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ESG풍향계] 한국기업의 ESG경영 아직은 '불합격'

최남수 서정대 교수 / 기사승인 : 2024-08-19 10:06:34
  • -
  • +
  • 인쇄

국내에서 ESG가 핵심 이슈로 떠오른 것은 최근 3~4년의 일이다. ESG는 이젠 기업 경영의 새로운 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기업들은 속속 관련 체계를 갖추고 활발하게 ESG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 기업의 ESG 경영은 어느 정도 수준에 와 있을까? 형식적인 면에서는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지만, 내실은 아직 '불합격'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ESG 경영의 전반적인 성적표를 들여다보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18개국의 52만여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 기업의 ESG 점수는 11.50점으로 글로벌 평균치인 20.66점을 크게 밑돌았다.

부분별로 보면, 지배구조(G)가 전체 평균치의 44.5%(13.28점)에 불과해 가장 저조했고, 다음으로 환경(E)이 51.2%(6.47점), 사회(S)가 67.5%(13.28점)로 집계됐다. 세계 수준과 큰 격차가 있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의 ESG 등급은 부진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한국ESG기준원이 공표한 2023년 등급을 보면 가장 높은 S등급을 받은 기업은 한 곳도 없다. A+ 기업도 전체의 2.4%인 19개에 불과하다. 특히 '불합격'이라고 볼 수 있는 B, C, D 등급은 전체 상장사 791개 중 459개로 10개 중 6개에 달하고 있다.

세부항목별로 살펴보면 규모가 큰 기업은 ESG 경영의 형식을 갖춰가고 있지만 작은 기업일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상 ESG 경영을 얘기할 때 우선 점검해보는 것은 ESG위원회의 설치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발간 여부다. 먼저 ESG위원회의 경우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대기업집단 소속 기업의 60%가 이를 둔 반면 기업집단에 들어가지 않은 기업의 설치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도 상황은 마찬가지. 자산 규모가 2조원 이상인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의 보고서 발간 비율은 56%인 데 비해 2조원 미만 기업의 비율은 5%로 매우 낮다. 자산 규모가 작을수록 보고서 발간에 엄두를 못내고 있다.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성과가 좋지 않은 사안도 있다. 대표적인 항목이 탄소중립 목표의 수립. 전체 상장사 중 13.6%인 126개 기업만이 이 목표를 세운 상태다. 이 또한 자산 규모가 작을수록 더 미흡하다. 다양성과 포용성으로 불리는 남녀평등 이슈도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수준이다.

딜로이트의 분석을 보면 2023년 기준으로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8.8%로 글로벌 수준인 23.3%를 크게 하회하고 있다. 이는 조사 대상 50개국 중 최하위 5개국에 해당한다. 또 여성 이사회 의장 비율이 2.3%, 여성 CEO 비율이 2.9%에 불과하다. 지배구조의 경우 상장법인의 기업지배구조보고서 핵심 지표 평균 준수 비율(2024년 기준)은 49.7%에 그치고 있다. 특히 집중투표제 채택이 2.9%,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 13.0%, 현금배당 관련 예측 가능성 제공이 16.6%로 저조하다.

최근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생물다양성에 대한 대응은 어떨까? 관심을 가지고 대응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기는 하다. 문제는 접근 방식이 외국 기업과 큰 차이를 보인다는 데 있다. 해외 기업들은 생물다양성 손실을 복원시키는 방안을 경영 전략 안에 포함해 추진하는 특징을 보인다. 자연이 훼손된 것보다 더 많이 회복시키겠다는 '네이처 포지티브'에 시동을 건 세일즈포스나 삼림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제품을 생산하겠다고 선언한 제지업체 인터내셔널 페이퍼가 대표적 예이다. 이에 비해 한국 기업들은 전략적 고려없이 나무심기나 천연기념물 보호 등 사회적 책임 활동의 하나로 생물다양성 이슈를 다루는 모습이다. 또 ESG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한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기업은 환경을 가장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ESG 평가기관들은 지배구조에 가장 큰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다. 평가기관이 상대적으로 더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면 기업으로서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지배구조 문제를 다루는 데 소극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종합해보면, 한국 기업의 ESG 경영은 아직 합격점을 줄 수 있는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구력' 자체가 얼마 되지 않은 탓일 수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영혁신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기업가치는 키우는 ESG의 핵심을 놓치고 있고 이로 인해 ESG의 본질적이고 적극적인 착근(着根)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ESG는 경영과 가치사슬 전반에 환경을 보호하고 사람을 돌보는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을 내재화해서 기업의 가치를 제고하는 데 본질적 목적이 있다. 한국 기업이 진정성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시선을 바꾸고 실천해 나가면 ESG 경영의 수준도 점차 선진화돼 나아갈 것으로 기대해본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 최남수서정대 교수 nschoi@seojeong.ac.kr  다른기사보기
  • 현 서정대 교수/SK증권 ESG위원장/전 YTN 대표/ 전 MTN 대표

