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ESG풍향계] 논란의 DEI '한국은 낙제점'

최남수 서정대 교수 / 기사승인 : 2025-04-15 10:56:12
  • -
  • +
  • 인쇄

최근 ESG 이슈 중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이다. 직장에서 성별, 인종 등 기준에 따른 차별을 없애자는 내용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인데 DEI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차별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DEI는 ESG 중 S(사회) 영역에 해당하는 주요 이슈다. 그동안 많은 기업이 이를 중요한 지표로 관리해왔다. 하지만 두 가지의 변화가 DEI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먼저 2023년 6월에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학입시에서 소수자를 우대해온 조치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다음으로 반(反) ESG 성향을 지닌 트럼프가 재집권했다. 특히 트럼프는 백악관에 다시 들어서자마자 ESG를 지우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DEI 정책에도 대수술을 가했다. 연방정부 및 기관의 DEI 프로그램을 종료시켰고, 연방기관의 형평성 행동계획을 폐지했다. 더 나아가 연방정부가 계약업체를 선정할 때 DEI를 요구해온 조항을 삭제한 데 이어 법무부가 DEI 관행을 유지하는 민간기업을 식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이렇듯 미국에서 사법적,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자 기업들이 DEI 축소에 나서고 있다. 금융기관 BofA와 모건스탠리는 채용 시 지원자의 다양성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고, 웰즈 파고는 연차보고서에서 DEI에 대한 언급 자체를 없앴다. 또 마이크로소프트는 DEI 부서를 해체했고, 메타도 채용, 교육, 공급업체 선정 등에 적용해온 DEI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미 정부가 서슬 퍼렇게 나오자 기업들이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에 저항해 종전 그대로 DEI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S&P 기업의 절반 가까이가 일정기간 안에 양적인 DEI 목표치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애플, 코스코, 델타 등 기업은 DEI를 실현하겠다는 기존 다짐을 유지하기로 했다. 특히 애플과 코스코의 주주들은 DEI를 비난하거나 폐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주주 제안을 부결시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는 "소수자를 포용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이는 수익을 내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DEI는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퓨리서치센터가 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인 56%가 DEI 개선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60% 가까이가 자신이 일하고 있는 직장이 채용, 급여, 승진에 있어서 공정성을 추구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렇듯 미국에서는 DEI가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면서 공방(攻防)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차원에서 기업경영의 중심축으로 부상한 ESG의 맥락에서 볼 때 DEI는 사람 존중 경영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이다. DEI를 양성평등의 렌즈로 들여다보면 현실은 '낙제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분석결과 '시니어 리더' 중 여성의 비율은 32%에 그치고 있다. 급여 격차도 만만치 않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해 기준으로 남성이 1달러를 벌 때 여성의 수입은 77.4센트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WEF는 양성평등을 이루는 데 무려 134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성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현실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역시 양성평등이 '낙제점'이라는 데 있다. 딜로이트가 집계한 이사회 및 최고 경영진 내 여성 비율을 보면 이같은 현실이 잘 드러난다. 한국 기업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불과 8.8%로 글로벌 비율인 23.3%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조사 대상 50개 나라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여성 이사회 의장과 CEO 비율도 각각 2.3%와 2.9%로 글로벌 수준(8.4%와 6.0%)을 밑돌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글로벌 차원에서 이사회 의장과 CEO의 양성평등은 각각 2073년과 2111년이 돼야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 시기가 더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또 '유리천장지수'가 OECD 29개 회원국 중 28위를 기록해 여성의 성장에 걸림돌이 많은 상태이고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큰 29.3%에 달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인권은 물론 ESG의 사람 존중 차원에서 시급히 개선돼야 할 사안이다. 여기에서 주목해봐야 할 점은 양성평등을 개선할수록 기업의 경과 성과도 좋아진다는 사실이다. 남성 일색으로 구성된 기업보다 여성에게도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기업의 성과가 더 낫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다양한 인력을 보유한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자산수익률(ROA)이 1.6% 포인트 높고, 여성 중간관리자가 많은 기업의 투자수익률이 더 높다고 분석했다. 맥킨지 또한 인력의 다양성과 기업의 재무적 성과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며 성별과 인종 기준으로 다양성이 낮은 기업은 성과도 좋지 않게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직관적으로도 이해가 가는 내용이다. 남성이나 특정 인종 위주일 때보다 여성과 다양한 인종을 적극적으로 채용할 경우 서로 다른 시각이 어우러지면서 경영상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DEI가 가져오는 선순환 효과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많은 기업이 체계적으로 DEI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미국의 경우 S&P500 기업의 55%가 DEI 목표치의 달성 여부에 따라 경영진의 성과급 수준을 결정하고 있다.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DEI 목표치를 설정하고 이를 경영진 보수와 연계시킨 나이키가 대표적 사례이다. 맥킨지는 기업들이 DEI를 전략적으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면서 실현 가능한 계획 수립, 자원의 동원, 성과의 측정 및 점검 등을 추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DEI가 글로벌 수준에 한참 뒤처져 있는 한국 기업들이 ESG 경영 역량을 제고하기 위해 배우고 귀담아들어야 할 얘기이고 사례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 최남수서정대 교수 nschoi@seojeong.ac.kr  다른기사보기
  • 현 서정대 교수/SK증권 ESG위원장/전 YTN 대표/ 전 MTN 대표

