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선 웹소설] 부끄러움을 감추다 15
[구유선 웹소설] 부끄러움을 감추다 15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 홍성사 출간
  • 구유선
  • 승인 2018.12.12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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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구유선 작가의 심리소설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를 새롭게 각색한 내용이다. 구 작가는 감춰왔던 수치가 곪아 터지며 시작되는 고통과 아픔을 형상화 하면서 ‘부끄러움’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들춰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조직, 부끄러움을 감추고 사는 관계, 부끄러움도 극복하는 신앙의 힘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심리 이론이 들어간 새로운 형식의 문학을 즐겨보시길 바란다. –편집자주

* 열등감

“너랑 나랑 만남은 악연이야!!"

20년 전, 20대 초반에 나는 Y에게 두 번 다시는 안볼 것처럼 소리쳤었다. 구구한 사연을 칼로 무자르 듯이 딱 끊어버리고, 7년 동안 연락을 끊었었다. 하지만 우리는 7년 후, Y가 결혼하는 날부터 다시 얼굴을 보기 시작했고, 1년에 한두 번 이어지는 통화, 몇 년에 한두 번 이어지는 만남, 그리고 다시 이렇게 보고 있지 않은가?

부모님이 안정적으로 생활을 든든히 받쳐주면서 음악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Y가 부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음악대학의 현실은 학비 외에도 레슨비를 지불해 가며 공부를 마쳐야 하는 현실이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문학의 세계보다 더 화려한 세계인 것이 분명했다. 양 손에 커다란 가야금 두 개를 들고 다녀야 하는 Y는 대학교 2학년 때 이미 차를 구입해 끌고 다녔다. Y에 비해 나는 학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공부를 병행해야 했다. 나는 늘 내 코가 석자였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가족만으로도 벅찼다.

부모님과 떨어져 산지 10년 만에 우리 가족은 다시 함께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함께 살기 시작한지 3개월 만에 아버지가 위암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의 위암이 우리 가족에게 모든 것의 기준이었다. 나에게 어둠은 가족만으로 충분했다. 그 무렵, Y의 아버지 또한 폐암 판정을 받아 Y의 가족 모두 미궁 상태에 빠져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불행을 겪었던 나의 입장에서는 Y와 똑같은 불행을 겪는다는 것이 이물스럽게 싫었다. 이제 대학을 갓 들어간 스물 한 살 나이에 맞지 않게 이상한 개똥 철학이 마음에 심어졌다. 아무리 친구라 하더라도 불행이 합쳐져 배가 되지 않으려면 각자의 불행은 각자의 몫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20년 전, 나는 Y에게 어느 순간부터인가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어쩌면 각자의 불행의 몫을 잘 감당하고, 더 이상 악연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내식으로 Y는 Y식으로 서로에게서 부지런히 도망쳤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Y에게는 남자 친구가 생겼다. Y를 빠져나가기에는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연락이 안한 지 5년이 지난 후, Y는 결혼을 했다, Y에게서 첫아이가 태어났다. 나의 아버지는 암을 잘 이겨냈지만, Y의 아버지는 여전히 투병 중이었다.

하지만 10년 만에 만난 바로 그 날, Y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왜 하필 서로가 오랜 만에 회포를 풀려고 했던 그날...... 나는 Y와의 만남이 정말 악연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예감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Y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나의 책임인 것 같은 그 두려움 때문에, 장례식에 가서 예를 차린 후.... 또 무자르 듯이 오랜 세월 동안 Y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친구라면 아버지를 떠나 보내놓고 마음이 괜찮냐고 위로라도 했어야 했는데, 벌어진 모든 상황이 우리가 정말 악연이기에 일어난 사건인 것처럼, 어느 누구도 나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았는데 Y로부터 도망치기 바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후, 우리는 다시 또 만났다.

Y는 친구인 나를 제 손아귀에 넣고 흔들려했다. 좋은 거, 맛있는 거, 고급스런 거 때때마다 사다주고, Y의 얘기는 무조건 들어주어야 하고 자기 편이 되어주기를 바랬다. 편이 되어 주지 않으면 내 앞에서 짜증부리고 토라지고, 토라지면 기본 몇 달씩이나 화가 풀리지 않았다. 말도 안하고 전화도 거부하고, 본인의 화가 풀려야만 소통하려 했다. 서로가 안 맞으면 서로를 이상 성격이라고 느끼는 것처럼, 나는 Y에게 말했다.

"남편한테 사랑 받고 싶은면 사랑 받고 싶다고 말해. 남편한테 못하니까 나한테 와서 성질부리지 말고...... 나는 네 남편이 아냐!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워?"