핫이슈

+

Video

+

ESG

+

현대제철, CDP 선정 기후대응 원자재 부문 우수기업 수상

현대제철이 글로벌 지속가능경영 평가기관인 CDP(Carbon Disclosure Project,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로부터 기후변화 대응 분야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현대

'해킹사고' 부실 대응 SK텔레콤..."ESG 등급 하락 불가피"

SK텔레콤 해킹사태로 고객 개인정보가 무방비로 유출되면서 SKT의 ESG평가에서 사회(S)부문과 종합부문 등급이 1등급씩 하락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고객

KB국민은행, 올해 지역에 '작은 도서관' 9곳 더 늘린다

KB국민은행이 올해까지 134개의 'KB작은도서관'을 조성해 미래세대를 위한 독서 인프라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30일 밝혔다.KB국민은행은 지난 14일에는 울

LG유플러스, CDP '탄소경영 아너스 클럽' 수상

LG유플러스가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버서더 서울호텔에서 열린 '2024 CDP(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 코리아 어워즈'에서 CDP 기후변화 대응 부문(CDP Climate

11번가 사령탑 교체...신임 대표로 박현수 CBO 선임

SK스퀘어 자회사 11번가가 지난 29일 오후 열린 이사회에서 신임 대표이사로 박현수 11번가 CBO(최고사업책임)를 선임했다고 30일 밝혔다. 안정은 전임 대

경기도 푸드뱅크, 세제와 휴지 등 '생활용품'도 기부받는다

경기도가 푸드뱅크를 통해 식품뿐만 아니라 세제와 휴지 등 다양한 생활용품도 기부받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푸드뱅크·마켓은 취약계층에 기부

기후/환경

+

대구 함지산 산불 '재발화'...강풍에 불씨 되살아나

이틀만에 주불이 잡히면서 완전된 것으로 알았던 대구 함지산 산불이 다시 발화하면서 주민들이 다시 대피했다. 건조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불어대는

기후위기로 야외 음악공연도 '위기'...티켓 판매부진 현상

호주에서 기후위기로 야외 뮤직 페스티벌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보고서가 나왔다.호주 로열 멜버른 공과대학(RMIT)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발간한 '뮤

"해운탄소세 피하려면 '전기추진선'으로 교체해야"

탄소배출이 많은 선박을 전기추진선으로 대체하고 녹색해운항로를 개척하면 해운부문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해운은 전

기후재해 보상은 왜 제한?...손보사 車보험약관 공정위 '심판대'

기후위기로 올여름도 무더위와 수해 피해에 대한 우려가 높은 가운데 기후위기로 인한 재해 피해는 보상하지 않는 보험약관의 불공정 조항을 개정해

대구 산불 이틀째 진화율 82%...주불 아직도 못잡아

지난 28일 발생해 이틀째 번지고 있는 대구 함지산 산불이 아직도 주불을 잡지 못하고 있다.산림 당국에 따르면 29일 오전 8시 기준 대구시 북구 노곡&mid

트럼프 '해저광물' 개발규제 완화에..."생태계에 치명적" 비판

미국이 해저 광물 개발을 장려하기로 한 결정에 "해양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