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수 탄생 이야기에서 성령의 일하심 기억하기
[칼럼] 예수 탄생 이야기에서 성령의 일하심 기억하기
  • 존 D. 위트 블리엇 | John D. Witvilet
  • 승인 2018.12.1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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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크리스마스카드, 캐럴, 말구유 아기

예수 장식은 크리스마스 스토리의

여러 등장인물들을 기뻐하며 이야기한다.

크리스마스 가장행렬에도

다양한 배역들이 출연한다.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 예수;

천사들과 목동들과 동방박사들;

그리고 심지어 엘리사벳과 사가랴,

시므온과 안나도 등장한다.

그런데 성탄 이야기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참여자가 있다. 바로 성령이다.

이러한 성령의 누락은 특히 우리의 음악에서 눈에 잘 띈다. 목동들, 동방박사, 천사들, 마리아, 요셉, 그리고 아기 예수에 초점을 맞춘 캐럴은 많지만, 성령이 하신 일을 노래하는 캐럴은 거의 없다. 이 누락이 놀라운 까닭은, 누가복음이 매우 오순절적인 크리스마스 비전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는 다른 여섯 등장인물—세례 요한(1:5), 마리아(1:35), 엘리사벳(1:41), 사가랴(1:67), 시므온(2:25-26), 그리고 나중에 바로 예수님(4:18)—에 결코 뒤지지 않는 성령의 참여를 증언한다.

오순절 성령강림을 상세하게 기록한 저자임이 분명하지만(사도행전 2장), 누가는 그 사건을 성령의 데뷔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누가는 크리스마스 전체 드라마를 전적으로 삼위일체적인 것으로 그려낸다. 곧 그는 구유에서 태어난 성자 하나님, 그를 보내신 성부 하나님, 그리고 또한 성탄 드라마의 여러 중요한 시점에서 신비롭게 활약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이야기한다.

누가는 성령에 관한 기록자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성령의 역사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바로 성령의 영감으로 누가는 예수의 생을 “순서대로 쓰기” 위하여 “모든 것을 시초부터 정확하게 조사”했던 것이다(눅1:3).

누가 혼자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마태 역시 예수께서 잉태될 때 성령이 하신 일을 증언했다(마1:18, 20). 메시아에 대한 비전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제5 복음”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사야서는 주님의 영이 이 메시아에게 내려오신다고 선언했다(사11:2, 42:1, 61:1). 메시아를 대망하며 미래를 바라보았던 구약 선지자들은 저마다 “그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 때문에(벧전1:11) 예수에 관하여 앞서 증언했다.

“갑절의 선물”

예수 탄생의 복음에 대한 특별히 생동감 넘치는 오순절적 묘사를 우리는 갈라디아서 4:4-6의 놀랍고 웅장한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기한이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우리로 하여금 자녀의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두 가지 사명, 두 가지 선물, 두 가지 은혜의 체험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을 보내셨다. 첫 번째 선물은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두 번째 선물은 믿는 이들의 영혼 깊은 곳에 도착한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 선물은 그때 그곳에 왔다. 두 번째 선물은 지금 여기 거듭하여 온다. 누가 어디서 언제든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할 때마다, 우리는 성령이 그렇게 하신 것에 감사드릴 수 있다.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고전12:3)

우리 주변에 갑절의 선물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일상의 사례들이 있다. 중학교 수학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분수를 곱하고 나눈다. 학생들이 경탄한다. 그리고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 한 학생이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이해한다. 이것이 두 번째 경탄이다. 미술관에서 첫 번째 경이로움은 예술 작품 자체이다. 두 번째 경이로움은 예술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누군가 갑자기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다시 돌아와 그것을 보고 싶어 할 때 일어난다. 그렇게 발견된 아름다움은 갑절의 선물이다.

부모가 되기 위한 수개월의 기다림과 수많은 서류 작업을 마친 다음에 입양 서류가 마침내 완성되는 과정이야말로 얼마나 큰 선물인가. 그런데 부모가 고대하는 두 번째 선물이 있다. 입양한 아이가 어느 날 깊고 신비한 내면 깊은 곳에서 속삭인다. “사랑해요. 우리는 한 가족이에요.” 바로 그 날이 두 번째 선물이다.

