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재벌이 기후총회 의장?..."여우에게 닭장 맡긴 격"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3-01-17 17:26:25
  • -
  • +
  • 인쇄
COP28 의장에 UAE석유공사 CEO 지명
기후변화 합의 이끄는 약? 훼방놓는 독?
▲술탄 아흐메드 알 자베르 국영아부다비석유공사 CEO (사진=UAE 산업첨단기술부)

석유회사 최고경영자(CEO)가 전세계 기후변화대응 최고의사결정기구의 사령탑이 되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개최국인 아랍에미리트(UAE)가 지난 14일(현지시간) 국영아부다비석유공사(ADNOC) 회장(CEO) 술탄 아흐메드 알 자베르(Sultan Ahmed Al Jaber)를 지명하면서 기후활동가들과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석유기업 회장이 전세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의제를 이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국제 구호기구 액션에이드(Action Aid)의 테레사 앤더슨(Teresa Anderson)은 "유엔 기후정상회의는 전세계가 오염유발자의 책임을 묻기 위한 자리인데 화석연료 이권단체가 끼어들어 의제를 공중납치하는 것만 같다"면서 "알 자베르의 지명은 여우에게 닭장을 맡긴 격"이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COP 의장은 대개 장관들이 맡았다.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의장을 지명하는 것은 표면적인 협상과 합의 과정을 거치지만 전적으로 개최국의 권한이기도 하다. 2022년 이집트에서 열린 COP27에서는 사메 하산 슈크리(Sameh Hassan Shoukry) 외무장관이 의장을 맡았다. 2021년 영국에서 열린 COP26 의장도 알록 샤르마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장관이었다.

COP28 의장으로 지명된 알 자베르도 UAE 산업첨단기술부 장관을 겸직하지만 ADNOC의 회장도 맡고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ADNOC은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1%를 차지하는 100대 기업 가운데 하나이고, 2015년 세계에서 8번째로 배출량이 많은 기업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ADNOC의 하루평균 원유 생산량은 270만배럴에 달했고, 2027년까지 생산량을 500만톤까지 2배가량 확대할 계획이다.

1500여개 시민단체들의 연합인 기후행동네트워크의 타스님 에솝(Tasneem Essop) 대표는 "알 자베르는 이해상충이 있는 인물로,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을 주재할 수 없다"며 "그가 CEO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국영석유회사와 그와 관련된 화석연료 로비스트들이 COP28을 전면적으로 장악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의 직함이 오히려 전세계가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후위기 대열에 합류하는 게 껄끄러운 석유회사들 사이에서 알 자베르가 윤활유 역할을 하며 협상 테이블에 끌어다 앉힐 수 있고, 재생에너지 전환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 자베르는 UAE에서 산업첨단기술부 장관 외에 기후변화특사도 맡고 있다. 게다가 그는 다목적 미래에너지원 개발 및 상용화를 위해 설립된 아부다비미래에너지공사(ADFEC)의 CEO이기도 하다. 이 공기업은 2030년까지 태양광 및 풍력 발전용량을 100기가와트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또 UAE는 세계 8위 산유국이지만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첫번째 나라이기도 하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수석 기후협상가 토시 음파누 음파누(Tosi Mpanu Mpanu)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화석연료와 탈탄소화 그리고 우리가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이해한다"고 밝혔다.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 존 케리(John F. Kerry) 역시 "독특한 역할 조합"이라며 "모든 필요한 이해관계자들을 더 빠르고 규모에 맞게 테이블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이집트에서 열린 COP27은 화석연료 수출국들에 의해 '즉각적인 퇴출'이 아닌 '단계적 감축', 청정에너지나 재생에너지보다는 '저배출' 에너지 언급을 중심으로 합의문을 유도해 회담 자체의 의의가 유야무야 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염두에 둔 탓인지 알 자베르는 COP28 의장 취임연설에서 "COP28이 실용적이고 현실적으로 '행동하는' COP가 되어야 한다"며 "전세계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3배 늘리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안토니우 구테후스(Antó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의 제안으로 올 9월 기후행동정상회담(Climate Action Summit)이 COP28에 앞서 개최될 예정이다. COP27에서 부족했던 감축 분야의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차원에서다. 유엔은 회의 참석 조건으로 각 국가가 이때까지 '신뢰할 만하고 진지한 새로운 기후행동 및 자연기반 해법'이 담긴 내용을 제출하도록 했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KB국민은행, 중소·중견 대상 '우리기업 탄소기업 첫걸음' 이벤트

KB국민은행이 온라인 플랫폼 'KB 탄소관리시스템' 신규 등록하는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우리 기업 탄소관리 첫걸음'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20

[ESG;NOW] 하이트진로 탄소배출량 감축했다고?...생산량 감소로 '착시'

하이트진로가 최근 2년간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9% 감축한 것으로 공개했지만 실제로는 판매량 감소로 인한 착시현상인 것으로 드러났다.하이트진로의

환경규제 강한 국가일수록 친환경 제품 생산지로 각광...이유는?

친환경 제품을 제조하는 기업들이 환경규제가 강한 국가로 생산거점을 옮기는 '녹색 피난처'(green haven) 전략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과학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 무늬만 친환경?...탄소배출량이 내연기관차급

저탄소 친환경 자동차로 규정되고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PHEV)가 실제로는 휘발유 내연기관 자동차와 맞먹는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것

KT 불법 기지국 4개→20개로...소액결제 피해자 더 늘었다

KT가 자사 통신망에 접속해 가입자 불법결제에 이용한 불법 초소형기지국(펨토셀)이 20개였던 것으로 전수조사 결과 드러났다. 당초 알려진 바로는 불

현대차, 인니에 플라스틱 자원순환시설 개소...수거부터 교육까지

현대자동차가 지속가능한 자원순환 생태계 조성 일환으로 인도네시아에 지역주민 주도형 플라스틱 자원순환시설을 개소했다. 16일(현지시간) 인도네

기후/환경

+

국제해운 '탄소세' 연기에…기후솔루션 "2050 탄소중립 시계 멈췄다"

국제해운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세계 첫 탄소세 시장 도입이 최종 문턱에서 불발되자, 기후환경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녹색이 사라지는 바다...기후변화로 식물성 플랑크톤 감소

지구온난화로 전세계 바다에서 녹색이 사라지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과 중국 칭화대학 연구팀은 2001~2023년 중·저위도 해

트럼프 어깃장에...수년간 합의한 '해운 탄소세' 물거품되나?

당초 2027년부터 도입할 예정이었던 이른바 '해운 탄소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개 반대에 부딪혀 1년 이상 연기됐다.유엔 산하 국제해사기

지역따라 미세먼지 특성 달라...서울은 '빛반사형' 멕시코는 '빛흡수형'

도시에 따라 대기를 뒤덮은 초미세먼지(PM2.5)의 성분이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은 햇빛을 반사해 지구를 식히는 성분이 많은 반면, 멕시코시

[날씨] 갑자기 닥친 겨울...아침 1℃까지 '뚝' 산간은 첫눈

기온이 갑자기 1℃까지 뚝 떨어지면서 초겨울 날씨를 보이겠다.20일 기상청에 따르면 찬공기가 남하하면서 아침기온이 2℃까지 떨어지고 강원도 북부

[ESG;NOW] 하이트진로 탄소배출량 감축했다고?...생산량 감소로 '착시'

하이트진로가 최근 2년간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9% 감축한 것으로 공개했지만 실제로는 판매량 감소로 인한 착시현상인 것으로 드러났다.하이트진로의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