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평균연령 71세..."폐지 어르신들 위해 업사이클링 합니다"

김나윤 기자 / 기사승인 : 2024-02-27 08: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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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가게 뷰티풀펠로우] 러블리페이퍼
폐지줍는 노인 돕고, 폐지로 자원순환도 하고

뉴스트리가 재단법인 아름다운가게 '뷰티풀펠로우'에 선정된 기업을 차례로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뷰티풀펠로우는 지속가능하고 혁신적인 비즈니스모델로 일상생활 속 긍정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사회혁신리더를 선발해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편집자주]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 ©Newstree


입구에 들어서자 골판지 상자와 종이쌀포대가 먼저 반겼다. 켜켜이 쌓여있는 종이쌀포대 앞에서 얼핏봐도 70세가 훌쩍 넘어보이는 노인 한 분이 앞치마를 두르고 쉴새없이 분리작업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무슨 작업인가 싶어 조용히 옆에서 지켜봤더니, 종이쌀포대 겉포장지에서 속지를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저것으로 무얼 하려는 것이지?'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안쪽 사무실에 있던 사람이 다가와 "쌀포대 속지로 가방을 만들고 있다"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의 안내를 받아 들어선 사무실 한편엔 종이로 만든 가방들이 즐비하게 전시돼 있었다. "정말 이게 종이로 만든 거라구요?"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겉보기에 전혀 종이같지 않았다.

종이로도 재활용할 수 없는 일반쓰레기인 쌀포대로 예쁜 가방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이곳은 인천 부평에 위치한 러블리페이퍼(LoveRe:Paper)다. 이 회사의 기우진(42) 대표는 "우리는 노인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업사이클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들이 줍는 폐지를 시가보다 비싸게 매입해주고, 매입한 폐지로 업사이클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인들을 고용하고 있는 기우진 대표. 8년간 대안학교 교사생활을 했던 그는 어쩌다 이 사업에 뛰어들게 됐을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봤다.


◇ "골판지와 쌀포대로 노인 일자리 만들죠"


▲러블리페이퍼는 폐지를 자원재생활동가 어르신들로부터 비싸게 사들인다. (사진=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는 어느날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어르신을 보면서 '무언가 도울 일이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2017년 러블리페이퍼를 창업했다. 그는 "업사이클링은 노인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한 방법"이라며 "업사이클 제품 특성상 수작업이 필요한데, 이 수작업을 위해 노인들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러블리페이퍼가 사들이는 폐지는 골판지와 종이쌀포대다. 택배상자인 골판지는 지역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들로부터 비싸게 사들인다. 폐지의 시세는 1kg당 50원이지만 러블리페이퍼는 이보다 6배 비싼 1kg당 300원에 매입한다. 매주 매입하는 폐지는 대략 30~50kg 정도.

이렇게 사들인 골판지는 주로 미술용 캔버스를 제작한다. 폐골판지를 3겹 겹치고 그 위에 면을 씌운다. 캔버스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나무틀 대신 골판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기 대표는 "골판지로 만든 캔버스는 습기에 약해서 습기에도 변형되지 않는 적정한 크기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골판지 캔버스는 재능기부 작가들에게 제공하고, 작가들은 이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 러블리페이퍼에 기부한다. 기부된 작품은 러블리페이퍼 정기구독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기 대표는 "폐지를 활용하기 위한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인테리어용 미술품으로 재탄생한 골판지 (사진=러블리페이퍼)


쌀포대는 학교급식전문업체나 CJ프레시웨이 등에서 매달 4500개가량을 제공받는다. 제품명이 인쇄된 겉포장지는 재활용이 불가능해서, 속지로 쓰이는 크래프트지를 활용해 가방을 만든다. 찢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실밥이 들어있는 속지는 튼튼하다. 하지만 가방에 어울리는 소재로 가공해야 했다. 종이 질감을 살리면서 재봉 가능한 소재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기 대표가 직접 인조가죽을 참고해 압착 및 엠보싱 가공을 거쳐 합지 형태의 종이가죽을 개발했다. 친환경 코팅재를 사용해 방수처리도 했다. 이렇게 만든 종이가죽은 종이류로 분리배출할 수 있다. 이 종이가죽은 2022년 특허등록까지 마쳤다. 올록볼록 엠보싱으로 처리된 종이가죽을 실제로 만져보고 살펴보니 가죽처럼 단단한 질감이 느껴졌다.

