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인간은 이기적 존재일까?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3-03-27 1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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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관계, 우정관계 맺으면 편하고 풍요로워
이타적인 봉사를 하는 자는 행복을 경험해

2014년 몇 사람이 간헐적으로 대화 모임을 가졌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만남'이라고 이름붙였다. 거기서 한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에콰도르에서 2개월 봉사활동을 한 기간이었다고. 거기서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그녀는 그때의 그 행복감의 크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살아오면서 어떤 큰 성취나 성공을 이뤄 행복했을 때보다 10배 이상의 행복감을 느꼈다'고 말하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지구촌에서 열악한 지역 중 하나인 남미 산악지대, 거기서 그녀는 행복했으며 최상의 기쁨을 경험했다. 그 경험을 회상하면서도 마냥 행복해 한다. 왜 그럴까? 거기서 다른 일을 하며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을 할 때 행복하다.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 행동할 때, 나의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작은 도움을 베풀 때 적잖은 기쁨을 느낀다. 그런 활동 속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이웃관계 자체가 목적일수록 행복해

어느 바닷가에 갈매기와 친하게 노는 한 아이가 있었다. 매일같이 바닷가에 나가 뛰놀았다. 그 곁에는 언제나 갈매기 떼들이 다가와 끼룩끼룩 대며 어울렸다. 하루는 그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내일 바닷가에 나가거든 갈매기 중에 큰 놈 한 마리만 잡아와, 약재로 써야겠어." 다음날 아이는 갈매기 한 마리를 잡으러 바닷가로 나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한 마리도 아이 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갈매기떼는 아이를 피해 마냥 공중에서 맴돌았다. 아이가 먹이를 주겠다고 흉내를 내어도 일체 다가오지 않았다. 마치 갈매기들이 아이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이야기의 초점은 그것이 아니다. 우리가 다른 존재를 이용하거나 희생시키려 하면 함께 공존하기도 어울리기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두 종류의 철학이 있다. 자아의 철학과 타자의 철학이 그것이다. 타자의 철학을 지니고 살면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무척 자유로워진다. 아울러 다른 이들과 편하게 어울릴 수 있다. 타인의 존엄성을 인정할 뿐 아니라 모든 존재자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환대와 어울림, 그리고 공동체적 관계로 나아간다. 타자의 철학은 한 마디로 무목적적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무목적적 관계, 우리에게 그리 익숙한 스타일이 아니다. 이는 특정한 목적이나 이익, 이해관계에 대한 계산, 미래 시나리오나 일체의 각본을 내려놓고 그 관계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아울러 그 만남과 연결을 통해 생성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고 함께 성장하고 함께 어울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정, 환대, 이웃관계, 공동체, 봉사 등의 개념이 무목적적 관계와 상응한다. 관계 자체가 무목적적일수록 더 자유롭고 편안하다. 그런 관계망이 촘촘할수록 삶은 보다 안전하고 풍요롭다.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을 한 번 되짚어볼 일이다.

◇ 봉사하는 사람이 더 행복해

요즘 '인간은 이기적 존재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누구나 이를 마치 절대 진리로 여기는 것 같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번역 출판된 이후 부쩍 심해졌다. 이젠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그런데 '인간은 단지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 이기적인 생존 기계'라는 말을 '인간은 이기적이야' '이기적일 수밖에 없어'라는 식으로 말해버린다. 생존을 위해 공생하고 공존하는 법을 터득한 인류의 지혜를 강조하지 않는다.

'이기적'(selfish)이란 단어에 대한 단순한 이해도 문제다. 더구나 자신이 아는 특정 사람이나 인간 자체에 대해 일방적 평가의 화살로 사용하거나, 자신이 이기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말할 때면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아니다. 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하다. 이후 인간은 이타적 존재임을 강조하는 연구들도 이어지고, 이타적 유전자를 외치는 목소리들도 등장했다. 뇌스캔을 통해 연구한 결과 기부행위나 이타적 행위를 할 때 쾌감 및 행복감과 관련되는 뇌 부위가 크게 활성화된다는 연구들도 발표됐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이타적일 수 있다. 나아가 오히려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 더 행복하고 충만한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줄 때 더 행복하다. 요즘 유행하는 온갖 행복론과 웰빙 이론들도 이를 뒷받침 한다.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경제적 사회적(관계적) 웰빙 심리적 웰빙 문화적 웰빙에 대해서 말하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타인을 위한 봉사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타적 행동이 행복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자신의 경험들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미소를 목격하게 된다.

구호활동가 한비야가 아프리카 케냐의 소말리아 국경 근처의 구호 캠프에 머물 때였다. 그 캠프는 대규모 가뭄에 대한 긴급 구호로서 식량과 물을 공급하고, 이동 안과병원을 운영 중이었다. 그 이동 병원에 40대 중반의 케냐인 안과 의사가 있었다. 알고보니 대통령도 그를 만나려면 며칠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한 의사인데 그런 깡촌 오지에 와서 일하고 있었다. 특히 그곳은 한센병과 비슷한 풍토병과 함께 악성 악질이 창궐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그 의사는 전염성 풍토병 환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며 치료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한비야가 물었다.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나요?" 그는 어금니가 모두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일고 머릿속이 짜릿했다고 한다.

가슴이 뛴다는 것은 단지 심리적 흥분이나 신체적 짜릿함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충만한 행복, 자신이 살아 있다는 느낌, 넘치는 기쁨을 나타낸 것을 보인다. 가슴이 뛰는 일, 그게 무얼까? 의료행위나 특정한 봉사활동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 머리를 벗어나 가슴의 소리를 들으며 살 때 가슴 뛰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아주 멀리서만 가능한 것이 결코 아니란 것이다. 일상 속에서, 내 삶의 자리에서도 충분히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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