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규제' 코앞에 닥쳤는데...정부는 '먼산 불구경'?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3-06-14 10:33:26
  • -
  • +
  • 인쇄
국내 업계, 생산량 감축 규제하면 타격 불가피
재활용 기반 부실...재생원료 통계기반도 없어


플라스틱 생산감축을 골자로 하는 '플라스틱 국제협약' 초안이 올 11월 확정될 예정인 가운데 국내 플라스틱업계의 타격을 줄이기 위해 재활용 인프라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국내는 아직 정부 차원의 재생원료 통계기반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갈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14일 환경부 관계자는 뉴스트리와의 통화에서 "플라스틱 국제협약 초안에 신규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에 대한 내용이 들어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밝혔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은 지난 2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에서 열린 제2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2)에서 오는 11월까지 '법적 구속력' 있는 초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하면서 코앞에 직면했다.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생산량 비중은 전세계 4.1%에 달한다. 중국과 유럽연합(EU), 미국, 인도 다음으로 높기 때문에 관련 규제가 시행되면 국내 기업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신규 생산량 감축을 대체할 수 있는 재활용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올 2월 재활용 없이 버려지는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에 대해 호주 비영리단체 민더루재단(Minderoo Foundation)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롯데케미칼(14위), 한화케미칼(27위), LG화학(28위), SK이노베이션(45위), 대한유화(69위) 등 국내 기업 5곳이 100대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플라스틱 부문이 유럽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포함될 공산도 크다. 재활용으로 석유기반 원료를 감축하지 않거나 공정 과정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아 탄소발자국이 높은 플라스틱 제품을 수출하게 되면 해당 국가에서 탄소세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제품의 가격경쟁력은 떨어지게 된다.

오는 2026년까지 CBAM에 플라스틱 추가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지만, 이미 EU 회원국들은 탈플라스틱 정책에 따라 2025년 페트병 재생원료 비중을 25%, 2030년부터는 30% 이상 쓰기로 했기 때문에 규제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영국은 재생 플라스틱 비중이 30% 미만인 포장재에 대해 1톤당 200파운드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플라스틱이 탄소세 부과대상에 포함되면 지난해 기준 대(對)EU 수출 가운데 20.1%에 해당하는 13억6672만유로(약 1조8800억원)를 차지했던 국내 화학공업과 플라스틱, 고무관련 제품들은 관세를 추가로 물어야 한다.

올 11월 마련되는 '플라스틱 국제협약' 초안을 바탕으로 오는 2024년 하반기 서울에서 열리는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에서 최종안이 확정될 예정이다. 유예기간이 2년 부여된다고 가정하면 2027년쯤 협약이 시행되면서 전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생산과 사용은 제한을 받게 된다. 여기에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따라 우리나라는 산업부문에서 탄소배출을 11.4% 저감해야 하는데, 이 가운데 석유화학산업 비중은 산업부문의 17%를 차지한다. 더구나 석유화학산업은 석유를 원료뿐 아니라 연료로도 사용한다. 따라서 에너지 집약적이면서도 원료지향적 산업인 플라스틱은 여타 부문에 비해 허들이 더 높다.

