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의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 체포·구금 사태는 '예견된 일'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미국 투자를 늘리는 만큼 현지 파견 인력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전임 윤석열 정부는 이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면서 이같은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미국 이민 당국에 의해 체포된 한국인 근로자는 대부분 전자여행허가(ESTA)와 단기 상용(B-1) 비자로 미국에 입국한 뒤 공사현장에서 근무했다. 이에 대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은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미국에서 일을 하려면 주재원(L-1 또는 E-2) 비자나 전문직(H-1B 또는 H-2B) 비자 등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취업비자를 받으려면 자격요건이 까다롭고 비자를 받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미국은 연간 발급해주는 취업비자의 수를 제한하고 있다보니, 편의상 여행비자를 받아 입국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이 연간 발급하는 취업비자 'H-1B'는 8만5000개다. 최근 1년동안 미국에 H-1B 비자를 신청한 사람은 전세계 48만명에 달했으니, 취득률은 18% 정도다. 추첨제로 하다보니 당장 현장에 필요한 전문가라도 취업비자를 받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H-2B 비자는 임시 비전문직 근로자를 위한 비자로 발급 수는 당해 상황에 따라 조정되지만 미국 내 일자리 부족을 증명해야 하는 조건이 있어 발급 절차가 까다롭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업들은 공사기한 등을 맞추기 위해 ESTA나 B-1 비자를 우회로로 활용해 왔다. ESTA는 90일간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으나 취업은 불가능하고, B-1 비자는 회의 참석, 계약 협상, 장비 설치 감독, 현장 점검 등 일부 활동은 허용되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노동 행위는 불법이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뉴스트리와 통화에서 "현지 인력만으로 새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이라며 "국내 기술자가 꼭 필요함에도 정식 비자를 받으려면 수개월이 소요되면서 프로젝트 일정에 맞출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이같은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한국과 미국 양국은 기업들의 대미투자 확대를 종용하고 있으면서 정작 입국 문턱은 낮추지 않아 이같은 사태가 빚어졌다.
한미경제포럼위원회에 따르면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칠레에 1400명, 호주에 1만500명, 싱가포르에 5400명의 '전용 취업비자 쿼터'를 할당했다. 그러나 FTA 체결국이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서는 취업비자 쿼터가 전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외교부는 지난 2012년부터 한국인 전문인력 대상 별도 비자(E-4 비자)를 신설하는 '한국 동반자법'(PWKA) 입법을 위해 힘쓰고 있지만 성과가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 박사는 뉴스트리와 통화에서 "다른 국가들처럼 비자 쿼터를 확보해 안정적인 인력 배치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지 않으면, 대미 투자 계획에 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며 "약속한 내용이 이행되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또 어떤 압박을 가할 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전 정부에서부터 외면받던 문제가 터진 셈"이라며 "정부가 전략적으로 협상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7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유사 사례 방지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및 관련 기업과 공조하에 대미 프로젝트 관련 출장자의 비자 체계 점검·개선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와 공동으로 대미 투자기업 간담회를 개최해 현대차그룹, LG엔솔, SK온, 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 기업들과 함께 대응책을 논의했다.
정부는 대미 투자 기업들이 수렴한 의견을 바탕으로 대미 투자 사업 진행을 위해 단기 파견에 필요한 비자 신설이나 비자 제도의 유연성 강화 등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국 측과 협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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