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증조 이용익은"...어느 독립운동가 후손의 피끓는 외침

윤미경 발행인 / 기사승인 : 2021-05-01 08: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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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경이 만난 사람]이용익 선생의 후손 허종씨
"독립운동가 홀대하면 앞으로 누가 목숨을 내걸까?"
▲허종씨는 "외증조 이용익 선생의 당시 독립운동을 했다는 근거 기록을 모두 찾아줬는데도 서훈할 수 없다고 하더라"며 울분을 토했다.

"프랑스는 독일 나치 치하 3년동안 부역한 사람들을 모두 찾아내 처벌했다. 네덜란드나 폴란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사료가 넘치는데도 국가보훈처는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고 '독립운동 성격이 불분명하다'며 서훈을 거부하고 있다."

고려대학교의 전신 보성전문대학 설립자 이용익 선생의 후손 허종씨는 3·1만세의거 102주년이 되는 올해 삼일절에도 외증조 이용익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허종씨는 "국가보훈처에 이용익 선생에 대한 기록이 적힌 러시아와 프랑스 문건을 모두 제출했는데도 '서훈할 수 없다'고 하더라"라며 "사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자료는 보훈처 공훈발굴과에서 해야 할 역할인데 자료를 줘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허종씨는 16년전에도 이용익 선생에 대한 서훈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독립운동 성격이 불분명하다'는 것이 서훈 거절의 이유였다. 그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원룸을 전전하고 있고, 친일세력 후손들은 떵떵 거리고 산다"면서 "독립운동가를 이런 식으로 홀대하면 앞으로 국가에 위기가 닥쳤을 때 과연 누가 목숨을 내놓고 나서겠는가?"라며 울분을 토했다. [대담=윤미경 편집국장]


◇ "보부상에 일자무식군?···왕족 혈통이다"


▲이용익 선생
이용익(李容翊)은 1854년 1월 6일 함경북도 명천군 상가면 석현리에서 태어났다. 일각에서는 이용익이 천민이고 무식한 사람으로 폄훼하고 있지만 그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형인 완풍대군의 후손이다. 왕족의 혈통인 것이다.

그는 5세부터 14세까지 서당에서 학문을 익혔다. 15세 때 고산현감 겸 병마절제전주진감으로 임관됐던 아버지 이병효의 주선으로 당시 주자학의 대가인 초병덕에게 본격적인 학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가 1868년이다. 그가 처음 관직에 오른 때는 1882년이고, 이후 1906년까지 24년동안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관직을 역임했다. 이같은 행적은 수많은 공문과 상소문, 편지들을 통해 기록으로 남아있다. 

무식하다면 결코 이 많은 관직을 수행할 수 없었는데도 왜 이용익 선생은 '일자 무식군'으로 폄훼된 것일까. 이에 대해 조익순·이원창씨가 쓴 '고종황제의 충신, 이용익의 재평가' 저서에 의하면, 이용익의 출신과 성장을 놓고 악의적인 중상을 한 이유로 '1876년 전후에 팽배했던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의식을 밑바탕으로 한 이용익의 승승장구에 대한 질투심과 일본 제국주의 앞잡이 일진회와 실체가 왜곡돼 이완용, 윤치호 등 친일세력이 활동한 독립협회 모략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으로 분석하고 있다.

허종씨는 "광복 후 친일파들이 학계와 정계, 언론계에서 득세를 하니 이용익 선생이 무식하고 축지법을 쓴다는 등 헛소리를 해댄 것"이라며 "자신들의 친일행위와 매국행위를 은폐하려고 이용익 선생을 '일자무식' '친러파'로 왜곡한 것인데, 지금도 이런 프레임이 통하고 있다는 게 기가 막히다"고 말했다.


◇ "일본보다 먼저 들어온 전차...이용익이 주도"

이용익 선생은 조선의 근대공업을 일으킨 중추인물이다. 흥업회사, 상선회사, 도진회사를 설립했고, 염직과 직조, 제지, 사기, 총기 등 생산기술자를 양성했다. 무엇보다 철도와 인쇄소, 은행 등을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용익 선생은 외국의 광산침탈을 막고 국내 재력있는 광산업자를 선정해 개발을 주도함으로써 왕실 살림을 불렸다. 삼정사를 설립해 삼포의 경영과 채삼, 증삼 등을 감독해 세수를 증대시켰고, 전환국(典阛局) 책임을 맡아 신식화폐를 본격 주조했다. 이용익 선생이 이같은 정책을 펼치면서 궁핍했던 왕실 재정은 점차 회복됐다. 이용익 선생은 왕실 재정을 10년간 관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해 재물을 축적하지 않았다. 

허종씨는 "일본은 마치 자신들이 조선을 근대화시킨 것처럼 떠들지만 사실 고종이 진행한 광무개혁을 통해 당시 조선의 국민총생산(GDP)은 아시아에서 4위였다"면서 "전차도 일본보다 더 먼저 들어왔다"고 강조했다.

