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 '극해오일·가스' 돈줄 조인다...다른 시중은행은?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3-02-24 08: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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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배출량 구속력 없고 고도화 시간 소요
명확한 투자 제한·회수 기준부터 만들어야
▲국내 4대 시중은행 가운데 KB국민은행만 극해오일 등 3대 분야에 대한 대출 및 투자제한 정책을 수립했다.(사진=연합뉴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탄소규제가 본격화되자 우리 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ESG 금융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저탄소 사회로 전환하는데 지렛대 역할을 해야 할 국내 금융권의 탈탄소 이행계획은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24일 뉴스트리 취재결과,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국내 4대 시중은행 가운데 석유와 가스사업 투자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 곳은 KB국민은행이 유일했다.


KB국민은행은 환경훼손 우려가 큰 타르샌드, 극해오일·가스, 심해오일·가스 등 3개 분야에 대해 대출 및 투자제한 정책을 수립했다. 2022년 6월 기준 이같은 비전통 화석연료 채굴업에 대한 노출도는 없다.

반면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우리은행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ESG위원회까지 꾸렸지만, 기업의 저탄소 경영을 유도하기 위한 투자회수나 제한 등의 실행정책은 없는 상태다.

신한은행은 '금융배출량 측정시스템'을 활용해 석탄·석유·가스분야를 나누지 않고 전반적인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사업에 대한 투자 규모 및 조건 조정을 통해 저탄소 경영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실제 투자 회수나 제한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게다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스코프3 배출을 최소 1년간 임시로 면제한다고 발표한 바 있어 실질적인 금융배출량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고도화가 필요한 작업이다.

하나은행은 올초 자산 포트폴리오 내 금융배출량을 산출했고, 고탄소배출산업을 식별·평가·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금 제한 및 회수와 관련된 정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하나은행은 연내 지속가능금융 프레임워크를 개정해 화석연료 투자제한 기준을 고도화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2020년 '혁신금융추진위원회'를 '뉴딜금융지원위원회'로 확대·개편하면서 수소연료전지,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4조7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던 우리은행은 인도네시아 찌레본 석탄화력발전소 사업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참여하고 있다.

이밖에도 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도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PF에 참여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투자사에 이름을 올리진 않았지만, 재생에너지 투자 비중은 가장 낮다.

PF 미인출 대출 약정액은 총 4조1000억원 규모다. 4대 시중은행은 석탄 부문에 한해 신규 투자를 제한하는 '탈석탄 금융선언'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선언을 하기 이전에 참여했던 해외투자 미인출 금액이 남아있어 신규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자산 노출도는 계속해서 늘어날 수 있다.

▲재생에너지 vs 석탄 누적 투자 비교(2012년~2022년 6월말) (자료=2022 화석연료 금융백서 1차 보고서)


이처럼 국내 금융권이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를 지속함에 따라 기업들의 탈탄소 전환도 느슨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탈탄소 경영은 기업들의 자발적인 노력에만 기댈 수 없기 때문에 돈줄을 쥐고 있는 금융권이 투자제한이나 장려책을 통해 기업들을 압박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금융권 자체가 탈탄소 경영이 선행되지 않고 있어서 기업들을 옥죄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화석연료 노출도가 높은 금융기관일수록 그만큼 리스크가 크고, 수익으로 연계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업들에게 탈탄소를 요구할 명분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2036년에 이르면 전세계 화석연료 자산 절반가량이 좌초자산으로 전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도 현행 은행 규정에는 화석연료 투자에 특별한 위험 가중치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유럽 금융규제 연구기관인 파이낸스워치는 앞으로 화석연료 자산가치가 급락할 것에 대비해 은행이 자기자본을 최대 3배 높일 것을 권고했다. 또 정유·가스회사들에 대한 위험 가중치를 최대 150%로 높이고, 신규 화석연료 투자에 대한 위험 가중치는 1250%까지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마디로 은행이 환경피해와 관련된 자본 규정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세계 많은 은행들이 이를 역행하면서 강력한 비판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올 1월 독일 GLS은행은 유엔 주도하에 설립된 '탄소중립은행연합'(NZBA)을 탈퇴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NZBA가 가입한 은행들을 대상으로 화석연료 투자를 규제하려 하자 월스트리트의 대형 은행들이 NZBA를 탈퇴하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이에 GLS은행은 NZBA에 계속 소속돼 있으면  본연의 의미와 기능이 퇴색될 것으로 판단해 탈퇴를 결심했다. NZBA에는 우리나라 4대 시중은행들도 모두 가입돼 있다.

화석연료 투자가 가져다주는 달콤한 열매를 포기하지 못하는 월스트리트의 대형은행들과 대조적으로, 화석연료 투자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은행도 있다. 덴마크 최대 은행인 단스케은행(Danske Bank)은 지난 1월 전세계 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중단을 선언했다. 자사 탄소발자국의 99.9%가 투자처에서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

단스케은행은 앞으로 △원유가 함유된 오일샌드와 셰일가스, 극해오일·가스, 심해오일·가스에서 수익의 5% 이상을 창출하는 화석연료기업 △ 석유·가스를 추출하는 기업 △오일샌드 수익의 5% 이상을 얻는 탐사 및 생산기업 △2050 넷제로 목표가 없거나 파리기후협정에 따라 신뢰할 수 있는 전환계획이 없는 석유·가스 기업 등에 투자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화석연료에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이 기후위기를 조장하고, 기후위기가 다시 금융 안정성을 해치는 일종의 '죽음의 고리'(doom loop)가 형성돼 있는 상황이다. 파이낸스워치는 "이같은 위험요인은 모델링 작업이 오래 걸릴 뿐이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선행조건이 아니다"며 "이미 이로 인한 경제적 여파는 자명하기 때문에 피해가 확산하기 전에 즉시 제재를 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금융권의 실질적이고 발빠른 대처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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