바울이 똑같은 비유를 사용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입양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셔서 법적인 입양을 사랑의 관계로 바꾸셨다. 입양이 사랑으로 꽃을 피운다.

성령이 우리의 영혼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신다(롬8:16). 우리 자아의 모든 방어 메커니즘이 저항하지만, 우리의 “속사람”(엡3:16)의 깊은 곳에서 성령이 일하신다는 사실에 은혜가 존재한다.

때로 성령의 이 신비한 내면의 일은 풀 죽은 우리의 영혼을 일으켜 세우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신다.”(롬8:26) 때로 성령의 이 신비한 내면의 일은 우리를 세워주기 전에 먼저 넘어뜨려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시는 것으로 나타난다(눅1:51). 이 모든 것 안에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은 일하시고, 깨지기 쉽고 연약한 우리의 영혼을 고치신다.

그리고 그렇게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기뻐한다. 성령은 우리의 구주께서 우리에게 오시도록 준비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주께 가도록 우리를 준비시킨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고전2:12)

우리가 이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이 갑절의 선물이 누가복음 2장에도 들어있음을 알게 된다. 첫 번째 선물은 “포대기에 싸여 뉘어 있는 한 아기”이다(12절). 그런데 두 번째 선물도 있다. 바로 성령이 시므온으로 하여금 태어나신 메시아를 알아보고 돌보게 하셨을 때이다. 오순절적 열정이 가득 차 있는 누가는 세 개의 연속되는 문장으로(25-27절) 성령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므로,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계셨다(25); 그는 주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었다(26); 그가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마침 아기의 부모가 율법이 정한 대로 행하고자 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왔다(27).”[눅2:15-17 CTK 보충] 누가는 시므온이 아기 예수의 팔로 안고서 하나님을 찬양한 것은 성령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와 같이 “갑절의 선물”로 전해지는 성령의 이야기에는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

“갑절의 선물”이 빠진 성탄 이야기에는 절반밖에 들어있지 않다. 그때 거기서 일어난 예수의 탄생에 관해서만 전달할 뿐,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서 하시는 일에 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못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하신 일에 관해 우리 멋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남들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수없이 부과하면서도, 성령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려고 우리 안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반대로, 요한, 마리아, 엘리자베스, 사가랴, 그리고 시므온에게 나타나신 동일한 성령이, 예수를 기름 부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그들을 죽음에서 일으키시게 하신 동일한 성령이, 지금 우리의 마음에 부어졌다(롬5:5). 이 얼마나 기쁜 선언인가.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답하게 하신 동일한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시면서 창조세계를 회복시키시고, 풀 죽은 우리 영혼을 일으키시고, 우리에게 재림의 소망을 주신다. 성령이 우리를 크리스마스 드라마의 참여자로 만드신다.

성령 인식 능력 키우기

이제 성령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얼마나 단순한지 드러났다.

예배 갱신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나는 성령에 관하여 취하고 있는 우리들의 가정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자주 경험한다. 우리는 동일한 성경을 읽지만,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일은 일반적으로 지각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일은 일반적으로 숨겨져 있다고 가정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을 자연발생적인 것, 예기치 못한 놀라운 일, 그리고 감정과 연결 짓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질서, 안정성, 그리고 새로운 통찰과 연결 짓는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어떻게 일하시는지 쉽게 인식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마치 성령이 우리의 의지가 멈춰야 할 곳이 어디인지 결정하기라도 하듯이 말한다. (“성령을 위한 자리를 남겨 두어야 해요”라는 말에 이런 생각이 숨어 있다.)

