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을 살리자③] 전세계가 '꿀벌 수난시대'...원인은 '기후변화' 지목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2-09-02 15: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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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갈수록 면역력 저하...기생충 피해급증
꽃꿀 40% 감소..."양봉산업 고사위기에 놓여"

올초 국내에서 약 100억 마리의 꿀벌이 집단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꿀벌 개체수 감소는 양봉농가 피해에 그치지 않고 농산물 수확량 감소로 이어진다. 이에 본지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을 짚어보고, 꿀벌을 살리기 위한 대응방안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제47회 세계양봉대회에서 튀르키예 벌꿀 시식을 기다리는 한국인 양봉업자 ©newstree


<이 기사는 [꿀벌을 살리자 2편: 텅빈 벌통들...기후변화가 낳은 비극인가]에서 이어집니다>

꿀벌의 면역력이 떨어지고 기생충 피해가 늘어나는 등의 피해는 비단 우리나라만에서만 발생하지 않았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이같은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세계 양봉인들은 그 원인을 '기후변화'로 지목하고 있다.

지난 8월 24일~28일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서 세계양봉연맹(Apimondia) 주관으로 5일간 열린 '2022 세계양봉대회'에 전세계 127개국 1만2500여명의 양봉산업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기후변화로 꿀벌의 생태계 파괴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조지아 농촌진흥청과 함께 이번 세계양봉대회에서 금상을 공동수상한 벌꿀 생산 및 유통업체 스카(SKA)의 창업자 자바 셰샤베릿제(Jaba sheshaberidze) 씨는 뉴스트리와의 인터뷰에서 "기원전 5500년 전부터 세계 최고(最古)의 양봉 전통을 갖춘 조지아도 기후변화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며 "지난해는 폭우를 동반한 우박과 강풍이 농경지를 강타하면서 꽃꿀이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특히 조지아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채밀을 아까시나무에 의존하고 있지만, 기후변화로 아까시나무 개체수가 크게 감소하면서 양봉업자들은 예년보다 더 먼 거리를 이동양봉을 하고 있고, 이에 따라 꿀벌 기생충인 바로아응애가 더욱 창궐하면서 피해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지아 벌꿀 생산·유통업체 스카(SKA) 창업자 자바 셰샤베릿제(가운데) 씨는 이번 세계양봉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newstree


프랑스 파리에서 북쪽 60km 떨어진 곳에서 벌통 200개 규모의 양봉장을 운영하는 뷸로 아나스(Bullot Anas) 씨 역시 "올해 프랑스의 여름은 일부 지역이 42℃까지 치솟는 등 사상 2번째로 더운 해였다"면서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10km 떨어진 벌통을 이동해 메밀밭의 꿀을 따지만 올여름에는 이상고온으로 메밀밭이 노랗게 다 타버렸다"고 말했다.

뷸로 씨는 "프랑스에서는 벌통을 2층으로 나눠 상층부 절반에 모인 꿀은 내다팔고, 나머지 절반은 봉군 개체수 유지를 위해 그대로 남겨두지만, 꿀이 아래층까지 말라버렸다"며 "이제 월동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데 당장 올해 소득은커녕 내년까지 개체수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며 걱정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 제약회사 테크노베트(TeknoVet) 수출팀장을 맡고 있는 에윱잔 샤힌달(Eyüpcan Şahindal) 씨는 "튀르키예에서도 기후변화로 밀원식물이 멸종하고 있고, 먹이 부족으로 꿀벌들의 면역력이 떨어지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바로아응애가 창궐하면서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샤힌달 씨는 "사람이 아프면 죽을 먹듯이 꿀벌에게도 미네랄과 비타민을 섞어 만든 면역증강제가 필요하다"며 "이에 우리 회사에서도 해당 제품의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면역증강제 및 응애방제약을 개발·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탄불 제약회사 테크노베트(TeknoVet) 수출팀장 에윱잔 샤힌달(Eyüpcan Şahindal) ©newstree


