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감축했는데 인증 못받으면?...'자발적 탄소시장' 정부의 역할은?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3-03-09 13:27:51
  • -
  • +
  • 인쇄
탄소중립 핵심은 기술·재원 끌어오는 '탄소시장'
신뢰도·표준화 문제로 지체...정부가 조율 나서야
▲'자발적 탄소시장 글로벌 동향 및 국내 활성화 방향' 세미나 토론중인 패널들. 왼쪽부터 신용녀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기술임원, 이동혁 하나증권 실장, 이용권 산림청 해외자원담당관, 오덕교 한국ESG기준원 선임위원,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원장,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newstree


배출량 검증과정에 대한 불신이 민간 차원에서 탄소배출권을 사고 파는 '자발적 탄소시장'(VCM·Voluntary Carbon Market)의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자발적 탄소시장 글로벌 동향 및 국내 활성화 방향' 세미나에서는 탄소중립에 있어 VCM의 중요성과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

VCM의 활성화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중요한 과제다. 탄소중립에 필요한 재원과 기술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배출권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탄소시장'이 형성되어야 하고, VCM은 그 핵심이기 때문이다.

탄소시장은 정부 주도의 '규제적 탄소시장'(Compliance Carbon Market·CCM)과 민간 주도의 '자발적 탄소시장'(VCM)으로 나뉜다. VCM을 통해 기업은 탄소 규제에 대응할 수 있고, 정부는 CCM을 통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달성할 수 있다.

CCM은 정부가 강제하기 때문에 확실한 효력을 발휘하지만, 정부가 사전에 정한 할당배출권 외에는 공급이 제한적이다. 이렇게 배출권 시장이 경직된 구조이다보니 가격 등락폭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VCM은 기업·지자체·개인 등이 자발적으로 감축사업을 추진해 발생한 감축실적(Credit)을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지정한 할당대상이 아니더라도 탄소감축을 유도할 수 있다. 일례로 SK엔무브는 지난해 6월 윤활유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을 상쇄하기 위해 우루과이 산림 조성을 통해 창출된 배출권을 구매했다.

문제는 VCM에서 거래되는 탄소배출권을 인정할 수 있느냐다. VCM은 정부나 규제기관의 직접적인 감독을 받지 않고, 국가별로 탄소감축과 기후적응정책의 기준이 달라서 탄소배출량 인증과정에서 신뢰도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VCM에 대한 표준화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VCM과 CCM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추세여서 탄소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날 세미나에서도 정부 역할론으로 △시장에 대한 확고한 시그널 △선제적인 플랫폼 마련 △국가간 채널 구축 등 3가지가 제시됐다.

싱가포르 국무총리실 국가기후변화전략그룹의 베네딕트 치아(Benedict Chia) 국장은 "기업들의 자발적인 탄소저감 활동이 더 많은 나라에서 탄소배출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기준을 마련하고, 국가간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조율해야 하기 떄문에 VCM 활성화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파리기후변화협정 제6조의 규제틀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싱가포르는 자국내 탄소세를 도입해 기업들에게 탄소시장의 중요성에 대한 확고한 신호를 보낼 계획이다. 싱가포르는 2024년부터 탄소배출량 1톤당 17달러50센트를 부과하는 것을 시작으로 2030년에는 최대 56달러의 탄소세를 자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부과할 예정이다.

또 싱가포르는 정부 차원에서 환경친화기업 '화이트리스트'를 관리하고, 이들의 실적을 세계은행이 출범시킨 데이터 플랫폼 기후행동데이터재단(Climate Action Data Trust)에 공시해 높은 신뢰도의 탄소 크레딧을 보장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기반으로 싱가포르는 탄소의 측정·보고·검증 전 과정에서 앞서나가 국제적인 탄소거래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구상이다.