남편을 이해하라는 의미로 말해주었다. 하지만 Y는 남편 때문에 속상한 감정을 공감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짜증스럽다는 듯 극단적으로 말했다.

“나는 나 힘든 것을 말하는데 너는 왜 내 앞에서 맨날 폼잡아? 너 잘난체 지겨워! 네가 내 선생이기라도 해. 우리는 친구일 뿐이야. 어린 시절에도 우리 집에는 그렇게 자주 오면서 내가 뭐 하는지 다 들여다보면서 너희 집은 안 데리고 갔어. 중학교 때도 다른 애들이랑만 친하게 지내고 사람 늘 질투나게 하고 공부 좀 한다고 오만 잘난체는 다하고..... 나도 너 별루였어. 너 이제 지겨워!”

 

 

잘난체, 지겹다는 말에 나는 Y의 막말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나대로 자신들의 일상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친구 앞이라지만 남편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지나치다고 여겨서 한마디를 해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것들이 폭발할 줄은 몰랐다. Y는 말을 이어갔다.

"너는 실컷 잘해주다가 어느 날 연락 끊잖아. 또 그럴 거잖아? 너는 니 멋대로야!"

"내가 내 멋대로 라고. 그럼 내가 네 남편을 욕해야겠어? 그럼 너 더 기분 나빠? 이혼 안 할 거잖아? 어차피 너 그 남편하고 평생 살 거잖아? 네가 네 남편 욕하는 거 결국 네 남편한테 사랑 받고 살고 싶다는 거잖아? 사랑 받고 싶으면 사랑 받고 싶다고 말하고 잘하고 살라는 의미인데 뭐 이리 지나쳐? 그리고 네가 남편 잘못 만난 게 왜 때문이야?"

"네가 나 챙겨 줬어봐..... 친구니까. 내가 덜 힘들었을 거야. 내가 좀더 괜찮은 남편 만났을 거잖아. 그리고 내가 할머니도 아프고, 아빠도 아프고, 일도 안돼고....."

 

Y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Y의 눈물에 더 이상 동요하고 싶지 않았다.

"네 문제 만큼 나의 문제도 어마어마했어. 가족들도 챙겨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나도 힘들었어. 네 문제는 네 문제야. 그리고 네가 해결해 가야할 문제들이었어. 너는 내 문제를 해결해줬어? 너의 인생까지 내 책임이야?"

나의 선생 같은 톤과 선생 같은 지적질에 지겹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너는 친구 감정을 받아 줄 줄을 몰라! 이제 얼굴 안봐! 지겨워!"

"앉아! 나도 지겨워. 지금 가면 평생 얼굴 안봐. 그런 줄 알아!"

 

 

나는 차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런데도 나의 말을 무시하고 Y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두려웠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했어도 Y에게만은 말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나가려는 Y에게 나는 용기를 다해 말했다.

"어린 시절에 내가 우리 집에 너를 데려가지 못했던 것은 우리 집이 천막집이었기 때문이었어. 나라고 왜 너를 우리 집에 데려가고 싶지 않았겠어? 나는 맨날 너희 집 놀러갔는데 나라고 미안한 마음 없었겠어? 고등학교 2학년 때 천막집 그 자리에 제대로 된 집을 지어진 후, 제일 먼저 데리고 간 게 너였어! 내가 잘난체 대마왕이라고? 다 갖춘 사람은 잘난체를 할 필요가 없지? 생활이니까. 하지만 갖추지 못한 사람은 열심히 살아서 잘난체라도 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하는 생존인거야. 나는 늘 너가 부러웠어! 부모님이 안정적으로 학비 다 대주고 용돈주고 너는 늘 엄마가 옆에 있고..... 그런데도 뭐가 불만이라고 맨날 짜증 부렸어? 나랑 비교하고 주어진 것에 만족이라는 것을 할 줄을 몰라. 그런 내가 너를 어떻게 받아줘? 나는 지금도 내가 쓸 돈은 내가 벌어서 써. 너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아. 남편이 아파트 평수 알아서 넓혀주고, 살림 다 챙겨주는데 네가 원하는 거 때때마다 챙겨주는 데도 너는 끝없이 불만이야."

나는 두려움 없이 말했다. Y는 가방을 둘러 맨 채로 어벙한 표정을 짓고는 그 자리를 떠나야할지 말아야할지 몹시 망설였다. 천막집을 살았었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아님 Y 앞에서 생전 비교라는 것을 해보지 않았던 내가 Y 자신과 나를 비교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Y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남긴 채 "갈래!"하고 한 마디를 남기고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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