이처럼 수년내 국내·외 전방위적인 압박이 예상되면서 국내 플라스틱 업계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5월 '그린 프로미스 2030' 비전 하에 2030년까지 친환경 리사이클 소재 사업규모를 100만톤 이상으로 늘리는 동시에 원료부터 판매,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서 경제, 환경, 사회 분야에 미치는 영향과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롯데케미칼은 2021년 울산2공장에 약 1000억원을 투자해 국내 최초로 폐페트(PET)를 처리할 수 있는 해중합 공장을 4만5000톤 규모로 신설하고, 해중합 공장에서 생산된 재활용 원료인 BHET을 투입해 페트로 만드는 11만톤 규모의 생산설비를 2024년까지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수거된 폐페트의 원료화부터 제품생산에 이르는 자원순환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대규모 단일 공장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LG화학은 3100억원을 투입하는 충남 당진 석문산업단지에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생산시설을 지난달 30일 착공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생산시설을 구축해 연간 2만톤 규모로 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기업들이 재활용 설비를 아무리 대규모로 갖춰도 정작 공장가동에 필요한 재생원료 수급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2021년부터 바젤협약이 개정되면서 폐플라스틱 수입이 원천적으로 금지됐고, 국제 규제환경에 따라 자국 내에서 재생원료 물량을 공급하려는 시도가 늘어나면서 재생원료 가격도 치솟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는 순도가 높은 고품질의 재생원료를 대량으로 확보하기 힘들다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2021년 기준 롯데케미칼의 재생원료 사용량은 1만4850톤, LG화학은 14톤 수준이다. 재생원료 사용률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경부가 집계하는 우리나라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률은 연료로 쓰이는 '열적 재활용'과 분리배출된 폐기물의 '수거율'을 합산한 수치여서, 재생원료로 활용되는 실질적인 재활용률은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환경부의 '플라스틱 국제협약 INC 준비 로드맵'에 따르면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나오면 그에 맞춰 국내 플라스틱 통계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이 때문에 규제가 확정되기 이전에 정부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플라스틱 국제협약 협상동향 조사·연구' 보고서를 통해 "INC 협상은 국가별 대응보다는 유엔회원국 내 지역그룹 차원에서 대응하므로 사전에 지역그룹의 주요 입장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면서 "플라스틱 재활용의 가장 큰 문제는 재생원료 수급이 어렵다는 것이므로 대기업-중소기업 협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양순정 한국플라스틱산업협동조합 상무는 "우리나라는 석유자원이 전혀 없지만 노동력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플라스틱 선진국이고, 석유화학이 수출 주력산업이기 때문에 이번 국제협약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플라스틱 수급에 있어 분리수거를 통해 유용자원화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에 폐기물 선별·분리 시스템을 선진화하고 자동화하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SK이노, 독자개발한 LFP 배터리 재활용 기술 국제학술지 등재

SK이노베이션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재활용 기술 성과가 국제학술지에 등재됐다.SK이노베이션은 자사가 개발한 LFP 배터리 재활용 기술이 화학공학

KCC '대한민국 지속가능성대회' 11년 연속 수상

KCC가 '2025 대한민국 지속가능성대회'에서 지속가능성보고서상(KRCA) 제조 부문 우수보고서로 선정되며 11년 연속 수상했다고 4일 밝혔다.대한민국 지속

하나금융 'ESG스타트업' 15곳 선정...후속투자도 지원

하나금융그룹이 지원하는 '2025 하나 ESG 더블임팩트 매칭펀드'에 선정된 스타트업 15곳이 후속투자에 나섰다.하나금융그룹은 지난 2일 서울시 중구 동대

과기정통부 "쿠팡 전자서명키 악용...공격기간 6~11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전자서명키가 악용돼 발생했으며, 지난 6월 24일~11월 8일까지 공격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

李대통령, 쿠팡에 '과징금 강화와 징벌적손배제' 주문

쿠팡이 개인정보를 유출한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국내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이재명 대통령이 2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건에 대해 "사고원

이미 5000억 현금화한 김범석 쿠팡 창업자...책임경영 기피 '도마'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무단으로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쿠팡의 김범석 창업자가 1년전 쿠팡 주식 5000억언어치를 현금화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비

기후/환경

+

美 뉴잉글랜드 2.5℃까지 상승...온난화 속도 2배 빠르다

미국 북동부 지역 뉴잉글랜드주가 산업화 이전대비 평균기온이 2.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구에서 두번째로 기온 상승속도가 빠른 것이다.4

호주 AI데이터센터 난립에..."마실 물도 부족해질 것"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립이 급증하면서 호주가 물 부족을 우려하고 있다. 4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챗GPT'를 운영하는 미국의 오픈AI를 비롯

희토류 독식하는 美국방부..."군사장비 아닌 탈탄소화에 쓰여야"

지속가능한 기술개발에 쓰여야 할 희토류가 군사기술 개발에 사용되면서 기후행동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4일(현지시간) 미국과 영국의 공동연

'아프리카펭귄' 멸종 직면...먹이부족에 8년새 '95% 급감'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서식하는 아프리카펭귄이 멸종위기에 직면해있다.5일(현지시간) 영국 엑서터대학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산림·어

기습폭설에 '빙판길'...서울 발빠른 대처, 경기 '늑장 대처'

지난 4일 오후 6시 퇴근길에 딱 맞춰 쏟아지기 시작한 폭설의 여파는 5일 출근길까지 큰 혼잡과 불편을 초래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은 밤샘 제설작업으

[주말날씨] 중부지방 또 비나 눈...동해안은 건조하고 강풍

폭설과 강추위가 지나고 오는 주말에는 온화한 서풍이 유입되면서 기온이 올라 포근하겠다. 다만 겨울에 접어든 12월인만큼 아침 기온은 0℃ 안팎에 머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