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예배 인도자, 스타가 아닌 예배자
[칼럼]예배 인도자, 스타가 아닌 예배자
  •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 승인 2019.01.0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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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가 소속된 교회 위원회에서 전임 예배 인도자를 찾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검토한 이력서만 100장이 넘었단다. 조건이 까다로운 게 아닐까? 그럴지도. 하지만 요사이 교회에는 문화적으로 다섯 세대가 존재하니 그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세대마다 예배 취향이 다르다. 각자 나머지 세대를 별난 세대로 취급한다. 그래서 예배 인도자를 쉽게 구할 수가 없다.

예배 변천사

 전에는 찬양 세 곡을 힘차게 부르고 기도를 시키고 혼자 노래를 부른 후 시간에 맞춰 설교자에게 자리를 넘기는 찬양 인도자를 찾았을 것이다. 스피커 같은 사운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조명도 스크린의 가사도 드럼도 없었다. 그때는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가 그렇게 아름답게 들릴 수가 없었다!

40년 전에는 찬양 인도자들이 성가대 지휘자로 변모했다. 그들은 성가대를 조직하고 성가를 부르는 대가로 사례비를 받았다(몇몇은 이 일로 노발대발했다). 교인들은 만족했고 회중석에 앉은, 음악에는 아마추어였던 예배자들은 찬양을 부르는 횟수가 줄어든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30년 전에는 전임 음악 교역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앞장서서 고전 음악을 예배에 도입했다. 4부 성가대, 칸타타, 콘서트, 오케스트라(그리고 크리스마스에는 살아 있는 동물들까지). 교인들은 이것을 멋있다고 느꼈다.

콘서트장 vs 예배하는 곳, 열광의 대상은 누구인가?

 

하지만 사실 회중석의 교우들은 예배자라기보다는 방청객에 가까웠다. 박수를 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장로들은 심각하게 토론했다. 전문 기독교 뮤지션이 데뷔하고 스타 시스템이 탄생했다.

지난 20년에 걸쳐 예배 인도자와 예배팀이 등장했다. 팀원들은 하나같이 줄을 길게 늘어뜨린 마이크로 무장했다. 예배팀은 대체로 젊고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재능이 뛰어났다. 오르간은 자취를 감추었고 전자 건반, 드럼, 베이스 기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우리는 박수 치는 법을 배웠다(엇박자로 쳤던 듯하다). 찬송가집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고 교회들은 비디오 프로젝터를 갖추고 파워포인트를 쏘았다. 스피커는 차고보다 더 커졌다. 동작을 제어할 수 있는 조명으로 시각을 자극했다. 무대에 인공 연기를 피우면 겟세마네가 따로 없었다.

우리는 예배했다. 하지만 예배를 하느라고 예배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장점과 단점

설교자보다 예배 인도자가 더 중요한 시대.

 

청년들은 교회를 선택할 때 설교자보다 예배 인도자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평범한 설교는 들어줄 만하다. 하지만 어설픈 예배는 참아줄 수 없다. 지금은 예배 인도자들이 교회의 문화를 주도한다. 이것은 내 바람이 아니라 의견이다.

예배 인도자들의 장점은 우리에게 기쁨을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음악 연주에 치중하기보다(음악 교역자들 퇴장) 회중의 찬양을 인도한다(예배 인도자들 입장). 그들은 교인들이 개인으로 회중으로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훌륭한 예배 인도자는 소중한 선물과도 같다.

몇몇 예배 인도자의 단점은 노래를 쉽게 끊지 못하고 주문 읊듯이 후렴을 반복하는 데 있다. 그들은 오십이 넘은 교우들은 너무 오래 서 있으면 몸이 상한다는 것을 모르는 듯하다(바닥이 경사진 곳은 무릎과 발의 관절, 허리에 치명적이다). 아, 그리고 음악이 예배의 전부가 아니란 것을 모르는 예배 인도자들도 많은 것 같다. 생각이 깊고 섬세한 기도, 믿음을 북돋는 말씀, 영혼을 자극하는 전례는 예배를 더 풍성하게 한다.

다섯 가지 조언

예배 인도자의 기도를 들어보라

 

내 친구의 위원회가 새 예배 인도자를 찾는 데 왜 애를 먹는지 알 만하다. 그들이 내게 조언을 구한다면 다섯 가지를 말해주고 싶다.



1. 예배 인도자의 기도를 들어보라. 그의 기도에서 깊은 경외심이 느껴지는가? 다양한 연령층마다 새로운 문제와 급선무가 있음을 알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가? 나이가 어려도 이것을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다. 노래와 노래를 연결하기 위해 기도하는가, 정말로 기도하는가?

2. 성경을 품위 있게 읽는지 보라. 교인들은 훌륭한 솔로 가수의 노래가 무색하리만치 기품 있는 성경 낭독을 들어야 한다.

3. 예배 인도자가 무슨 노래를 선택하는지 보라. 먼저 부를 수 있어야 한다(우리가 일주일 동안 흥얼거릴 수 있어야 한다. 바울과 실라처럼 감옥에 갇혀도 부를 수 있어야 한다). 가사가 실제적이어야 한다(교회 밖에서 쓸 일이 없는 단어는 불필요하다). 정직해야 한다(하지 않을 일을 하나님에게 약속할 수 없다). 폭이 넓어야 한다(지난 수세기의 다양한 노래 전통을 담고 있어야 한다. 옛 노래를 새롭게 편곡하는 것도 훌륭하다). 영혼을 움직이는 예배 음악은 100년이 흘러도 한결같다.

4. 침묵과 전통을 활용하는지 보라. 드럼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게 예배의 전부가 아니다. 예배는 오감으로 느껴야 한다. 옛 전통으로도 믿음을 표현해야 한다.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신조와 전례, 성례의 상징에 대해 예배 인도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해보라.

5. 예배 인도자가 설교를 들을 회중의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준비시키는지 보라. 예배자들은 감정적으로 신학적으로 격려와 도전, 꾸중을 받을 준비가 됐는가?



나는 내가 아는 최고의 예배를 떠올려보았다. 1976년 기독학생회 어바나 선교 대회에서 새해 전날 자정을 넘겼을 때였다. 예배 인도자는 없었다. 심지어 설교자도 없었다(이게 놀랍다).

예배 인도자, 스타가 아니라 예배자여야 한다.

 

성찬식을 끝으로 집회가 끝났다. 축도 후 학생 1만 7000명은 버스에 올라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출구로 향했다. 한 학생이 남자와 여자가 같은 가사를 번갈아 불렀던 “주님을 찬양합니다”를 부르기 시작했다(그는 예배 인도자가 아니라 예배자였다).

학생들이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하고 노래하고 또 노래했다. 우리는 인도자도 연주자도 없이 계속 찬양했다. 출구가 앞에 있었지만 거룩한 땅에서 나가고 싶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듯 거룩한 순간을 잊고 싶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계속 노래했다.

내 옆에는 아홉 살 된 딸 크리스티가 있었다. 딸도 강렬한 힘을 느꼈던지 내 손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 “아빠, 천국에 온 것 같아요.”

딸의 말이 옳았다. 나는 내 친구에게 그런 예배를 꾸준히 할 줄 아는 예배 인도자를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고든 맥도날드는 <리더십저널>의 편집인이며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한국 IVP 역간) 등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출처 : 크리스채너티투데이 한국판 201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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