성경은 이러한 단순한 양자택일의 범주에 도전한다. 크리스마스와 연관된 성령을 이야기하는 성경구절들이 특별히 우리의 성령 이해에 밝은 빛을 비추어 준다. 우리는 정교하게 지어진 아가雅歌, 원대한 예언적 약속의 아름다움, 바울의 박력 있는 설교 솜씨, 그리고 누가의 “질서 있는 설명”을 통해서, 그리고 환상과 꿈을 통해서 일하시는 성령을 본다.

우리는 일하시는 성령을 본다. 하나님의 섭리의 “기한이 찰 때”까지 수세기를 거쳐서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때도 있고, 그 극적인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누가처럼 분명하게 알아볼 때도 있다.

성령은 지금 여기서 새로운 일을 하시고, 또한 이제 예수 안에서 성취된 이스라엘의 소망과 위로를 끊임없이 확언하신다.

성령은 예수 잉태의 기적을 통해서 일하시며, 또한 돌같이 차가운 인간의 마음을 온유한 사랑의 장소로 바꾸는 기적을 통해서도 일하신다. 이러한 모든 ‘둘 다/그리고’는 ‘이것 아니면 저것’의 단순한 가정들에 도전하고,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근원성에 대한 더 깊은 인식으로 들어가게 한다.

 

시므온이 오순절 체험의 앞선 모범이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여기 원숙한 노년의 시므온이 있다. 율법에 대한 그의 신실한 순종을 통해서, 성경 말씀에 대한 그의 열심—이사야 40~55장의 주제를 담고 있는 그의 노래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오랜 약속에 대한 그의 신뢰를 통해서, 성령이 일하신다. 시므온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을 보면서 우리는 온유—오늘날의 문화적 환경에서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기는 것이다—가 성령의 열매임을 떠올리게 된다. 성령의 활동에 대한 우리의 많은 가정들에 대한 도전으로는, 시므온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오소서, 성령이여”

예배의 역사에서 성령의 역동적인 일하심을 잘 알고 있을 때는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을 잘 인식하고 성령 안에 거하게 해 달라고—개인적인 기도에서뿐만이 아니라, 공적인 성경 읽기, 설교, 세례와 성만찬을 축하하는 공동의 자리에서 기도할 때도—열심히 기도했다.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역사적이고 예전적인 기도문들은 에베소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를, 곧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의 풍성하심을 따라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셨다는 그 기도를(엡3:16) 되풀이한다.

이러한 오순절적 관심이 크리스마스 노래에 담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15세기에 한 유명한 캐럴 노랫말—지금도 영국 대성당에서 부르고 있다—은 “오소서 성령이여”로 첫 소절을 시작한다. 18세기에, 찰스 웨슬리의 찬송가 ‘오소서, 오래도록 기다신 예수님’은 “당신의 영원한 성령으로/우리의 마음을 모두 다스리소서”라는 기도에서 절정에 이른다.

전반적으로 교회는 성령에 관하여 놀랍도록 침묵해 왔다. 지난 세대의 예배 갱신물결 속에서도, 말씀과 세례에 관한 성경 묵상과 설교에서도, 그리고 주님의 만찬을 축하할 때도, 성령의 일하심을 바라는 기도는 너무나 자주 무시되었다.

 

성령을 무시하는 이런 태도를 버려야 한다. 우리의 찬송작곡가들, 음악가들, 설교자들, 그리고 기도 인도자들이 성탄 예배를 준비할 때도 그렇게 해야 하고, 우리 자신과 가족 기도에서도 똑같이 그렇게 해야 한다.

하나님, 이번 성탄들에 주님의 성령을 저희에게 보내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 있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저희에게 주소서. 우리의 이해력이 밝아지도록 우리의 두 눈을 열어주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그의 부르심의 소망을, 성도들 가운데 있는 그의 영광스러운 유산의 풍성함을, 그리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그의 능력의 측량할 수 없는 위대함을 알게 하소서. 아멘.

출처 :크리스채너티투데이 한국판 2017년 12월호 "오순절적 성탄(A Pentecostal Christmas)"

존 D. 위트블리엇(John D.Witvliet)은 캘빈 예배 연구소 소장이며 캘빈 대학과 캘빈 신학교의 음악과 예배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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