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선교사가 되니 배가 고팠다
[에세이]선교사가 되니 배가 고팠다
예전의 사랑
  • 이영룡
  • 승인 2018.12.03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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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밀려오듯이 배고픈 빈민촌 아이들이 몰려 왔다. 감당 할 수 없는 많은 아이들이었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생존의 요소가 먹는 것인데 이 아이들에게는 먹을 것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이 아예 없었다.

마땅한 대책은 없지만 그래도 대책을 세워야 했다. 한달 생활중에 일정하게 지출되는 전기세와 물세와 교통비는 도저히 줄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먹는 것을 줄이는 것 즉 금식이었다.

하루에 한끼씩 먹었다. 반찬은 계란 후라이 하나였다. 극도로 아껴서 굶주린 아이들에게 바게트 빵을 사주어 나누어 주었다. 군대생활 할 때도 배가 고팠는데 선교사가 되니 또 배가 고팠다. 심하게 배가 고프면 위가 짓누르듯이 아프고 눈이 침침하고 온 몸에 힘이 다 빠져 나갔다. 서서히 무기력해져 가면서 아프기 시작했다. 영양실조에 걸리자 각종 풍토병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1년 6개월정도 비타민을 먹으며 힘없는 눈동자로 부모보다 더 나를 바라보며 쓰러져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악착같이 먹는 것을 아끼고 줄였다.

밤에는 기도하며 혼자 울었다. 괜히 눈물이 흘러 내렸다. 하나님 나도 배고파 죽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라기 보다는 절규였고 애절한 호소였고 눈물겨운 외침이었다. 가난은 무서웠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빈곤이었고 그 중에서도 배고픔이었다. 

나는 하나님과 내 이웃에게 드릴 물질이 없어 조금이라도 하나님 나라의 평수를 넓히기 위해 나의 온몸으로 헌신하고 봉사했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견딜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 때문이었다. 기도할 수 있어 견딜 수 있었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실천해 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영룡 캄보디아 선교사

1997년부터 캄보디아 빈민촌에서 선교사를 시작해 현재까지 20년이 넘도록 캄보디아에서 사역하고 있다.
면류관을 얻을 때까지 100% 손해보고, 100% 적자를 각오하는 것이 선교지만, 나중에는 100% 열매를 맺는다는 각오로 캄보디아 빈민들을 섬겨왔다.
저서로 '따뜰락 빈민촌의 행복한 선생님', '착한 말꾸들', '낯선 땅 낯선 사람들'이 있다.
홈페이지 : www.hopecambodia.com , e-mail : hosoca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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