌레에서 나비로 우화하는 극적인 변신은 많은 이들에게 상징이 된다"며 "제왕나비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울림을 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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