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지구] 터널에 갇힌 '재생원료' 시장...'규모의 경제' 해법은?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4-03-20 08: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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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10편] 재생원료지침 '무용지물'
"최종 제품 생산자에 의무사용 부과해야"
한번 생산되면 사라지는데 500년 이상 걸리는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 참혹하다. 대기와 토양, 강과 바다. 심지어 남극과 심해에서도 플라스틱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 지구를 뒤덮고 있다. 이에 본지는 국제적인 플라스틱 규제가 마련되려는 시점을 맞아, 플라스틱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보고 아울러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기업을 연속기획 '플라스틱 지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플라스틱 펠릿

국내 플라스틱 재생원료 시장이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는 이유는 정부가 재생원료 사용을 강제하지 않은 데다, 물리적 재활용 사업을 중소기업만 할 수 있도록 지정하면서 '규모의 경제'가 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페트(PET)병은 연간 약 30만톤에 이른다. 이 가운데 수거돼 식음료용 재생원료로 판매된 양은 지난해 3400톤에 불과했다. 생산된 페트의 고작 1.1%만 식음료용 원료로 재활용된 것이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페트 재활용 비중이 20~30%에 달하는 주요국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낮다. 

국내에서 페트병을 잘게 자른 플레이크의 '식품용기 재생원료 생산 확인서'를 받은 공장은 수퍼빈의 '아이엠팩토리'와 알엠의 '에이치투' 2곳뿐이다. 이 확인서를 환경부로부터 받은 플레이크만 생수와 음료를 담는 페트병의 최종 원료인 '펠릿'으로 가공할 수 있다.

'펠릿'은 다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용기 재생원료 인증서'를 받아야만 실제 페트병 생산에 투입될 수 있다. 재생페트로 된 펠릿을 생산하는 공장은 에이치투 1곳뿐이다.

현재 정부는 플라스틱을 만들기 직전의 형태인 '펠릿'만 재생원료 생산량으로 집계하고 있기 때문에 지난해 3400톤의 재생원료는 모두 에이치투 공장에서 생산된 것이다. 이 공장은 연간 2만4000톤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지만, 지난해 생산한 재생원료는 고작 3400톤에 그쳤다. 그만큼 수요가 뒷받침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재생원료 수요가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단가'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석유화학계 신재 페트 레진의 가격은 1kg당 1800원인데 비해, 재생원료로 만든 펠릿의 가격은 1kg당 2100원으로 월등히 비싸다. 기업 입장에서는 재생원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페널티가 없는데 굳이 비싼 재생원료를 사용해서 원가를 높일 이유가 없는 셈이다.

결국 재생원료 단가를 신재 페트 레진만큼 낮춰야만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시장구조에서 재생원료 단가를 낮추는 것은 쉽지 않다. 에이치투 공장이 풀가동해도 한해 생산할 수 있는 재생원료는 2만4000톤에 불과해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물리적 재활용 사업은 중소기업만 할 수 있도록 지정돼 있어서, 재생원료 생산물량을 대량으로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 식품용기로 사용가능한 재생원료라는 것을 인증받으려면 공장설비에 수백억원을 투입해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중소기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플라스틱업계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면서 "의무사용을 통해 수요를 창출하고 '규모의 경제'를 조성해 재생원료 단가를 낮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페널티 없는데 누가 지키나?

