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고통은 누구나 강하게 만들까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3-05-16 0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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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선생임을 깨달으면 삶의 지고한 선물
기꺼이 고통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강해진다

한 여성의 경험담을 들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많은 이들이 조문했다. 하지만 슬픔의 크기가 너무 커서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한 친구가 와서 종일 머물며 함께 했다. 가만히 손을 잡아주고 포옹했을 뿐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이후 오랜 애도의 시간을 보낸 후 그 친구를 찾아 이렇게 말했다. "친구야, 그때 나와 함께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너의 위로를 영원히 잊지 않을게."

◇ 과연 고통은 선생일까

고대 이래로 동서양의 철학자들과 현자들은 예외없이 '고통'이라는 화두를 다뤘다. 그들의 공통적인 가르침은 고통은 우리의 스승이라는 것이다. '고통없이는 배울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대표적이다. 그렇다.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의 삶의 방식과 태도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깊이 사유하게 한다. 재난을 경험하거나 질병에 걸려 힘겨운 투병을 할 때, 관계가 깨어지고 경제적으로 파국에 이를 때 우리는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때 고통은 우리에게 무언가 말한다. 마치 우리에게 무언가 변화를 주라는 신호(sign)를 던지며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라고 초대하는 것이다. 독일의 시인 에센 바흐(Wolfram von Eschenbach)의 말에 우리는 절로 공감하게 된다. "고통은 인간의 위대한 교사이다. 고통의 숨결 속에서 영혼은 발육된다."

과연 고통은 우리의 스승이다. 하지만 지금 아파하고 있는 자에게 그런 말을 들려주는 것이 도움이 될까? 사람들은 선의로 이런 말을 내던진다; '고통에는 뜻이 있다', '고통은 감추어진 축복이다', '고통은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등등. 이런 말은 심오해 보이지만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 적절치 못한 조언이다. 좋은 뜻으로 전한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되는 경우조차 있다. 그런 말은 당사자가 스스로 깨닫거나 사후적으로 고백할 때에 비로소 의미가 있다.

그럼 고통을 겪고 있는 이에게 어떻게 위로하는 것이 좋을까? 고상하고 의미있는 말을 들려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지금 고통의 심연에 있는 자는 전적으로 슬픔과 통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저 함께 함으로, 함께 애도함으로, 그 슬픔에 공감하며 그·그녀와 함께 현전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함부로 그것은 어설픈 훈도와 공허한 설교를 내뱉지 말 일이다. '고통이 선생이었소'라는 짜릿한 외침은 긴 밤을 지나 동굴에서 나온 사람의 피로 쓴 고백문일 때 비로소 진실이 된다.

◇ 고통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까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단련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피트니스(Fitness)를 해본 사람이면 알고 있는 원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 체력을 넘어서는 무게를 버티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근육조직이 굵어지고 힘이 강화된다. 40kg의 무게를 들 수 있는 사람은 50kg의 무게를 시도해야 하고, 100kg의 무게로 운동하는 사람은 120kg의 무게에 도전해야 한다. 자신의 한계치를 넘어서는 무게를 감당하는 일은 힘들지만 그걸 버틸 때 근육이 강화된다. 그 고통을 견디며 세트(set)를 반복해 내면 어느 순간 예전에 불가능했던 무게를 거뜬히 들 수 있게 된다. 반대로 40kg의 무게를 드는 사람이 갑자기 100kg의 무게를 들게 되면 근육이 파열되거나 뼈가 손상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발견한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사람을 무너뜨리지만,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은 우리를 강하게 한다는 것이다.

고통과 시련은 종종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고 굴욕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한없이 높았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러나 그 심리적 통각과 굴욕을 이겨낸 사람은 엄청난 내공을 얻게 된다. 중국의 작은 거인이라 불리던 등소평은 문화혁명 때 숙청돼 시골 오지로 귀양을 갔다. 누구든 그렇게 좌천되면 절망하기 마련이다. 매일 술을 퍼마시고 세상을 저주하며 보내다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망가지기 일쑤다. 그런데 등소평은 주기적으로 모택동에게 편지를 보내었다.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고, 조국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존경한다고, 다시 기회를 주면 인민을 위해 삶을 바치겠노라'고 거듭 강조했다. 끊임없이 편지를 썼다. 마침내 그는 복권 됐고 이후 중국의 국가 주석이 됐다. 나는 이를 등소평의 와신상담이라고 부르고 싶다.

◇ 고통은 강한 자와 약한 자를 구별하는 시금석

강한 자와 약한 자는 그가 지닌 힘과 소유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강한 자는 고통을 통해 배움을 얻고 굴욕의 밑바닥에서 맑은 정신과 의지를 잃지 않는다. 때로는 힘든 과정과 고통스런 길을 스스로 선택하기도 한다. 반면 약한 자는 작은 고통에 절망해 무너지고 인간적인 품위를 잃어버린다.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차이는 소유(to have)가 아니라 존재(to be)에, 감투나 지위가 아니라 강인하고 고결한 정신력에 있다.

언젠가 우리나라 양궁선수들이 훈련하는 장면을 시청한 적이 있다. 여자선수들이었다. 그들은 가정을 떠나 태릉선수촌에서 합숙 훈련을 했다. 남편과 자식, 애인을 만나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여자의 몸으로 군부대에 들어가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특공훈련과 유격훈련 받는다. 활을 쏠 때 예기치 않는 바람이 부는 경우를 대비하여 모진 바람이 부는 바닷가에서 활쏘기 연습을 한다. 때로는 해외에서 시합을 할 경우 관중들이 '우우우' 야유를 퍼부을 때 기분이 거슬리거나 감정이 동요되면 집중력이 떨어져 화살이 빗나가기 쉽다. 그런 상황에 대비해서 경정 게임장의 소란한 관중들 앞에서, 그리고 웅장한 기계소음이 들리는데서 연습한다. 우리나라 양궁이 지구촌에서 불후의 1위 자리를 지켜내는 데는 이같은 혹독한 훈련 과정이 있었다. 그것은 유쾌한 놀이가 아니라 버거운 훈련을 견디어낸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양궁 경기는 활쏘기 솜씨의 대결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는 겨루기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을 직면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는 인내한다. 그 과정은 전율스런 견딤의 연속이지만 어느 순간 강하고 순수해진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 그것은 고난이라는 정련과정을 통과한 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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