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선 웹소설] 부끄러움을 감추다 14
[구유선 웹소설] 부끄러움을 감추다 14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 홍성사 출간
  • 구유선
  • 승인 2018.12.05 0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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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구유선 작가의 심리소설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를 새롭게 각색한 내용이다. 구 작가는 감춰왔던 수치가 곪아 터지며 시작되는 고통과 아픔을 형상화 하면서 ‘부끄러움’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들춰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조직, 부끄러움을 감추고 사는 관계, 부끄러움도 극복하는 신앙의 힘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심리 이론이 들어간 새로운 형식의 문학을 즐겨보시길 바란다. –편집자주

친구 사이

 

*투사

전화 신호음만 길게 이어질 뿐, Y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20년 전처럼, 다시 또 시작했구나 싶어 하루하루 화가 치밀어 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제야 친구로서 동등해 진 것 같은데, 다시 떠나가려는, 아니 떠나보내야 하는 Y를 맞닥뜨리면서 나는 말할 수 없이 불안증이 밀려왔다.

한동안 학원을 하고 있는 나에게 아이들을 맡겼다는 이유로, 부지런히 맛있는 반찬을 해다 준 Y, 정성들여 만들어 갖고 오는 Y의 음식 솜씨는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Y는 나의 유일한 중학교 친구였다. 30년 전 감격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 함께 있으면 장난치고 싶고, 수다 떨고 싶고, 놀고 싶은 감정들에 아주 쉽게 빠져 들었다. 어린 시절처럼 Y와 나는 숨김 없이 순수한 감정을 드러내며 서로 살아온 이야기들을 수다로 풀어냈다. 수다의 중심에는 남편의 이야기가 늘 화젯거리였다. 화제 속에 담긴 유머와 분노가 오묘히 섞여, 우리는 수다를 통해, 상대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이다 싶어 추임새를 넣어가며 들어주었다.

“첫애 세 살 때다. 새벽녘에 아이는 아프고 애를 데리고 병원을 가야겠는데, 애를 데리고 나와서 보니 차 열쇠를 안 갖고 나온 거야. 그래서 새벽녘에 다시 올라갔는데, 이 인간이 술을 잔득 먹고 들어와서 곯아 떨어진 거야.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문을 열어줘야 말이지. 게다가 보조키까지 걸어 놓아서 열고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 정말 미쳐 죽는 줄 알았어.”

“너희 신랑은 웬 술을 그렇게 먹는대? 정말 속이 터졌겠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앞집 아주머니에게 부탁해서 돈을 좀 꿔서 택시 타고 병원에 갔지. 그 때는 정말 남편이 웬수야, 웬수!”

“네 말이 맞다! 조물주가 웬수들끼리 만나서 부부로 살게 하나봐!”

“그러게 말이다!”

한동안 Y와 나는 서로 쿵짝을 맞춰 가며 웃고 깔깔거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남편의 이야기는 남편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다. Y와 나는 서로를 평가하기 시작했고, 말이 많아질수록 삐끄덕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남편을 향한 분노를 나에게 풀어내듯, 그 분노가 남편을 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나를 향해 풀어내는 듯 지적처럼 느껴져, 나는 방어벽을 치기 바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하게도 Y와 헤어지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Y와의 수다 속에서 Y가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적 당한 기분 속에서 Y와 내가 20년 가까이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았던 이유들이 하나하나 기억으로 떠올랐다.

남편의 얘기가 길어지고 깊어질수록 내가 Y의 남편과 닮은 구석이 보일 때마다 Y는 나를 공격했다.

“내 남편처럼 너도 이기적이구나.”

“너도 돈 버는 생색이 대단하다!”

“뒤통수를 치냐?”

“이렇게 잘해주다가 예전처럼 또 빠져 나가려구.”

기분 좋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Y의 수시로 일어나는 변덕스런 감정 때문에 나는 힘이 들었다. 나의 감정 또한 Y의 비방 속에 침몰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 비방은 마치 ‘다 너 때문이야......’ 가 담겨 있었다. ‘왜 나 때문인지......’를 생각해 볼 겨를 도 없이, Y 앞에서 나는 미안한 감정에 시달렸다. Y가 나를 많이 좋아했었다는 사실에 나는 30년 만에 고마운 감정이 들기도 했다. 내가 더 많이 Y를 더 좋아한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감정의 실체들을 사실화 시키기 위해 애를 쓰면 쓸수록 Y와의 대화 속에 담긴 감정은 자신의 남편을 향한 감정인지 나를 향한 감정인지 모를 정도로 뒤엉켜 나에게 투사 되어 왔다.

부부 일은 모르는 일이 아닌가? 나는 대놓고 Y 남편을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다고 무조건 Y의 편을 들어 줄 수도 없었다. 나는 말했다.

“사업 하는 사람들이 흔히 영업을 위해서도 술을 많이 먹잖아. 남편한테 잘해줘.”

“술은 좀 먹지만, 살림 잘 챙기잖아. 책임감 있는 사람과 결혼해 놓고 왜 그래?”

Y남편은 보석 디자이너였다. 60평이나 되는 아파트에서 잘 꾸며 놓고서 꽤나 잘 살고 있었다. 내 앞에서 매번 외제차를 끌고 와서 내 기를 죽일 정도였다. 남편 잘못 만나 Y가 불행하다고 몰아붙이기에 나는 Y의 편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남편에 대해서만은 Y가 도가 지나칠 정도로 감정이 복잡하고 예민해서 급기야는 나는 Y 앞에서 어느 장단에 맞춰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Y에게서 또다시 빠져 나가고 싶었다. Y가 20년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우리는 서로 성격이 안 맞는다고 빨리 답을 내려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Y가 먼저 해버리고 말았다.

“너랑 나랑 안 맞아. 그리고 난 너 별루였어.”

“우리가 나이가 몇 살인데...... 맞고 안 맞고야? 유치하다! 좋아하지 않는 친구한테 너는 매년 생일선물 해주고, 음식해다 주고, 우리 집 오고 싶어 쫒아오니?”

25년이나 지난 우리는 서로 많은 일을 겪었다. 싸우고 회복하고를 반복하며 우리는 또 만나지 않았던가! 또 화가 풀려서 얼굴 볼 사이일 수 있기에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린 시절 추억까지 송두리째 공 없는 말로 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많은 것이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Y가 안타까웠다. 20년 전에도 Y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동서고금의 진리처럼..... 친구를 통해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20대에 겪었던 불화들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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