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가방끈이 길어야 성공할까?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5-27 13:5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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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들 가운데 명문대 중퇴자 많아
새로운 시도 하는 자, 새로운 삶 연다
▲미국 하버드대학 전경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대학 졸업장이 없다. 하버드대학을 다니다가 중퇴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 외에도 대학을 다니다가 중퇴하고 자수성가해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들은 의외로 많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 유명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등. 그래서 이들의 이름은 대학교육 무용론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자주 언급되기도 한다.

'하버드를 자퇴하면 사장이 되고 하버드를 졸업하면 직원이 된다'는 도전적인 말도 생겨났다. 심지어 '하버드는 자퇴하기 위해 입학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퇴 예찬을 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미국의 경제활동 인구 가운데 5분의 1 정도가 대학 중퇴생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페이팔(PayPal) 창업자 피터 틸은 학교를 그만두라고 격려하며 장학재단까지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가방 끈이 길어야 성공한다'는 기존 관념을 깬 인물들은 드물지 않다.

한번 생각해보자. 누구든 다니던 대학을 중퇴한다고 해서 다 성공한 삶을 살게 될까? 그렇지 않다. 절로 사업가가 되거나 억만장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대학 중퇴자들의 삶의 행로를 다 추적해 통계를 내면 자퇴 예찬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쉬 드러날 것이다. 따라서 대학을 졸업하는 것보다 자퇴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더 좋다고 가벼이 일반화하기는 곤란하다.

◇ 대학중퇴한 빌 게이츠의 도전

하지만 빌 게이츠의 사례는 보다 심도있게 살펴볼 가치가 있다. 단지 대학중퇴냐, 졸업이냐는 단순한 질문으로 치환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첫째, 그의 선택은 모험적이고 창의적인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명문대학을 자퇴하는 일은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건 모험이다. 하지만 이런 모험없이 새로운 것이 시작될 수 없다. 자신의 삶의 흐름을 탈주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자가 새로운 삶을 열어갈 수 있다.

둘째, 변화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각의 중요성이다. 그는 하버드대를 자퇴하고 MS를 창업하게 된 일에 대해 "당시 흐름상 시기를 놓치면 안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존 컴퓨터 운영체계(OS)를 뛰어넘는 새로운 운영체계를 만들기 위해 변화의 흐름 한 가운데로 뛰어든 것이다. 지금 시대의 변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 이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면 누구든 낡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변화를 주도한다면 변화의 주역이 될 수 있다. 여하한 변화의 물결을 타고 항해하거나 그 위에서 서핑하는 감각과 용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나를 둘러싼 환경, 기술과 담론의 변화 추이를 살피고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셋째, 제도 교육을 넘어서는 방향을 바라보게 한다. 어느 나라든 제도 교육은 정형화된 인간을 양성하는 기능을 한다. 학교는 사회적 훈육의 질서의 중심에 있다. 게다가 노동 시장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 잘 적응하고 경쟁에서 이기면 보다 나은 보상이 주어지는 구조다. 이를 지탱하는 것은 학력 사회이며 그 산물은 학력 엘리트들이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여전히 다들 대학 입학에 목숨을 걸고 있다. 부유층과 파워 엘리트들은 이력 부풀리기와 영어 논문을 표절·대필해서라도 자기 자녀를 명문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편법을 마다하지 않는 수준이다.

지금 시대가 급변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옛 것은 쓸모와 효용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그만큼 단 몇 년간의 공부로 취득한 졸업장의 가치도 줄었다. 학력이 자신의 삶을 모든 것을 보증해주는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잘 습득하고 변화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학습력이 긴요해지고 있다. 그래서 공교육에서도 자기주도 학습과 창의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인들조차 계속 학습하고 전문성이나 기술을 터득하지 않으면 삶이 위협받는 형국이다.

넷째, 독서의 중요성이다. 빌 게이츠는 중퇴 이후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자신의 꿈을 키웠다. 대개 진정한 자기 학습은 교실에서보다 도서관에서 이뤄진다. 어떤 책을 스스로 선택해 읽느냐, 얼마나 교과서가 아닌 책들을 자기 것으로 삼느냐가 관건이다. 인문학적 소양도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양서를 읽는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나를 따라하지 말라"

빌 게이츠는 자신의 하버드 중퇴 스토리와 관련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빌 게이츠는 '나를 따라하지 말라'고 권한다.

