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선 웹소설] 부끄러움을 감추다 13
[구유선 웹소설] 부끄러움을 감추다 13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 홍성사 출간
  • 구유선 작가
  • 승인 2018.11.30 10: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소설은 구유선 작가의 심리소설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를 새롭게 각색한 내용이다. 구 작가는 감춰왔던 수치가 곪아 터지며 시작되는 고통과 아픔을 형상화 하면서 ‘부끄러움’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들춰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조직, 부끄러움을 감추고 사는 관계, 부끄러움도 극복하는 신앙의 힘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심리 이론이 들어간 새로운 형식의 문학을 즐겨보시길 바란다. –편집자주

*감정왜곡

남편에게 큰 병이 있었다. 가족에게는 무심하고 타인에게는 착한 병이었다. 타인의 요구들을 상황에 순순히 수용하고,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과연 착한 것인가? 남편은 착하고 싶어했다. 그래야 인정받는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이런 상황이 거듭될수록, 우리는 형편이 어려워졌고, 가난해졌다. 해 준 만큼 그것이 인정되어 돌아오지 않을 때 속은 분노로 끙끙거리면서 남들에게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는 남편의 위선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혐오스럽게 싫었다. 나는 남편과 살아가는 것이 너무 어려워 시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아이 아빠하고 살아가기가 너무 어려워요? 가족에게 너무 무심해요.”

시어머니는 목소리가 올라간 뉘앙스로 말했다.

“결혼시켜놨으면 알아서 살아야지. 뭐가 문제니?”

나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말했다.

“남들에게는 시간과 돈을 투자해 잘도 하니까 사람 좋다 착하다는 소리 듣지만, 돌아오는 게 없어요. 인정 받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가족에게는 무심한 거예요.”

어머니는 아무 감정 없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내 아들은 어려서부터 그랬어. 엄마인 내가 아버지에게 두둘겨 맞을 때도 말릴 생각은 안하고 하나도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었단다. 그 때마다 내가 얼마나 서러웠던지. 그 때도 그랬는데..... 뭐 얼마나 달라지겠니? 그게 성격이라는 거야. 그리고 네 팔자가 그런 걸 어쩌니?”

팔자라는 것으로 어머니는 모든 것을 결론을 내 버렸다. 그리고 아들에 대한 분노가 그 눈빛에서 여전히 쏟아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다행히 둘째아들은 큰 애보다 좀 자상해. 이 엄마한테 출장 갖다 올 때마다 화장품도 사다주고 옷도 사다주고...... 엄마, 불쌍한 줄 안다!”

남편에게 상처 받는 모든 원인이 남편의 어린 시절에 있다는 사실을 나는 시어머니 앞에서 명확히 하고 싶었다. 시어머니에게 반격의 질문을 던졌다.

“애 아빠는 당시 어린아이였으니까 공포에 질려서라도 어머니를 보호하는 게 당연히 어려운 일이죠? 제가 듣기로는 어머니도 애 아빠가 아버님에게 두둘겨 맞을 때 가만히 계셨다는대요? 어머니는 엄마잖아요! 엄마가 먼저 자식을 보호해야 하는 거 아녜요?”

어머니는 사뭇 당황한 듯했다.

“그거야..... 큰 애를 때릴 때 네 시아버지가 나까지 두둘겨 패니까 시끄러운 일을 더 안 만들고 그저 조용하려면 기가 죽고 가만히 있어야지. 큰 애가 그 얘기를 하대? 지 마누라한테 창피한 줄도 모르고 별 얘기를 다하는구나!”

나는 돌리지 않고 말했다.

“어머니도 지금 과거의 일을 쉽게 털어놓으셨잖아요. 어머니와 아버님은 어린 시절 애 아빠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신 거예요. 애 아빠는 당시에 어린 아이였어요. 그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어느 덧 늘 망설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비위나 맞추고 애쓰는 착해빠진 성격이 되어버린 거예요.”

어머니는 훈계를 받는다고 여겼는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런 성격이 된 걸 어쩌라구 그러니..... 문제는 일으키지 않잖니? 착한 것도 문제니?”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착한 것이었다. 남편이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보호하지 않았던 큰아들을 용서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부모 자신들의 수치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첫 아들이지 않은가? 엄마답게 보호하고 사랑해주지 못해 불쌍하고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부부의 치고 패는 싸움에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는 자식일 뿐이었다, 보호 받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저 분노는 과연 자식을 향한 감정인지, 시아버지에 대한 감정인지, 20년이 지난 일이었음에도 시어머니의 감정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남편은 분명 아무 것도 저항할 수 없는 어린 나이이지 않았던가? 그런 어린아이를 보호해야하는 것은 부모였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잘 자라준 내 자녀가 기특하고 대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시어머니의 감정은 분명 왜곡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어쩌면 여전히 보호받고 싶은 연약한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시댁의 과거를 알아버린 며느리 앞에 시어머니는 창피한 모양이었다. 일찌감치 집으로 가 버렸다. 결혼생활 8년 만에 시댁의 어두운 분위기가 시아버지의 잦은 폭행 때문에 만들어 진 것임을 나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극의 실체를 알고 나니 어디에서부터 이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지 오히려 미궁 속에 빠져든 것 같았다. 남편은 부모의 말에 그렇게 순응하면서도 막상 먼저 전화하여 안부를 묻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동생들에게도 똑같았다. 남편만 그런 것인가? 형제들끼리도 전화 통화를 주고 받지 않았다. 부모님 또한 필요할 때 외에는 전화하지 않았다. 단지 명절 때 만나 이들은 가족으로서 의무를 행할 뿐이었다. 가족들은 대화가 없었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게다가 형제들 끼리조차, 서로가 서로를 부담스러워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런 가족 분위기에 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시댁 식구들이 여전히 과거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랑을 주고 받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시댁식구들이었다. 의무를 요구하는 일은 쉬운 일인 모양이었다. 시동생과 시누이는 시어머니에게 잘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큰아들네가 잘해야 한다는 관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사랑은 해주지 않으면서 의무만 요구할 때, 부담을 주어서 더욱 의무를 행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 모든 인간이라면 간절히 원하는 그 사랑을.....어쩌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살아왔는지도 몰랐다.

늘 술에 쩔어 공포의 도가니 같은 분위기에서 엄마를 때리는 아버지를 사랑해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폭력 남편을 사랑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언제나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에 살아가는 엄마를, 돈밖에 모르는 엄마를 사랑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무심한 자식들을 사랑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형의 분깃까지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동생들을 사랑해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부모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만 살아가는 무능한 형을, 오빠를 사랑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익이 있을 때에만 내 가족이라고 외치는..... 이기적인 가족의 존재를 사랑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힘들 때 더욱 따듯하게 끌어 안아주어야 하는 것이 가족이라는 진실을...... 외면하는 이유는 그 사랑이 부담스러워서일까? 사랑 없이도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서일까?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 남편은 가족이 아닌 타인들에게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착한 성품으로 다가가 타인의 인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보다 남들이 더 편안하여 남들에게 잘하는 사람이 된 내 남편! 착하게 보이려고 좋은 사람인듯 보이려고 더 애를 쓰는 남편, 가족 안에서는 무심하고 밖에서는 잘하는 남편의 이중적인 모습을 이해 한 나는, 남편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을 때, 왜 그리 미친 듯이 7년 동안 하나님 아버지를 찾았는지도, 왜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도망치고 싶어 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남편이 말할 수 없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죽을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