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익숙함 버리기...변화의 출발점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3-02-24 0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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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흐름에 선 인류, 그리고 나와 너
변화감지 제대로 인식하고 방향 잡아야


아프리카 사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사자는 사냥에 허탕을 치고 굶주리는 경우가 많았다. 쉽게 사냥을 하고 마냥 배부르게 먹고 낮잠만 자는 사자 이미지가 깨졌다. 건기가 되면 아사하는 사자들도 많았다. 성체 사자들 대부분이 주리고 갓 태어난 새끼는 무려 70%가 영양실조로 죽어갔다. 어미 사자의 젖이 말라버려서다. 못먹어서 힘없는 어미 사자는 제대로 달리지 못해서 사냥에 허탕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사자 가족이 불쌍해 보였다. 의외의 장면을 목격한 나는 한 가지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자신이 아무리 유능하고 똑똑하고 남다른 재주를 지녔더라도 항상 잘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상황이 열악하거나 급변하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법이다.

◇ 변화의 속도 '브레이크가 없다'

지난 2월 17일 팀머만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뮌헨안보회의에서 "지구온난화가 전세계 안보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구환경의 변화는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몸으로 체감할 정도가 됐다. 이상기후, 대양의 산화, 질소 순환 파괴, 광범위한 사막화, 토양 오염과 침식, 다양한 생물종의 멸종 등 생태 위기가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속도가 놀랍게 빨라지고 있다. 이른바 대가속 시대(the great acceleration)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 생태에 미치는 충격이 전례없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이제 지구의 지질학적 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지구의 생태에 미치는 인류의 힘이 결정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이르렀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생태 위기는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예견한 '역사의 종말'을 넘어서는 '인류의 생존' 여부를 논하는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머지않아 인류의 멸종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경고음이 들릴 지경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의 삶에 일어난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 미디어 영상, 인터넷과 스마트폰, 유투브 등으로 우리 생활은 편리해졌으며 소통과 정보 습득, 학습과 문화 활동에 격변이 일어났다.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수십 년 내 많은 직업들이 사라지고 기계가 이를 대체하게 되리라 예상한다. 여기에 챗GPT가 개발돼 보편화를 앞두고 있다. 챗GPT의 진화가 초래할 변화는 인터넷 혁명에 버금갈 것이라고 예견된다고 한다. 산업혁명 이후 지난 몇 백년간 인류에게 일어난 변화는 그 이전 수십만 년동안 일어난 변화보다 크다고 한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그 기류는 도도하고도 위협적이다. 그 파장이 미치지 않는 영역은 거의 없다. 개인만이 아니라 가정과 공동체, 사회와 국가 모두가 이들 변화의 추이를 파악하고 따라잡기에 급급하다. 게다가 아무도 그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다. 문제는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것이다. 멈춰 서 있으면 이미 뒤처지고, 같은 속도로 달리자니 신체와 역량이 뒤따르지 않는다.

◇ 변화 대응도 각양각색···유연성이 필요하다

변화에 대처하는 반응은 실로 다양하다. 변화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 불길해 하거나 당황하는 사람, 애써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사람, 그 추세를 알고 따라 잡으려는 사람, 이어지는 변화를 예견하고 준비하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다. 이런 대응은 수동적이거나 다분히 반응적이다. 반면 능동적인 대응도 있다. 민첩하게 대응하는 사람, 변화의 파도를 타는 사람,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그들이다.

미시간대학 조직행동학자 칼 웨익(Karl E, Weick)의 유명한 실험이 있다. 그는 8마리의 꿀벌과 8마리의 파리를 유리병에 넣고 병의 바닥을 창가를 향하도록 하고 병을 눕혔다. 꿀벌들은 출구를 찾으려고 병의 내벽에 온몸을 부딛히며 날개짓을 쉬지 않았다. 그러다가 힘이 빠져 굶어 죽는다. 그런데 파리들은 2분도 안돼 입구를 찾아 병 밖으로 모두 탈출했다. 이는 꿀벌과 파리의 생리의 차이 때문이다. 빛을 좋아하는 습성을 지닌 꿀벌은 빛이 비치는 창문 방향으로 마냥 돌진하거나 그 근처만 맴돈다. 그러다가 지쳐 날개를 접는다. 반면 파리는 사방으로 날아다니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다. 병의 모든 측면을 더듬으며 부딛히다가 마침내 출구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를 '칼 웨익의 파리'라고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변화된 상황에 내던져졌으며 출구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꿀벌의 습성을 당장 내던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간 나에게 익숙한 습관과 사고방식, 행동 패턴을 바꾸는 것이 출발점이다.

