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선 웹소설] 부끄러움을 감추다 16
[구유선 웹소설] 부끄러움을 감추다 16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 홍성사 출간
  • 구유선
  • 승인 2018.12.2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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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구유선 작가의 심리소설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를 새롭게 각색한 내용이다. 구 작가는 감춰왔던 수치가 곪아 터지며 시작되는 고통과 아픔을 형상화 하면서 ‘부끄러움’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들춰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조직, 부끄러움을 감추고 사는 관계, 부끄러움도 극복하는 신앙의 힘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심리 이론이 들어간 새로운 형식의 문학을 즐겨보시길 바란다. –편집자주

석 달이 넘었지만 Y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 나 또한 전화하지 않았다. 애써봐야, 20년 전부터 아니 30년 전부터 싸인 독 때문에라도 만나봐야 또 말싸움을 할 게 뻔했다. 그러면서도 Y에게 화도 났고 미안했다. 마치 Y의 말대로 남편을 잘못 만나 불행한 삶을 사는 게 나의 탓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Y가 남편을 잘못 만난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Y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늘 정성을 다하는 친구였다. 남편에게도, 암투병 중인 시어머니에게도, 시댁 식구들에게도...... 하지만 그것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불만과 분노를 친구인 나에게 와서 터뜨리고 있었다. 나는 또 Y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후회가 밀려왔다.

 

25년 전에도 Y가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것 자체가 Y에게는 위로였을 지도 모른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친구인데, 친구란 그런 것인데, 도망가기 바빴다. 이제야 친구로서 동등하게 서로의 아픔을 열었으니까, 그 아픔을 받아줄 여유가 생겼는데 뭐가 서로 안 맞아 이리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천막집을 살았었다는 내 아픔을 이야기 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가난한 현실이 부끄러움은 아닌데 그것이 늘 약점 같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얘기를 해버리고 나니 마치 그것 때문에 Y에게 거부당한 것 같아 순간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Y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 동안, Y를 처음 만났던 열다섯 살에 그 이야기를 했더라면? 천막집을 공개했었더라면? 어떠했을까? 넉넉히 받아줄 수 있는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이미 알았기 때문에 어쩌면 더 말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천막집을 산다는 것은 나의 수치이기에 그것이 보여지는 순간, 나를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Y는 내가 늘 좋아했었던 친구였다. 서로의 아픔을 품어 안아주지 못할 만큼, 사랑과 우정은 깊은 것이 아니었다는 실망스러움, Y 또한 마찬가지였을까?

 

쉽지 않은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토해놓았을 것인데 그것을 받아주지 못한 것은 나였다. 다시 20대처럼 반복적으로 Y를 기약도 없이 아픔만 남긴 채, 시간의 침묵 속으로 침몰시켜야 한다는 것이 하루하루 견디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 그 침묵을 깬 것은 Y의 문자였다. 문을 두드려 준 것이다. 기뻤지만 문자는 기가 막혔다.

"너는 나에게 30년 동안 거짓말을 했어. 잘 사는 척."

문자가 또 연이어 왔다.

"어린 시절 천막집에 산 게 내 탓은 아냐!"

 

나는 Y의 기가 막힌 문자에 곧바로 답을 보냈다.

"당연히 너의 잘못 아니지. 내가 너 오랜만에 찾아 간 날, 너희 아버님이 돌아가신 것도 내 책임은 아니거든. 그 어떤 일에도 우리는 아무 잘못 없어! 어린 시절 천막집에 살았었다는 말을 못했던 것은 너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야. 혹 그 말을 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보면 혹시 너하고 친구 못할까봐 두려웠던 거야."

30년 만에 처음으로 잘난체 없이, 폼 안 잡고, 나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더 솔직하게 고백했어야 했는가? 가장 사랑해야할 친구의 고통을 바라볼 때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부담스러움, 그래서 피하고 싶은 감정들, 친구였기에 친구의 고통을 그저 지켜봐줘야 하는,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다시 도망쳐 버리고 싶어 하지 않은가? 40대에 다시 만난 우리는 아직도 미성숙한 것인가? Y에게서 또 다른 문자를 기다려도 아무런 문자가 오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가장 고통스런 시간이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 시절 Y는 힘든 현실에 처한 나에게 은밀한 최초의 사랑이었고 동시에 기쁨을 안겨준 친구임에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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