"그런데 사실 (중퇴를) 추천하지는 않아요. 대학 중퇴가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옳은 선택이 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학업을 중단하는 게 성공을 위한 하나의 당연한 룰처럼 여겨지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대학 중퇴는 정말 예외적인 사례로 봐주세요. 그리고 대부분의 상황은 (학업을 중단할 정도로) 시급하지 않거든요."

그가 9년 전 서울대학교에서 강연할 때 남긴 말이다. 그는 평범한 학생은 학교를 끝까지 다녀 졸업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그것이 오히려 자기발전이나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건 사실이다. 여전히 대학졸업자들은 비졸업자보다 원하는 직장이나 임금이 더 높은 직업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학업과정을 충실하게 이수할 때 커리어나 전문성이나 기술을 용이하게 획득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빌 게이츠를 따라 할 필요가 없다. 대학을 중퇴하거나, 자신이 하던 일을 마구 내던질 필요도 없다. 하지만 빌 게이츠와 도전적인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인식의 틀을 넘어서게 힘이 있다. 평범하게 살기보다 가치있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던지는 강렬한 화두가 있다. 그것은 탈주, 변화, 도전과 모험이다.

◇ 서바이벌이 아니라 리얼 라이프

얼마전 영화 '초선'(Chosen) 시사회에 참석했다. 이 영화는 한국계 미국인 4명이 미국의 의원선거에 도전하는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든 전후석 제작자는 미국과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영화인이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변호사가 됐다. 그런 그가 왜 변호사를 그만 두고 영화제작자가 됐을까? 거의 소설과 같은 계기가 있었다.

몇 년 전 그가 쿠바 여행을 하는 도중 우연히 운전사를 통해 한 쿠바 한인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이어서 여러 한인들을 만나게 되고 이를 영상에 담아 다큐 영화로 제작했다. 영화 '헤로니모'가 그것이다. 이 다큐영화에는 '헤로니모'(Jeronimo Lim)라는 이름의 한인 쿠바 혁명가의 삶과 스토리가 담겨있다. 그는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 활동을 했고, 체게바라와 함께 일하기도 했다. 인생 후반부에는 쿠바 한인공동체를 복원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 영화는 KBS에서 축약해서 상영했고, 전국의 독립영화관이나 대형영화관에서 상영됐다.


이후 전후석 작가는 독립영화 제작에 전념했다. 그를 영화제작으로 이끈 것은 '영화'라는 장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좀 더 근원적이다. 그것은 '디아스포라 한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카메라는 들고 전세계 한인 동포들을 찾아다닌다. 그의 영화제작 작업은 단지 한편의 영화 작품을 만드는 일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화를 통해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 동포들이 연결되고 디아스포라 한인의 정체성을 함께 발견하고 재구성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것은 한인 동포들과 젊은 세대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도록 돕는 일이자 전후석이라는 한 청년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전후석 작가의 스토리 역시 빌 게이츠처럼 그리 평범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 매료된다. 나 역시 일상의 삶에 모험과 탈주를 시도하고 싶지만 쉬 할 수도 없고,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자신이 바라는 삶을 찾기 위해 모험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다. 예술가, 공익 사회 활동가, 정치인, 종교인, 사업가, 학자, 귀농귀촌한 사람들, 새로운 공동체를 꾸려 살아가는 사람들, 작가, 여행자, 이직자 등. 각자의 이야기나 사연은 다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공통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평범한 삶보다는 생생한 삶, 생계나 성공보다는 의미 있는 삶을 살고픈 깊은 열망이다. 특히 21세기들어 우리 사회에서 일과 행복의 개념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성공의 개념 역시 변모하고 있다. 생존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삶, 서바이벌(survival)이 아니라 리얼 라이프(real life)를 살고 싶다. 그것은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타자와 연결돼 의미있는 활동·노동을 하며 산다면 더더욱 좋다.
 
'대학 중퇴냐 vs 졸업이냐, 성공이냐 vs 실패냐' 하는 도식은 그리 좋은 질문이 아닌 것같다. 좋은 질문이 좋은 대답과 해법을 낳는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자. '순응의 길인가 vs 변화의 길인가, 나의 길인가 vs 나의 길이 아닌가'. 빌 게이츠의 이야기를 한 별난 사람의 기적적인 성공담으로 들먹이고 싶지 않다. 그 속에 숨어있는 어떤 메시지를 찾아보자. 그리고 나의 자양분으로 삼자. 자신의 길을 찾는 데 필요한 신선한 에너지가 담긴 양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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