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종의 리더십 VS 예수의 리더십
[칼럼]종의 리더십 VS 예수의 리더십
권력을 내어놓을 필요가 없는 리더십은 ‘종의 리더십’이 아니다
  • 크리스티나 클리브랜드 | Christena Cleveland
  • 승인 2018.10.0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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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였을 때, 제자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거기서 종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에 관한 책을 과제로 읽었다. 저자는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신 방식들을 설명했다. 사람들의 발을 씻기시고, 아이들이 당신의 무릎 위에 앉는 것을 허락하시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시는 방식으로 예수님은 사람들을 섬기셨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예수님을 닮으려면 종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는 그 책에 빠져들었다.

“종의 리더십”은 지금도 유행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매력이 있다. 교회와 대학의 강당에서 선량한 그리스도인 리더들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섬기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아마도 어느 학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방금 노숙인 쉼터에서 봉사하다가 돌아왔는데, 거기서 저는 종의 리더가 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아늑한 기숙사 방으로 돌아간다. 또는 어느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무엇인가 교회 일을 해야 한다고 초청하는 것을 목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종의 리더십은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모든 조건이 동일하지 않은 이 세상에서―인종, 계급, 성별이 중요한 변수가 되는 이 세상에서―종의 리더십에는 여러 가지 제한이 있다. 위에서 든 두 가지 보기에서도, 섬기고자 하는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 리더들에게는 권력이 있다. 종의 리더와 섬김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비동일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예수님은 종의 리더십에 관하여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종의 리더십이라는 개념이 고대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 용어가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이다. 그해에 로버트 K. 그린리프Robert K. Greenleaf[Servant Leadership의 저자]는 이 용어를 독재자 리더십을 비판하는 그의 글에서 사용했다. “지도자로서의 종”이라는 그 글에서 그린리프는 권력이 있는 사람들의 최우선순위가 섬기는 것이라면, 그보다 권력이 많지 않은 사람들을 윤리적으로 이끌 수 있다고 제안한다. 많은 리더들이 아랫사람들을 섬기기를 원하기만 한다면 자기는 좋은 지도자라는 의미로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종의 리더십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왜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고 다른 어떤 사람들을 그렇지 않은지, 그리고 리더십은 실제로 권력차를 없애는지 그렇지 않은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복음주의 리더들은 종의 리더십과 예수님의 리더십을, 그리고 나도 참가했던 그런 제자훈련 프로그램과 잘못 합쳐버렸다.

종의 리더십은 예수님의 리더십의 혁명적인 본질을 해친다. 종의 리더라는 개념은 몇 가지 다른 종교들과 고대 철학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 기독교적 기원은 예수님의 놀라운 이 선언에서 발견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막10:43-45)

종의 리더십과 달리, 예수님의 리더십은 그 땅과 그 시대에 불평등을 끊임없이 심어놓고 있던 사회적 배타주의와 종교적 정결관념에 도전했다. 예수님은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진정으로 섬기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리더십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바치셔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을 부여하고 어떤 사람들은 권력에서 배제하는 그런 장벽들을 허무셨다.

비록 종의 리더십이 권력 차이를 넘어서서 섬기려고 시도해보더라도, 그 권력 차이를 실제로 줄이지는 못한다. 오히려, 종의 리더십은 권력이 있는 사람들과 권력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당히 얼버무리는 상호작용을 조장함으로써 그런 관계를 더욱 강화한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리더십은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될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권력 구조를 뒤집었다.

예수님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거의 모든 사례들에서 우리는 그 리더십이 불평등한 사회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마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부자인 젊은 관원(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인물)에게는 모든 소유물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요한복음 9장에서는 나면서부터 눈이 먼 사람에게 회당 지도자들에게 설교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 설교사역을 통해서 예수님은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호되게 꾸짖으셨다. 당신의 목양사역에서 예수님은 “회중”의 소리를 듣기만 하시지도 않았고, 다음에 그들을 당신의 계획에서 배제하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권력을 나눠주셔서 그들을 왕권의 공동 계승자가, 죽음을 물리치는 권능의 사람이 되게 하셨다.

권력을 계속 쥐고 있으면서 종의 리더가 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한 권력이란 결국 어떻게 끝을 맺는지 보여주셨다: 당신의 죽으심. 예수님의 삶에서 리더십과 죽음은 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종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들을 파악하고, 권력을 쥐고 있는 우리가 그러한 구조들로부터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심지어 그 구조들을 유지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진정한 종의 리더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여정은 작은 죽음의 시작이 될 것이다.

크리스티나 클리브랜드 듀크신학원 부교수이자 화해센터 소장으로 화해의 실천을 가르치고 있다.

출처 : 크리스채너티투데이 한국판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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