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그래도 교회는 피난처가 돼야 한다
[칼럼]그래도 교회는 피난처가 돼야 한다
나는 다섯 살 때 대부분의 미국 교회들이 흑인들에게 안전한 곳이 못 된다는 것을 알았다
  • 크리스티나 클리브랜드 | Christena Cleveland
  • 승인 2018.11.1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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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경찰관이 총격 용의자를 제압하고 있던 흑인 경비요원에게 총을 쏴 숨지게 한 사건이 지난 13일 미국 시카고 남부에서 발생했다. 미국 내에서 '흑인 공포증이 부른 참사'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이런 문화는 교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15년 6월 17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임마누엘 흑인 감리교회에는 난입한 백인이 흑인 목사를 포함 9명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사건에 대해 교회 안에서는 벌어지고 있는 흑인에 대한 차별과 공포증에 대한 문제를 흑인으로서 차별을 몸으로 느껴 온 신학자가 쓴 칼럼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우리의 문화적 지평을 넓혀주겠다는 바램으로 부모님은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있는, 백인 교인이 대부분인 한 교회의 여름성경학교에 우리를 등록시키셨다. 공놀이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오빠와 나는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몹시 화가 난 그녀는 우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들어오지 못해, 이 껌XX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여름성경학교에서 유일하게 백인이 아니었던 우리 남매는 그 말이 우리 피부색을 가리킨다는 것을 대번에 알았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주눅이 들었고 불안했다.

그날의 경험은 단지 처음일 뿐이었다.

그 뒤로도 나는 백인 교회들이 흑인인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경멸하는 경험을 여러 번 더 해야 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백인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는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느낌과 불편함을 느꼈다. 지난 6월 17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임마누엘 흑인 감리교회에 난입한 백인이 클레멘타 핑크니 담임 목사를 포함한 9명의 성도를 살해한 그날도 나는 다섯 살 적 그날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그 기억 때문에 오랫동안 나는 백인 교회는 흑인들에게 안전한 곳이 못 된다고 믿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백인들 사이에서 하나쯤 구색을 맞춰놓은 마스코트 취급을 받거나, 아니면 막연한 질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침묵했다. 그래서 임마누엘 교회에 대한 공격은 내게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흑인은 흑인 교회 안에서조차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이 교회가 흑인을 위한 안식처로 세워졌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의 트라우마는 더욱 심각하다.

이 유서 깊은 교회는 백인 교회 안에 존재하는 마치 유전자와도 같은 흑인차별주의로부터 흑인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졌다. 노예제도 폐지 이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백인 선교사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은 피하고 바울 서신에 초점을 맞추어, 굴종과 인종적 위계질서를 흑인 성도들에게 설교했다.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하워드 서먼이 말했듯이,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사로잡힌 사람들의 자유와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속박 아래 있는 사람들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노예들이 이해하도록 해서는 위험했다.” 백인이 주도하는 교회는 흑인을 지배하는 근거지였으며, 바로 그곳에서 백인 기독교를 오랫동안 형성해 온 인종 불평등의 유산이 잉태되었다.

“임마누엘 흑인 감리교회는 인종차별주의에 맞서 설립된 교단이었다”고 프린스턴신학교 흑인교회연구소 소장이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종교 및 문학 교수인 욜란다 피어스는 말했다. “이 흑인 교회 자체가 백인 폭력으로부터 흑인을 보호하는 성소로 태어났다.” 그렇게, 이 흑인 교회는 인내의 유산, 차별로부터 흑인을 보호하고 해방시키고자 하는 전통을 세웠다.

흑인과 백인 교회 양쪽의 유산은 계속 이어졌다.

많은 흑인 교회들은 19세기에는 노예폐지운동과 흑인에 대한 린치를 금지하는 운동을, 20세기에는 민원운동을 주도했지만, 백인 교회들은 인종불평등의 현상 유지를 대부분 지지했고 변화에 노골적으로 저항했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미국을 초월하여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이 마당에, 공공 종교 조사 연구소Public Religious Research Institute의 가장 최근의 데이터를 보면,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인들이, 이런 운동이 필요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유일한 주요 종교 집단이다. 백인 복음주의자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공무원은 흑인과 백인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10명 중 6명 가까이는 최근에 경찰이 흑인 미국인을 사살한 사건은 돌발적인 사건일 뿐, 반-흑인 사회의 조짐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종주의가 여전히 문제라고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교회들이 어떻게 흑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존중할 수 있겠는가?

흑인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있기 전까지는, 흑인 교회는 불가피하게 피난처와 저항의 장소가 될 것이다. 나와 같은 흑인 그리스도인들이 평등을 이루기 위해 땀 흘려 일하고 더 넓은 교회의 안과 밖 모두에서 왜곡되어버린 인종적 정체성들을 회복하고자 노력하는 하나님과 공동체를 만날 수 있는 그런 장소 말이다.

임마누엘 교회 테러를 지켜보면서, 나는 백인 교회가 인종주의 유산을 거부하고 흑인 형제자매들과 함께 서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흑인 교회는 하나님의 흑인 백성들을 위한 등불이자 피난처로 남아 있을 것이다.

크리스티나 클리브랜드 : 듀크신학원 부교수이자 화해 센터Center for Reconciliation 소장으로 화해의 실천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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