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ESG풍향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선언...그후 5년

최남수 서정대 교수 / 기사승인 : 2024-12-17 08:30:03
  • -
  • +
  • 인쇄

지난 2019년 8월 미국 재계 CEO들의 모임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에서 중요한 선언이 나왔다. 이 모임에 참여한 181명의 CEO는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성명'을 통해 이해관계자를 중시하는 경영을 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이 성명은 △고객에게 가치 전달 △근로자에 대한 투자 △공정하고 윤리적인 거래기업 대우 △지역사회 지원 △주주를 위한 장기적 가치창출을 강조했다. 어찌보면 교과서적인 내용으로 채워진 이 성명은 주주 우선주의의 깃발을 내리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선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늘 맨 앞에 내세웠던 주주를 맨 뒤로 밀어낸 대신 고객, 근로자 등 이해관계자를 앞부분에 배치하는 기조변화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BRT의 이 선언은 자본주의의 방향타(方向舵)를 바꾸는 것이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국 재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한상공회의소는 BRT의 바톤을 이어받아 2022년 5월에 기업을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를 소중히 여기고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새로운 기업가 정신'을 선언했다.

지금, BRT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선언이 나온지 5년여가 지났다. 그동안 어떤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났을까? 이를 놓고 부정과 긍정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먼저 회의론자들은 선언 이후에도 기업 경영에서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BRT 선언이 실천에 옮겨지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의 이사회가 이를 승인했어야 하는데 이 절차가 진행된 곳이 별로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많은 기업의 지배구조가 여전히 주주가치를 궁극적인 목표로 명문화해놓고 있다. 선언 참여 기업의 3분의 2가 CEO에 대한 장기 인센티브 지급을 주주 수익률에 연계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일부 기업이 지속가능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해고하고 지속가능경영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놓는 등 역행하는 움직임도 가시화됐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주주자본주의가 건재한 가운데서도 이해관계자자본주의를 향한 발걸음이 조용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린 페인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이와 관련해 "BRT 선언이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며 "기업들이 종전보다 이해관계자에 대해 훨씬 많이 얘기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들은 CEO 급여를 이해관계자 중시 경영의 성과에 연계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중요한 점은 이해관계자의 이해가 주주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이해관계자를 존중하는 경영이 결국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선순환을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음료업체인 펩시코가 대표적 사례다. 이 기업은 소비자의 건강을 위해 설탕과 소금 등을 줄인 제품을 출시하고 리더급 자리에 더 많은 여성을 중용하며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축소하는 등 이해관계자를 중시하는 경영을 본격화했다. 결과는 아주 좋았다. 매출이 80% 증가하고 주가 상승률도 S&P 500 지수를 상회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식품기업인 마즈는 모든 사업부문의 운영과 성과 측정시 이해관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월마트는 제조업의 활성화를 위해 미국 내에서 제조, 조립되는 제품에 3500억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구글도 1100만명이 넘는 미국인들이 디지털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했으며 시스코 네트워킹 아카데미는 사이버보안, 사물인터넷 등 영역에서 200만명이 넘는 학생들을 훈련시켰다.

이렇게 보면 이해관계자자본주의는 싹이 트는 '발아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어떨까? 큰 틀에서 보면 BRT 선언에 잘 반영돼 있듯이 이해관계자의 이해를 배려하는 기업 경영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해관계자들이 이 관점에서 기업을 평가하고 있고 존중받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소비자들은 제품 구매시 기업이 ESG 경영을 잘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직원들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공정 등 사회적 가치를 기업이 실행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기업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회계법인인 EY가 기업 리더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다수 응답자들이 이해관계자를 외면하는 경영을 하면 리스크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해관계자자본주의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보완돼야 할 점이 적지 않다. 먼저 주주자본주의처럼 이해관계자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보다 명확한 정의가 내려져야 하고, 이론적 기반도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주주자본주의가 기관투자가라는 견고한 지지층을 보유하고 있듯이 이해관계자자본주의도 폭넓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금 다른 차원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주주자본주의도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지배주주 중심의 기업 경영이 소수 주주의 권익침해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ESG와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이 새로운 시대적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데 있다. 주주자본주의는 주주자본주의대로 고쳐나가면서 이해관계자를 존중하는 경영을 내재화해야 하는 과제가 동시에 주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이해관계자 중시 경영은 주주자본주의와 배치되는 게 아니다. 궁극적으로 주주가치를 더 높이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다. 주주만이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반영하는 경영의 혁신이 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는 중장기적 비전 아래 이를 담대하게 실천해가는 기업인의 리더십과 실행이 긴요한 때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 최남수서정대 교수 nschoi@seojeong.ac.kr  다른기사보기
  • 현 서정대 교수/더이에스지연구원장/전 YTN 대표/ 전 MTN 대표

핫이슈

+

Video

+

ESG

+

KT 판교·방배 사옥 경찰 압수수색…서버폐기로 증거은닉 의혹

해킹사고 처리과정에서 서버를 의도적으로 폐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KT가 압수수색을 당했다.1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

셀트리온, 美에 1.4조 韓에 4조원 투자..."4Q 실적 턴어라운드"

일라이 릴리로부터 미국 공장을 인수해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 생산기지를 확보한 셀트리온은 의약품에 대한 미국 관세리스크를 털어내고

한국ESG기준원, ESG평가 'A+등급' 20곳...올해도 S등급 'O'

하나금융지주와 KB금융, 신한지주와 현대백화점, 현대로템 등 20개 기업이 한국ESG기준원에서 주관하는 '2025 ESG 평가'에서 통합등급 'A+'를 획득했다. 이

CJ제일제당 '빨대없는 스토어' 캠페인...대체소재로 PHA 제안

CJ제일제당이 자원순환사회연대(NGO), CJ푸드빌과 함께 일회용 석유계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줄이기 위한 '빨대없는 스토어 만들기(Be Straw Free)' 캠페인을

호텔신라, 친환경 운영체계 구축 나선다

호텔신라의 모든 호텔 브랜드가 친환경 호텔로 도약한다.호텔신라는 글로벌 친환경 인증기관인 '환경교육재단(FEE; Foundation for Environmental Education)'과 업

KT 새 대표이사 후보군 33명...본격 심사 착수

KT의 대표이사 후보 공개모집이 마감되면서 차기 대표이사 후보군이 33명으로 확정됐다.KT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4∼16일 진행한 대표이사 후보

기후/환경

+

[COP30]"BTS에 영감받아"...K팝 팬들도 '탈탄소화' 촉구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열리고 있는 브라질 벨렝에서 케이팝(K-팝) 팬들이 '문화 분야의 탈탄소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K-팝

내년부터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1700톤 쓰레기 어디로?

내년부터 수도권 지역에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가 시행됨에 따라, 소각장 설비를 아직 마련하지 못한 경기도와 서울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예기치 못

[COP30] 산림지키는 기후총회에...농업 로비스트 300명 활동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 300명이 넘는 농업 로비스트가 몰리자, 원주민과 환경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COP30] AI는 기후위기 해결사? 새로운 위협?

인공지능(AI) 기술이 기후대응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는 동시에 막대한 전기수요를 발생시켜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18일(현

섬에서 새로 발견된 미기록 곤충 55.5% '열대·아열대성'

국내 섬 지역에서 발견된 미기록종 곤충 가운데 약 절반이 열대·아열대성 곤충인 것으로 나타났다.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농촌 기후대응 직불금' 도입되나...기후보험 대상 확대

기후변화로 인해 농작물을 재배하기 적합한 지역이 바뀌는 경우나 기후변화 대응 품종을 도입할 때 직불금을 주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한다.정부는 19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