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서해안은 기록적인 폭우로 물난리가 나는데 태백산맥 너머 동쪽에는 수개월째 비가 오지 않아 마실 물도 부족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서쪽은 극한호우, 동쪽은 극한가뭄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구온난화가 지목되고 있다.
올들어 비 피해는 서쪽에만 집중됐다.7월 하순에는 충청권과 남부지역에 역대급 폭우가 쏟아지면서 도로와 주택뿐 아니라 농경지들도 침수피해를 입었다. 당시 산청군 시천면에는 5일동안 무려 798㎜의 비가 퍼부었다. 8월초 내린 폭우도 남부지방에 집중됐다. 이 시기에 무안에는 1시간에 141㎜의 비가 쏟아졌다. 8월중순 폭우도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피해를 낳았다. 인천 옹진군 덕적도에는 1시간에 149.2㎜의 비가 퍼부었다.
하지만 태백산맥 동쪽 강원지역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기후·지형적 특성으로 서쪽보다 동쪽의 강수량이 적긴 하지만 올해는 유독 그 차이가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6개월동안 강릉에 내린 비의 양은 386.9㎜로, 평년의 절반 이하에 불과했다. 특히 최근 한달 강수량은 평년의 16.7%에 그치고 있다. 4개월 넘게 가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식수를 조달하는 상수원도 바닥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강릉시는 계량기를 50%로 잠그는 제한급수를 실시하고 있다. 지금 상황이 이어지면 28일쯤 75%까지 제한급수를 해야 할 상황이 된다. 하지만 9월까지 비소식은 없다는 예보다.
25일과 26일도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비가 내리고 있지만 비가 가장 절실한 강릉은 찔끔 내리고 말았다. 26일 경기와 충청권은 시간당 30~50㎜의 극한호우가 쏟아질 것으로 예보돼 있고, 전북 10개 지역은 최대 80㎜ 폭우 예보에 호우특보까지 발효된 상태다. 그런데 강원 동해안 지역은 고작 5㎜의 가랑비만 내릴 전망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비구름대가 높은 태백산맥을 넘기 전에 대부분 비를 쏟아버리는 탓이다.

한반도 서쪽과 동쪽의 강우량이 이처럼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은 올해 강세를 보이는 북태평양고기압 때문이다.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북태평양고기압은 끊임없이 한반도로 습하고 더운 공기를 유입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여름철 우리나라는 고온다습한 날씨가 이어진다.
대기가 더운 수증기가 가득차 있을 때 차고 건조한 공기가 유입되면 비가 내린다. 그런데 올해는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이 평년보다 강해서 비가 내릴 기회가 적었다. 실제로 올 6~7월 전국 평균 강수일수는 약 18.4일로 평년의 70%에 불과했다.
비가 내릴 기회가 적어지면서 한반도 상공의 대기는 마치 공기가 꽉찬 풍선같은 상태가 됐다. 이런 상태에서 남쪽에서 태풍 등 저기압이 몰려오거나 북서쪽에서 차고 건조한 공기가 유입되면 강한 비구름대가 형성되면서 풍선이 터지듯 극한호우를 퍼붓는 것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뉴스트리와의 통화에서 "비를 쏟고 나면 대기 중 수증기는 줄어든다"면서 "줄어든 수증기가 보충이 되어야 또 비를 내릴 힘이 생기는데 내륙지역과 동해안 지역에서는 이 수증기를 보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순식간에 비를 쏟아내고 건조해진 대기가 강릉으로 향하면서 가뭄이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쪽과 서쪽의 극단적인 날씨 패턴이 발생한 직접적 원인은 북태평양고기압 때문이지만, 북태평양고기압이 올해 유독 그 세력이 강한 이유는 지구온난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해수온이 상승하고, 이 상승한 해수온이 덥고 습한 공기를 북태평양고기압에 계속 공급해주고 있는 것이다. 올해 가마솥더위가 유난히 길어지고 있는 것도 이런 원인에서다.
전 기상청장인 서울대 남재철 교수는 "고기압은 다양한 요인으로 세력히 발달하는데, 특히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 대량의 수증기가 대기 상층으로 이동해 고기압 세력 형성을 돕는다"며 "올해 북태평양고기압이 평년보다 빠르고 강하게 세력을 확장·유지했는데, 해수면 온도 상승이 주된 원인이 아닐까 의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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