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기한 1년'...물건처럼 버려지는 요양보호사들

박유민 기자 / 기사승인 : 2021-02-18 12:22:19
  • -
  • +
  • 인쇄
[보호받지 못하는 요양보호사들] (1)요양보호사 70%는 계약직
기습적인 한파로 연일 영하권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12월 22일부터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요양보호사 신씨(63). 그는 눈썹에 하얗게 얼음이 맺힐만큼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한 요양센터 앞에서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외로운 싸움을 하는 중이다.

▲신씨가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요양센터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신씨의 사연은 이랬다.

신씨는 2018년 7월부터 5개월 계약직으로 이 요양센터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9년 1월에 1년 재계약을 했다. 계약직이었던 신씨는 12월이 되어도 계약 만료와 관련해서 별다른 언급이 없어서 이번에도 재계약이 되나부다고 생각했다.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려면 계약이 만료되기 30일전에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씨는 계약 만료를 열흘 앞두고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비단 신씨만 일자리를 잃은 것이 아니었다. 이 요양센터에서 일하는 5명의 요양보호사 가운데 3명이 한순간에 실직자가 됐다. 원장은 '경영상 어려움'을 들어 요양보호사를 감원한다고 했지만 이후 이 센터는 2명의 요양보호사를 새로 뽑았다. 항의하는 신씨에게 원장은 "내가 곧 법"이라고 말했다.

▲ 신씨가 요양센터에서 근무 당시 돌봐드렸던 어르신의 안부를 묻고 있다.


사실 고용불안에 떨고 있는 요양보호사는 신씨만이 아니다. 

신씨와 함께 일했던 A씨는 치매 어르신에게 발로 걷어차여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올 2월까지 병가로 쉬어야 했지만 '일손이 부족하다'는 원장의 요청에 하는 수없이 업무에 복귀했다. 그러나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일하다보니 도저히 버틸 수 없어 A씨는 원장에게 병가를 요청했다. 돌아오는 답은 "그럴 거면 계속 쉬어라"였다.

전지현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사무처장은 "대부분의 요양보호센터는 퇴직금 부담을 덜기 위해 1년 단위로 요양보호사를 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퇴직금은 1년 이상 근무자에게 법적으로 반드시 지급해야 하고, 재직일수가 많을수록 지급해야 할 퇴직금이 많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9년도 장기요양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요양보호사 10명 중 7명은 계약직이다. 요양보호사의 계약직 비중이 무려 70%에 이른다는 얘기다. 이는 간호조무사의 계약직 비중은 20%에 채 못미치고, 사회복지사와 물리치료사의 계약직 비중이 10%인 것과 대조적이다.

요양보호사는 신씨처럼 요양시설에 근무하는 시설 요양보호사와 직접 방문해서 요양해드리는 재가 요양보호사로 나뉜다.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이 2019년 실시한 '긴급실태 조사'에 따르면 재가 요양보호사 498명 중 78.7%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업무중지를 당한 경험이 있다. 업무중지를 당하고 한달 이내에 같은 일을 이어가는 경우는 40%도 안된다.    
 
계약 기간동안 수당이라도 제대로 받으면 다행이다. 상당수의 요양보호사들은 '공짜 노동'을 강요받는다. 신씨의 경우, 처음 한두달간 어르신들의 수발을 드는 업무 외에 어르신들 승하차를 돕는 차량 동승자 업무도 맡았다. 이 때문에 매일 1시간씩 늦게 퇴근했지만 이에 따른 수당은 지급받지 못했다. 신씨가 초과근무 수당을 요구하자, 원장은 "그 정도는 봉사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끊임없는 어르신의 호출에 휴게시간을 제대로 사용하는 요양보호사들도 없다. 보령요양원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이명선씨는 "24시간 연속근무를 하는 경우에 휴게시간으로 11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제대로 쉰 적이 없다"면서 "사실상 근무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8년 5월 발간된 '요양보호사 근로실태 조사 및 지원 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4시간 연속근로하는 경우 근로계약서에 8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정해놨지만 대부분 6시간 미만으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이 2020년 실시한 '긴급실태 조사'에 따르면 요양보호사 560명 중 66%가 '휴식할 수 있는 독립된 휴게실이 없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2018년 시설 요양보호사의 월평균 급여는 연장근로수당 등을 포함해 225만5000원이다. 하지만 2018년 장기요양위원회에 보고된 약 1000개 요양시설 현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 지급액은 수당을 모두 포함해 평균 약 163만원에 머물렀다. 휴게시간을 늘리는 방법으로 연장 근로시간을 줄였기 때문에 실지급 급여가 더 낮았던 것이다.