이런 광무개혁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이용익이었다는 것이다. 허종씨는 "전차뿐만 아니라 전기와 통신 그리고 철도정책까지 모두 관여했다"면서 "개혁을 통해 근대화된 조선을 일본으로 팔아넘긴 친일파들의 후손은 지금도 잘먹고 잘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한일의정서 반대하자 일본으로 납치"

일본공사관 기록에 따르면, 이용익 선생은 광무황제의 특사로 비밀리에 청국과 프랑스, 러시아를 다녔다. 그 당시 상트페테스부르크에서 김현토에게 무려 11군데나 찔려 자상을 입었고, 가까스로 살아나 상해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항일활동을 하다가 헤이그특사로 나가려던 차에 일제 밀정이 탄 독약이 든 음식을 먹고 사망했다. 허종씨는 "원래 이용익 선생이 헤이그특사로 가려다가 사망하니, 이용익 선생의 집안 조카인 이준 열사가 특사로 가게 된 것"이라고 했다.

허종씨는 "이런 기록들은 러시아와 프랑스, 미국, 일본 등 공사관 자료를 찾아보면 다 알 수 있다"면서 "왜냐하면 가해자들이 직접 기록해놓은 문서들이므로, 누가 자신들에게 방해되는 인물인지 적나라하게 기록해놨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역사학자 그 누구도 이런 실체적 진실에 제대로 접근하고 파헤치는 사람이 없다며 그는 한탄했다.

이용익 선생은 당시 조정대신 가운데 유일하게 굴욕적인 한일의정서를 반대했다. 그래서 일본 헌병이 이용익 선생을 납치했고, 바로 그 다음날 한일의정서를 체결해버렸다. 당시 광무황제의 거듭된 요청으로 이용익은 1년만에 겨우 일본에서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허종씨는 "이용익 납치를 허가한 일본천황이 결재한 문서도 있고, 육해 참모총장들도 결재한 문서가 있다"면서 "그만큼 이용익 선생이 침략의 걸림돌이 됐던 것"이라고 했다.

이용익은 일본에서 귀국할 때 신문물이 적힌 책들과 신식 인쇄기를 사와 보성인쇄소를 설립했다. 또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급격하게 국력이 높아진 원인이 인재양성에 있다고 판단해 1905년 현재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설립하고 보성중·고등학교도 세웠다. 허종씨는 "당시 설립된 모든 학교들은 대부분 외국인들이 세웠지만 고대는 아니었다"면서 "그래서 '민족고대'라고 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이용익 선생을 친러파라고 표현하는데 사실 친러파라는 개념은 친일파들이 조작한 것"이라며 "자기들은 친일해서 뇌물받고 토지받고 귀족 작위까지 받았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그 어떤 것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러시아로 가서 항일운동을 하면서 집안이 몰락했다"고 했다. 



◇ "발굴 심사제도 바꿔야 한다"

허종씨는 "프랑스는 독일의 나치 치하에 고작 3년 있었지만 나치에 협력한 수 만명을 처형하고 수십 만명을 처벌했다"면서 "네덜란드나 폴란드, 노르웨이는 프랑스보다 더했는데 우리는 어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는 무려 36년간 일제 치하에 있었지만 처형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고 감금된 사람도 며칠 있다가 나왔다"면서 "이런 친일파들이 광복 후에 모두 기득권이 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친일파 척결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 실제로 친일파의 거의 과반수 이상이 강남3구에 살고 있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일용직 종사자가 많다는 것이 통계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올해 삼일절에도 이용익 선생의 서훈이 거절된 것에 그는 상심이 매우 컸다. 허종씨는 "내가 100번 이상 자료를 내면 뭐하냐"면서 "몇년에 걸쳐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를 번역해서 자료를 제출해도 제대로 보지도 않는다"며 기막혀 했다. 이어 그는 "서훈 거부 이유가 '독립운동 성격 불분명'이라고 하는데 그럼 이보다 더 분명한 기록들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면서 "불분명하면 추가자료를 요청하던지 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도 전혀 없다"고 했다.

법을 만들어도 공청회를 거치는데 서훈을 하는 과정은 왜 토론이나 공청회를 거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허종씨의 주장이다. 그는 "보훈은 행정이 아니라 국가정책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보훈처는 그저 행정하는 일에만 급급한 실정"이라며 한탄했다.

그러나 허종씨는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독립운동가 손자들의 나이도 대부분 80대"라며 "우리가 하지 않으면 친일파에게 서훈을 내리고 독립운동가는 찬밥 대우하는 잘못된 역사를 누가 바로 잡겠는가"라는 말에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허종씨는 "전국 국립대 가운데 유일하게 인천대학교에 독립운동사연구소가 있다"면서 "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계시는 이태룡 박사께서 이용익 선생에 대한 기록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등 서훈을 위해 오랫동안 애쓰고 계신다"며 감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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