볼트나 너트를 풀고 조이는 두 종류의 도구가 있다. 하나는 렌치, 다른 하나는 몽키 스패너다. 렌치는 정해진 모양의 홈 하나가 몸체에 붙어있어서 자기에게 맞는 것들만 조일 수 있다. 반면 몽키 스패너는 사물의 크기에 맞춰 자신의 머리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렌치는 다양한 크기의 볼트 혹은 너트가 있을 경우 매번 렌치를 바꿔야 한다. 따라서 수많은 렌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몽키 스패너는 하나로 각양 크기의 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 우리는 하나의 신체만을 가졌다. 내 존재에 몽키 스패너의 유연성을 갖출 일이다.

◇ 가슴의 소리, 내면의 소리 듣기

'잠시 멈추라'고 스스로에게 말하자. 변화의 급류를 보다 민감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다. 그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서다. 급류가 거세고 소용돌이가 우리를 휘감을지라도 우리 마음은 그 흐름을 벗어날 수 있다. 호흡을 가다듬고 내 삶의 방향을 조정하고 나아가는 것이 지혜다. 자신을 성찰하고 무언가 선택해야 한다. 변화의 진폭이 크고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그 양상은 복잡계처럼 움직이고 있다. 여러 변수들을 파악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복잡계가 작동할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동이다. 즉 자기 스스로가 변수가 되는 일이다. 선택하고 행동하는 일, 이는 바깥의 흐름을 읽어내는 작업만큼이나 소중하고 시급하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처럼 살거나, 다르게 살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 방향은 삶다운 삶을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과 즐거이 잘 할 수 있는 일과 꼭 해야 할 일을 알아내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그것을 즐기고 몰입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하지만 그걸 알아채기가 힘들다. 많은 이들이 삶의 무의미를 느끼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의 생각과 욕망과 기호는 이 시대의 담론과 문화에 의해 크게 규정되어 있고 미디어와 권력과 자본은 우리의 내면까지 조종하는 전능을 발휘하고 있다. 해법이 있는 것일까? 물론 하나의 답이란 없다. 그렇다면 선택해야 한다. 삶다운 삶을 좌표로 선택하기, 이것이 기본축이다. 그리고 매일 매 순간 선택하고 그것을 향유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물론 나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삶다운 삶을 누리는 것이 방향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븐 잡스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서서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오늘 내가 할일은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할 일인가?' 그리고 그는 3일 연속 자신의 질문에 '예스'라고 답할 수 없다면 무언가 큰 변화를 두어야 한다고 봤다. 그는 단순한 엔지니어나 사업가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진정 가치있는 삶을 추구한 내면의 사람으로 보인다.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도구가 되었다.···그러므로 지금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을 따라 행동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잡스의 고백적인 이 말은 우리에게 매력적인 선동이 아닐 수 없다. 가슴의 소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에 따라 움직이면 후회하지 않는다. 가슴의 진동은 허상이나 허구적 관념을 뛰어넘어 최선의 가치를 찾아내게 한다. 그 누구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내려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서버이벌만을 목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더더욱 슬픈 일이다. 우리 각자의 삶의 스토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서사는 다 써지지 않았다. 내 삶의 드라마를 멈추지 않고 오늘 써야할 이야기를 살아낼 일이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선택과 행동일 것이다.

영국의 시인 오든(Auden, Wystan Hugh)의 시에 이런 시구가 있다.

"참다운 삶을 바라는 사람은 주저 말고 나서라
싫으면 그뿐이겠지만, 그럼 묘지 자리나 보러 다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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