러블리페이퍼는 10종이 넘는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었지만 현재 5종만 시중에 판매하고 있다. 남산타워를 비롯해 제주시니어클럽 등에서 판매하고 있고, 가방 외에도 노트, 다이어리, 종이봉투 등도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메신저백은 3만원이고, 보냉백은 2만5500원이다. 15~20만원하는 여타 업사이클링 제품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일명 쇼핑백으로 일컫는 종이봉투는 1개당 1500원으로, 다른 쇼핑백과 비교해도 가격이 비싸지 않다는 게 기 대표의 설명이다.

기우진 대표는 "삼성SDS, SK, 현대, CJ프레시웨이 등 주로 기업과 기관의 이벤트용으로 주문이 많이 들어온다"면서 "고객사 요청에 맞춰 제품을 제작하는 비중이 전체 매출비중의 70%에 달한다"고 말했다. 


◇ "회사가 노인들의 소중한 공동체 역할"


▲러블리페이퍼에 채용된 노인들이 골판지로 캔버스를 만들고 있다. (사진=러블리페이퍼)


러블리페이퍼에 근무하는 직원 대부분은 노인들이다. 기우진 대표는 "근무중인 어르신들의 평균연령이 71세"라며 "2019년 7월에 입사한 86세 어르신이 최고령 직원"이라고 귀띔했다. 고령인 여건을 고려해 이들은 하루 3~4시간 일하고 50분마다 10분씩 휴식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어르신들에게 주는 가치는 생계 이상으로 크다는 게 기우진 대표의 생각이다. 어르신들에게 러블리페이퍼는 단순 직장이 아닌 자존감과 소속감을 높일 수 있는 소중한 공동체가 된다는 것이다. 황혼기에 뭐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할 때, 부족해진 자존감을 채우고 동료 노인들과 같이 일하며 소속감을 느끼고 사회적 지지를 받는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고 기 대표는 강조했다.

"실제로 어르신들이 그렇게 말씀하세요. 눈 떠서 갈 데가 있고, 일할 데가 있고, 동무들이 있어 좋다고요. 표면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어르신들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게 보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일부러 자원을 비싸게 사들이고 시장성이 떨어지는 제품을 생산하는 비즈니스는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 대표는 지난해 러블리페이퍼를 주식회사에서 비영리법인으로 전환했다. 어르신들에게 집중하려면 비영리법인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아름다운가게와 연계한 폐지수거 봉사활동 '우리는 자원재생활동가입니다' (사진=러블리페이퍼)


현재 인천에서만 폐지로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이 최소 2500명에 이른다. 실제로 이 숫자보다 더 많다는 게 기 대표의 얘기다. 이들은 버려지는 자원을 수거해 환경에 이바지하는 엄연한 '자원재생활동가'들이다. 기 대표는 "폐지줍는 어르신들을 단지 연민과 시혜의 대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자원순환 측면에서 이들이 지닌 능동적인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러블리페이퍼는 연내 이들을 위한 '자원재생활동가지원센터'를 인천에 설립할 계획이다. 이 센터가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전반적인 지원을 하는 커뮤니티가 되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기 대표는 "사각지대에 놓은 노인들에게 좀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면서 "러블리페이퍼의 궁극적인 목표는 빈곤노인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폐지줍는 노인의 수가 자연히 사라지거나 법과 제도가 정비돼 노인 지원이 완벽해져서 러블리페이퍼가 할 일이 없어졌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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