▲ 한 요양보호사가 어르신 호출을 대비해 병실안에서 쪽잠을 자고 있다. 

신씨는 자신의 복직보다 더 원하는 것은 '재발 방지'라고 강조했다. 지금도 자신을 포함한 많은 요양보호사가 '고용불안' '공짜노동' '과중업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씨는 요양센터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도중 원장이 '주거침입죄'로 고소해 어르신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에 붙들려 끌려가기도 했다.

신 씨는 그간 겪었던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올해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시위를 언제까지 할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1월 17일 유방암 수술이 끝나고 바로 다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앞으로도 요양보호사 일을 계속 할 생각이다.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어르신들이 한번씩 '고맙다' '고생이 많다'는 말을 해주실 때마다 고단함이 눈녹듯 한다고. "활동 프로그램을 열심히 따라하시는 어르신들의 눈빛이 얼마나 반짝반짝하시는지..."라며 "가족들조차 돌볼 수 없는 어르신들을 제가 도울 수 있다는 게 사회적으로 큰 보람"이라고 말하는 신씨의 눈빛도 반짝반짝 빛났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환경규제 강한 국가일수록 친환경 제품 생산지로 각광...이유는?

친환경 제품을 제조하는 기업들이 환경규제가 강한 국가로 생산거점을 옮기는 '녹색 피난처'(green haven) 전략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과학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 무늬만 친환경?...탄소배출량이 내연기관차급

저탄소 친환경 자동차로 규정되고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PHEV)가 실제로는 휘발유 내연기관 자동차와 맞먹는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것

KT 불법 기지국 4개→20개로...소액결제 피해자 더 늘었다

KT가 자사 통신망에 접속해 가입자 불법결제에 이용한 불법 초소형기지국(펨토셀)이 20개였던 것으로 전수조사 결과 드러났다. 당초 알려진 바로는 불

현대차, 인니에 플라스틱 자원순환시설 개소...수거부터 교육까지

현대자동차가 지속가능한 자원순환 생태계 조성 일환으로 인도네시아에 지역주민 주도형 플라스틱 자원순환시설을 개소했다. 16일(현지시간) 인도네

삼성전자-삼성물산, 혈액으로 암 조기진단 美기업에 1.1억불 투자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증상이 없는 사람의 혈액 채취만으로 암을 조기 진단하는 미국 생명공학 기업 '그레일(Grail)'에 16일(현지시간) 1억1000만달러를

[현장&] "아름다운가게 지역매장은 왜 소비쿠폰 안돼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정리를 한다. 여름내내 입었던 옷들을 옷장에서 꺼내 상자에 집어넣고, 상자에 있던 가을겨울 옷들을 꺼내서 옷장에 하나씩 정

기후/환경

+

"70억달러 태양광 보조금 내놔!"...美 22개주 연방정부 대상 소송

트럼프 행정부가 70억달러 규모의 태양광발전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자, 미국 22개 주에서 이를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16일(현지시간) 롭 본타 미국

환경규제 강한 국가일수록 친환경 제품 생산지로 각광...이유는?

친환경 제품을 제조하는 기업들이 환경규제가 강한 국가로 생산거점을 옮기는 '녹색 피난처'(green haven) 전략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과학기

탄소감축과 자연회복 동시 추진...UNEP, 개도국에 1억불 투입

유엔환경계획(UNEP)이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 보전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한 1억달러 규모의 국제 프로그램을 출범했다.16일(현지시

[주말날씨] 비온 후 '쌀쌀'...서울 기온 5℃까지 '뚝'

이번 주말에 또 비소식이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추워지니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비는 17일 저녁 서쪽부터 내리기 시작해 밤사

기후변화에 위력 커진 태풍...알래스카 마을 휩쓸었다

미국 알래스카 해안이 태풍 할롱에 초토화됐다. 폭풍으로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으며 1500명 이상의 마을 주민이 이재민이 됐다.15일(현지시간) 알

올여름 52년만에 제일 더웠다...온열질환자 20% '껑충'

1973년 이후 가장 더웠던 올여름 온열질환자 수가 작년 대비 약 20% 증가했다. 2018년 이후 두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5월 15일부터 9월 2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