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차단하려다 불바다?…플라스틱 방음벽이 화재 키웠다

전찬우 기자 / 기사승인 : 2022-12-30 12:18:39
  • -
  • +
  • 인쇄
방음벽 대형 화재 '불쏘시개' 역할
우후죽순 '방음터널' 안전 사각지대
▲29일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연합뉴스)


29일 오후 1시49분경. 경기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을 달리던 차량들은 '펑'소리에 깜짝 놀랐다. 폐지 등 폐기물을 가득 실은 5톤 트럭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던 것이다. 

펑소리가 함께 조수석 밑에서 불이 나자, 트럭 운전자는 차량을 바깥 차로에 정차시키고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했다. 하지만 불길은 잡히지 않았다. 트럭이 정차한 곳은 안양에서 성남 방향의 갈현고가교로, 방음터널 3분의1 지점이었다. 

트럭을 방음벽과 가까운 3차선에 정차시킨 것이 화근이었을까. 소화기로도 화재가 잡히지 않자, 운전자는 트럭을 두고 빠져나갔다. 트럭의 불길은 그대로 방음터널 벽에 옮겨붙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하필 방음벽 소재가 플라스틱이었다.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이다.

불은 2시간여만인 오후 4시12분에 잡혔다. 이 화재로 길이 830m의 방음터널 가운데 600m가 뼈대가 앙상하게 남은 채 잿더미가 됐다.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차량만 45대나 됐다. 

인명 피해도 컸다. 5명이 사망하고 41명이 다쳤다. 사망자들은 불이 난 차로 반대방향인 성남에서 안양 방향으로 달리던 승용차 4대에서 발견돼 안타까움이 더했다.

▲철골 구조만 남은 모습 (사진=연합뉴스)


무엇이 이토록 불길을 키웠던 것일까. 그 원인으로 방음벽 소재가 지목되고 있다. 불이 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은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 소재를 이용해 2017년 8월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PMMA는 폴리카보네이트(PC)에 비해 다소 저렴하지만, 인화점이 약 280도로, 약 450도인 PC보다 낮아 화재 위험성이 더 높다.

실제로 화재 현장에서는 터널 천장의 방음벽이 모두 녹아 불덩이처럼 떨어지는 모습이 목격됐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아궁이에 불을 지핀 꼴이었다. 이 플라스틱 때문에 불은 삽시간에 번졌고, 유독가스가 터널을 가득 메웠다. 천장에서는 플라스틱 불덩어리가 뚝뚝 녹아 떨어졌다. 이 때문에 차량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참변을 당했다. 플라스틱을 태운 검은연기는 수십미터 상공으로 쉴새없이 뿜어져 나왔다. 

방음터널 안전관리에도 문제가 있었다. 방음터널은 소방법 및 국토안전관리원에 의해 터널로 분류되지 않다보니, 소방시설 설치를 하지 않아도 됐다. 갈현고가교 방음터널도 소화전은 물론이고 스크링쿨러 등 화재에 대비한 안전시설이 전무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비용효율성과 도로인근 주민의 편의를 위해 우후죽순 설치되고 있는 방음터널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용재 경민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30일 뉴스트리와의 통화에서 "화재가 급속도로 퍼진 주원인은 방음터널 소재 때문"이라며 "아크릴 소재에 불이 붙을 경우 액체 형태로 녹아내리는데, 불이 쉽게 꺼지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우리 주변에 방음터널과 비슷한 소재로 만들어져 화재사고에 취약한 다른 사례가 있는지 묻자 이 교수는 "현재 전국에 걸쳐 설치돼 있는 슬래브 지붕이 같은 소재"라고 답했다.

현재 사고현장은 그대로 보존된 상태다. 화재로 소실된 차량 45대도 현장에 남아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원인과 피해규모를 조사할 예정이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HLB생명과학-HLB 합병 철회…주식매수청구권 400억 초과

HLB생명과학이 HLB와 추진해오던 합병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양사는 리보세라닙 권리 통합과 경영 효율성 강화를 위해 합병을 추진해왔지만, 주식매

KCC, 울산 복지시설 새단장...고품질 페인트로 생활환경 개선

KCC가 울산 지역 복지시설 새단장에 힘을 보태며 사회공헌을 지속하고 있다.KCC가 지난 29일 울산해바라기센터 보수 도장을 진행했다고 31일 밝혔다. 추

SK AX, EU 에코디자인 규제 대비 '탄소데이터 통합지원 서비스' 제공

SK AX(옛 SK C&C)가 유럽연합(EU)의 공급망 규제 본격화에 대비해 국내 기업들이 민감 데이터를 지키고 규제도 대비할 수 있도록 '탄소데이터 대응 통합

안전사고 나면 감점...ESG평가 '산업재해' 비중 커지나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서 산업재해가 '핵심요소'로 부상하고 있다.31일 ESG 평가기관에 따르면 기업의 ESG 평가에서 감점 사례

SK온-SK엔무브 합병결의..."8조 자본확충해 사업·재무 리밸런싱"

SK온과 SK엔무브가 11월 1일자로 합병한다. 지난 2월 SK온이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과 합병한지 6개월만에 또다시 덩치를 키운다.SK이노베이션과 SK

'텀블러 세척기 사용후기 올리고 상품받자'...LG전자, SNS 이벤트

스타벅스 등 커피 매장에서 LG전자 텀블러 전용세척기 'LG 마이컵(myCup)'을 사용한 후기를 소셜서비스(SNS)에 올리면 LG 스탠바이미나 틔운 미니 등을 받을

기후/환경

+

남극 해저에 332개 협곡 발견…남극 빙붕 녹이는 역할?

남극 해저에 수천미터 깊이의 거대한 협곡들이 촘촘히 분포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과학자들은 이 지형이 해류 흐름과 빙붕 붕괴를 결정짓는 통로

시간당 200㎜ 폭우...'물바다'로 변한 美 뉴욕·뉴저지

미국 뉴욕·뉴저지주에 시간당 최대 200㎜에 이르는 폭우가 쏟아져 물바다로 변했다.31일(현지시간) 미국 기상청은 이날 밤까지 미 동부 해안지역에

[주말날씨] 뙤약볕 속 '찔끔' 소나기...다음주 남쪽부터 '비'

8월 첫 주말도 전국이 폭염으로 신음하겠다. 소나기 예보가 있지만 폭염을 가시게 하기엔 역부족이다. 오히려 습한 공기로 체감온도는 더 높아질 수 있

[알림] '2025 기후테크 스타트업 혁신 어워즈' 참가기업 모집

뉴스트리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기후테크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2025 기후테크 스타트업 혁신 어워즈'

2030 재생에너지 3배 늘리기로 해놓고...96개국 국제합의 '헌신짝'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3배 늘리자는 전세계 합의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국가가 1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글로벌 싱크탱크 엠버(Ember)가

심해 9533m서 생물군락 첫 관측…"거대한 탄소 순환생태계 발견"

북서태평양 수심 9533m에 이르는 심해에서 생물군락을 발견하고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인간이 탑승한 잠수정으로 극한의 수압과 어둠을 뚫고 내려가서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