일본은 공동크레딧메커니즘(JCM·Joint Credit Mechanism)을 통해 25개 국가와 양자협력을 통해 민간기업의 탄소배출권 거래를 장려하고 있다. 켄타로 국제환경전략연구소 부국장은 "현재 일본 기업이 재생에너지, 에너지효율, 폐기물 등의 친환경 분야에서 개발도상국 파트너에 기술 및 금전적 지원을 할 경우 파트너 국가가 JCM 크레딧을 건네주는 방식으로 234개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라며 "환경성이 보조금을 지원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뒤이은 토론에 패널로 참석한 이용권 산림청 해외자원담당관은 "산림청은 2012년부터 산림을 활용한 국외 온실가스 감축수단 사업인 레드플러스(REDD+) 사업을 통해 캄보디아에서만 65만톤의 탄소배출권을 발행했고, 80% 가까이를 VCM에서 판매해 280만달러의 판매 실적을 거뒀다"며 "경험과 기술이 축적되면 정부가 할 역할은 쌓인 것들을 잘 표준화해서 시장에 공급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담당관은 "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지자체든 VCM에 참여하고자 하는 플레이어들을 위해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나는 불확실성을 제거해주는 게 정부기관의 역할"이라며 "정부가 G2G 플랫폼을 이용해 기업들의 경로를 보장해주기 위해 JCM과 같은 툴을 마련할 수 있도록 연내 입법조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나증권 이동혁 실장은 "VCM 거래가 대부분 장외에서 이뤄지고 있고, 엄밀한 표준화가 진행되지 못해 온전한 시장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ESG 원자재로 불리는 탄소배출권의 가격이 우상향할 것이라는 시장참여자들의 믿음이 없으면 감축 의지를 제고할 가능성이 미약하다"고 밝혔다.

이 실장은 "VCM의 탄소배출량 측정 방법론에 대한 신뢰도가 전반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에 탄소배출권 가격 또한 낮아져 투자수익률이 담보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금융권 입장에서는 탄소배출권의 무결성과 신뢰도 확보를 통한 가격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달 탄소배출권 인증사업을 시작하고 이르면 올 하반기 가칭 'VCM 거래소'를 개설할 계획이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환경규제 강한 국가일수록 친환경 제품 생산지로 각광...이유는?

친환경 제품을 제조하는 기업들이 환경규제가 강한 국가로 생산거점을 옮기는 '녹색 피난처'(green haven) 전략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과학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 무늬만 친환경?...탄소배출량이 내연기관차급

저탄소 친환경 자동차로 규정되고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PHEV)가 실제로는 휘발유 내연기관 자동차와 맞먹는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것

KT 불법 기지국 4개→20개로...소액결제 피해자 더 늘었다

KT가 자사 통신망에 접속해 가입자 불법결제에 이용한 불법 초소형기지국(펨토셀)이 20개였던 것으로 전수조사 결과 드러났다. 당초 알려진 바로는 불

현대차, 인니에 플라스틱 자원순환시설 개소...수거부터 교육까지

현대자동차가 지속가능한 자원순환 생태계 조성 일환으로 인도네시아에 지역주민 주도형 플라스틱 자원순환시설을 개소했다. 16일(현지시간) 인도네

삼성전자-삼성물산, 혈액으로 암 조기진단 美기업에 1.1억불 투자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증상이 없는 사람의 혈액 채취만으로 암을 조기 진단하는 미국 생명공학 기업 '그레일(Grail)'에 16일(현지시간) 1억1000만달러를

[현장&] "아름다운가게 지역매장은 왜 소비쿠폰 안돼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정리를 한다. 여름내내 입었던 옷들을 옷장에서 꺼내 상자에 집어넣고, 상자에 있던 가을겨울 옷들을 꺼내서 옷장에 하나씩 정

기후/환경

+

"70억달러 태양광 보조금 내놔!"...美 22개주 연방정부 대상 소송

트럼프 행정부가 70억달러 규모의 태양광발전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자, 미국 22개 주에서 이를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16일(현지시간) 롭 본타 미국

환경규제 강한 국가일수록 친환경 제품 생산지로 각광...이유는?

친환경 제품을 제조하는 기업들이 환경규제가 강한 국가로 생산거점을 옮기는 '녹색 피난처'(green haven) 전략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과학기

탄소감축과 자연회복 동시 추진...UNEP, 개도국에 1억불 투입

유엔환경계획(UNEP)이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 보전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한 1억달러 규모의 국제 프로그램을 출범했다.16일(현지시

[주말날씨] 비온 후 '쌀쌀'...서울 기온 5℃까지 '뚝'

이번 주말에 또 비소식이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추워지니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비는 17일 저녁 서쪽부터 내리기 시작해 밤사

기후변화에 위력 커진 태풍...알래스카 마을 휩쓸었다

미국 알래스카 해안이 태풍 할롱에 초토화됐다. 폭풍으로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으며 1500명 이상의 마을 주민이 이재민이 됐다.15일(현지시간) 알

올여름 52년만에 제일 더웠다...온열질환자 20% '껑충'

1973년 이후 가장 더웠던 올여름 온열질환자 수가 작년 대비 약 20% 증가했다. 2018년 이후 두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5월 15일부터 9월 2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