핫이슈

+

Video

+

ESG

+

현대제철, CDP 선정 기후대응 원자재 부문 우수기업 수상

현대제철이 글로벌 지속가능경영 평가기관인 CDP(Carbon Disclosure Project,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로부터 기후변화 대응 분야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현대

'해킹사고' 부실 대응 SK텔레콤..."ESG 등급 하락 불가피"

SK텔레콤 해킹사태로 고객 개인정보가 무방비로 유출되면서 SKT의 ESG평가에서 사회(S)부문과 종합부문 등급이 1등급씩 하락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고객

KB국민은행, 올해 지역에 '작은 도서관' 9곳 더 늘린다

KB국민은행이 올해까지 134개의 'KB작은도서관'을 조성해 미래세대를 위한 독서 인프라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30일 밝혔다.KB국민은행은 지난 14일에는 울

LG유플러스, CDP '탄소경영 아너스 클럽' 수상

LG유플러스가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버서더 서울호텔에서 열린 '2024 CDP(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 코리아 어워즈'에서 CDP 기후변화 대응 부문(CDP Climate

11번가 사령탑 교체...신임 대표로 박현수 CBO 선임

SK스퀘어 자회사 11번가가 지난 29일 오후 열린 이사회에서 신임 대표이사로 박현수 11번가 CBO(최고사업책임)를 선임했다고 30일 밝혔다. 안정은 전임 대

경기도 푸드뱅크, 세제와 휴지 등 '생활용품'도 기부받는다

경기도가 푸드뱅크를 통해 식품뿐만 아니라 세제와 휴지 등 다양한 생활용품도 기부받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푸드뱅크·마켓은 취약계층에 기부

기후/환경

+

기후위기로 야외 음악공연도 '위기'...티켓 판매부진 현상

호주에서 기후위기로 야외 뮤직 페스티벌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보고서가 나왔다.호주 로열 멜버른 공과대학(RMIT)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발간한 '뮤

"해운탄소세 피하려면 '전기추진선'으로 교체해야"

탄소배출이 많은 선박을 전기추진선으로 대체하고 녹색해운항로를 개척하면 해운부문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해운은 전

기후재해 보상은 왜 제한?...손보사 車보험약관 공정위 '심판대'

기후위기로 올여름도 무더위와 수해 피해에 대한 우려가 높은 가운데 기후위기로 인한 재해 피해는 보상하지 않는 보험약관의 불공정 조항을 개정해

대구 산불 이틀째 진화율 82%...주불 아직도 못잡아

지난 28일 발생해 이틀째 번지고 있는 대구 함지산 산불이 아직도 주불을 잡지 못하고 있다.산림 당국에 따르면 29일 오전 8시 기준 대구시 북구 노곡&mid

트럼프 '해저광물' 개발규제 완화에..."생태계에 치명적" 비판

미국이 해저 광물 개발을 장려하기로 한 결정에 "해양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철강 탈탄소없이는 탄소중립 없다...철강도 녹색전환해야"

철강산업의 탄소중립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다가올 새정부는 저탄소 철강 생산설비 비용의 30% 이상을 지원하는 정책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