환경부는 지난해부터 페트(PET)를 1만톤 이상 생산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재생원료를 3% 이상 생산하도록 '재활용 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페트 재사용 비율을 높이겠다는 것이 정부의 취지이지만, 이 지침은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지침은 원료기업에게만 부과되는 '권고'일 뿐 강제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업체들이 재생원료 3% 생산지침을 지켰다면 지난해 재생페트의 공급규모는 생산규모 30만톤의 3%인 9000톤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실제로 공급된 물량은 3400톤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원료기업들이 '3%지침'을 지키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에이치투 관계자는 "지난해 생산된 재생페트 3400톤은 해외 수요까지 합친 것"이라며 "국내 수요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재생원료에 대한 수요가 없으면 원료 생산자들이 생산설비 확충을 위해 뛰어들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가 내년부터 재생원료 생산비중을 10%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관련업계는 3%지침도 준수하지 않는데 이를 확대한다고 지키겠느냐고 반문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재생원료 생산비중을 위반하면 엄격하게 처벌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보니 지키지 않는다"면서 "키링이나 다른 제품으로 재생원료 3%를 맞추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페트 원료기업이 아니라 식음료 페트 생산기업이나 최종 제품생산자에게 재생원료 사용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에이치투 관계자는 "중간 원료생산자가 아닌 최종 제품생산자에게 페널티를 부과하지 않으면 이행목표율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잘라말했다.

실제로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주요국들은 2030년까지 페트병 등 식품포장재에 재생원료를 30% 이상 투입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의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세금을 부과하고, 할당량을 허위신고하다 적발되면 벌금을 부과한다.

플라스틱업계 한 관계자는 "재생원료를 30% 이상 사용하지 않은 식품포장재는 앞으로 유럽 등지로 수출할 수 없게 된다"면서 "국내 재생원료 시장을 확대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했다"며 정부의 발빠른 대응을 촉구했다.


◇ '물리적 재활용 사업' 중소기업으로는 한계

페트를 최종 생산하는 업체에게 재생원료 사용의무를 부과하기 이전에 넘어야 할 산이 있다. 현재는 재생원료를 사용하고 싶어도 공급물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재생원료의 단가를 낮출 수 없다. 

현재 시점에서 국내에서 생산가능한 식음료 재생원료 펠릿은 연간 2만4000톤이다. EU 기준에 맞춰 페트에 재생원료 비중을 30%로 섞어야 한다고 했을 때 국내에서 연간 생산되는 페트 30만톤을 기준으로 하면 최소 9만톤 이상의 재생원료가 국내에서 조달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이같은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결국 대규모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대기업이 뛰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보틀투보틀' 방식의 플라스틱 물리적 재활용 사업은 3년간 대기업이 진출할 수 없도록 막혀있다. 지난 2022년말 동반성장위원회에서 플라스틱 물리적재활용을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화학적재활용을 대기업이 담당하도록 역할분담한 것이다.

동반성장위원회는 플라스틱 자원순환경제 달성 차원에서 이같은 결정을 내렸지만 지난 1년간 재생원료 생산량이 높아지거나 수요가 늘어나지 않았으니 사실상 성과를 거두지 못한 셈이다. 식음료 페트로 사용가능한 재생원료를 생산하려면 정부 인증을 받아야 하므로, 수백억원을 들여 공장설비를 갖춰야 하는데 앞으로 2년 내 이 시장에 뛰어들 중소기업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수년에 걸쳐 아이엠팩토리 공장을 완공한 수퍼빈 관계자는 "수거한 투명페트병으로 플레이크(재생원료)를 생산하는 공정에 거의 400억원이 투입됐다"면서 "재생원료가 식음료 페트로 사용할 수 있으려면 수차례 이물질과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설비가 복잡하고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고품질 재생원료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대규모 자금동원에 한계가 있는 중소기업만으로 이 시장에 대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규모는 93조원이었고, 2030년에 160조원 규모로 늘어난다. 

게다가 올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플라스틱 국제협약에서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뿐 아니라 플라스틱 재활용 비중을 높이게 되면 국내 모든 식품포장재 업체들은 이 기준에 맞춰야 한다. 이 규약은 법적효력이 있기 때문에 위반시 그에 준하는 페널티가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이같은 시장흐름에 맞춰 제도의 강제성뿐만 아니라 공급부족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스틱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계 고품질 재생원료 시장은 급속하게 팽창하는데 우리나라는 국내 공급물량도 부족한 지경"이라며 "정부가 제도개선을 통해 하루빨리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지 않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수출경쟁력은 떨어지고 종국에는 도태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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