세계양봉연맹 학술심포지엄에 모인 대륙별 지회장들도 꿀벌들이 수난을 겪고 있는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5개 대륙를 대표하는 지회장들은 누구보다 현재 양봉업이 처한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인간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로 전세계가 꿀벌에게 적대적인 환경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케냐 출신 데이비드 무코마나(David Mukomana) 세계양봉연맹 아프리카 지회장은 "기후변화, 농지개간 등 인간활동으로 한때 거대했던 아프리카 정글숲이 사라지면서 밀원수가 부족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루카스 마르티네즈(Lucas Martinez) 세계양봉연맹 아메리카 지회장은 "극한 이상기후가 봉군 성장과 채밀량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봉군이 줄어들면 꽃의 수분도 줄어 채밀량이 줄어들게 되고, 이는 다시 봉군 감소로 이어지며 악순환을 낳는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득유지를 위해 가짜꿀을 섞어 파는 양봉업자들이 성행한다는 것이다. 마르티네즈 지회장은 "가짜꿀을 섞어 파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당국이 벌꿀의 품질관리를 강화하고 있어 비용 및 상품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수요는 줄어들어 양봉산업의 지속가능성이 저해되고, 나아가 젊은 세대가 발길을 돌려버리면서 양봉산업이 고사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우려했다.

에티엔 브루노(Etienne Bruneau) 세계양봉연맹 양봉기술 및 품질위원장은 '기후변화와 연관된 양봉산업의 도전과제 및 향후 이상기후 전망'을 주제로 한 학술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오늘날 양봉업의 가장 중대한 위협은 기후변화"라고 단언하며 "극한 기후현상은 꿀벌에게 다양하고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이는 양봉업자들의 꿀벌 생산과 사업유지에 직접적인 충격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브루노 위원장은 기후변화로 꿀벌의 생애주기, 특히 여왕벌의 산란주기가 교란되고 있다고 했다. 봉군에서 자체적으로 기생충을 털어내기 위해 산란을 멈추고 벌집을 비워내는 '휴란기'(brood break)가 줄어들면서 꿀벌 애벌레(봉아)에 숨어사는 바로아응애가 창궐하기 더욱 더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조연설 중인 에티엔 브루노 세계양봉연맹 양봉기술 및 품질위원회 위원장 ©newstree

개화기와 냉해피해 시기가 점차 맞물려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브루노 위원장은 "10여년전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미 북반구 650여개 식물종의 개화시기는 1.9일 앞당겨졌다"며 "반면 냉해피해 주기는 늦춰지면서 꽃이 피는 시기와 서리가 내리는 시기가 겹쳐지고 있고, 꽃봉오리가 피기도 전에 얼어붙으면서 꿀벌을 위한 밀원은 더욱 더 줄어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기온이 오를수록 토양내 수분이 줄어들고, 식물들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는 늘어난다"며 "이로 인해 꽃꿀의 용량이 40%가량 줄고 있고, 봉아가 몸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꽃가루의 필수아미노산 비율과 중량이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냉해 피해로 꽃이 얼지 않기 위해 식물들이 꽃꿀 내의 수분을 줄이고, 단백질 성분인 폴리펩타이드 비중을 높이면서 점도를 올리고 있는데, 이는 꿀벌의 채밀을 더욱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루노 위원장은 끝으로 "꿀벌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있다"며 "특히 꿀벌이 미래 농업에 있어 필수적인 동반자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꿀벌의 회복력과 기후적응을 위해 벌꿀 채밀과 양봉농가 소득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지속가능한 양봉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가 왔다"고 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들의 약 63%가 꿀벌을 매개로 열매를 맺는다. 꿀벌이 꽃가루를 묻혀주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꿀벌 개체수가 감소하거나 사라지면 전세계는 식량위기에 빠지게 된다. 브루노 위원장뿐만 아니라 이 행사장에 모인 전세계 양봉인들은 "꿀벌의 위기는 곧 식량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더 늦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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