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선 웹소설]부끄러움을 감추다 12
[구유선 웹소설]부끄러움을 감추다 12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 홍성사 출간
  • 구유선
  • 승인 2018.11.21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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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구유선 작가의 심리소설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를 새롭게 각색한 내용이다. 구 작가는 감춰왔던 수치가 곪아 터지며 시작되는 고통과 아픔을 형상화 하면서 ‘부끄러움’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들춰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조직, 부끄러움을 감추고 사는 관계, 부끄러움도 극복하는 신앙의 힘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심리 이론이 들어간 새로운 형식의 문학을 즐겨보시길 바란다. –편집자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무심한 성격의 여파는 아내인 나에게까지, 나와 나의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나 또한 숨 쉬고 살기가 힘들었다. 남편이 신앙을 갖게 된 이후, 신학공부를 시작하면서 교회의 모든 예배에 참석을 하고 하루도 안 빼놓고 철야 예배에 참석을 했다. 철야 예배에 참석한 날은 새벽녘이나 되어야 집에 들어왔다. 낮에는 직장을 갔다가 오후에는 야간신학교를 다녔다. 신학교가 끝나면 교회 철야예배에 참석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녘이나 되어야 겨우 얼굴이라도 볼 수 있는 상황이 오면 나는 비아냥거리며 남편에게 내 감정을 쏟아냈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한테 미쳐 있으면 하나님은 뭐라고 하셔? 가정을 버려라! 가정을 버려라! 하셔? 내가 아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닌데.....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사탄 아닌가? 사탄이 좋아하는 게 온통 찢어 발기는 게 사탄인데.....”

 

남편은 듣고 있다가 눈을 크게 떴지만, 목소리는 낮으막하게 말했다.

“하나님을 모독하지마. 당신도 철야예배에 가봐. 은혜스러워!”

나는 표독한 표정으로 말했다.

“은혜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해. 당신은 예배 중독에 빠졌을 뿐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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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예배중독이라는 말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만만찮게 맞짱구를 치며 내 말을 받아쳤다.

“알콜 중독이나, 도박이나 경마에 빠지는 것보다 예배에 빠지는 게 뭐가 이상해? 예배를 모독하지마!”

나는 남편이 시댁식구로부터 받은 상처를 표독스럽고 꺼집어내 말하고 말았다.

“큰아들로서 집안을 위해 엄청나게 거룩한 희생을 했는데, 당신 가족들이 고생한 것에 대해 분깃을 떼 주지도 않고, 고마움도 모르고 오히려 당신 분깃을 모두 훔쳐 가 놓고 미안한 줄도 모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아보려고 하니 속은 터져? 이 상황에 갈 데가 하나님 밖에 없었어? 적당히 먹기 좋게 다 구워지면 축제를 벌이고 지들끼리 나눠 먹어야 하는 희생양이 되고 나니 견딜 수가 없어. 실컷 이용당하다가 버려지고 나니 분노는 솟아오르고 참으려니 힘들어서 못 견디겠어. 그래서 예배가 필요한 거야?”

남편은 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만해. 나는 분노하는 게 아냐. 그리고 하나님이 내가 희생한 것을 다 채우시겠지?”

나는 더욱 밸이 꼴려 말투를 내리깔았다.

“가족들에게 다가가 자기가 받아야할 것들을 챙겨 받지 못해놓고, 거룩한 희생이라고 말하면 마음이 좀 편해져. 그런데 왜 당신이 정말 가족을 위해 거룩한 희생을 했다면, 당신 속에 기쁨이 있어야지? 왜 부모님과 동생들을 향해 분노가 있어? 당신 가족들은 왜 서로가 서로를 연락도 안하고 피하고 살아?”

나의 비아냥 거림에도 듣기 싫고 피곤한 듯 남편은 말했다.

“내가 이제 하나님을 만났으니 나의 분노를 하나님이 거둬 가시겠지? 거룩한 희생이든, 버림받은 희생양이든 희생양은 어떤 방식으로든 아프고 고통스러운 거야!”

남편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프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내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를 들여다 봐주지 않는 데 남편의 고통을 왜 들여다 봐 줘야 하는가? 신앙심이 생기고 나서 하나님을 매번 무기 삼는 남편을 향해 직격탄으로 소리치며 쏘아댔다.

“아프겠지? 너무 아프겠지? 사악한 당신 가족의 희생제물이 되어 놓고서 남는 게 없거든. 무엇 하나 남는 게 없으니...... 당신은 미치겠는 거지. 그런데 왜 당신은 그런 희생을 나한테까지 강요해? 주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가장이 아닌가? 하나님이 가장의 의무를 저버리라고 하셨나? 가정을 지키지 말고 버리래?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야. 그 하나님이 날이면 날마다 예배드리고 새벽에 들어와 마누라 자식 내 팽개치고 하나님만 보래? 내가 아는 하나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우선순위를 중요시 여기시는 질서의 하나님이셔.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분이셔. 찢어발겨서 허구 헌날 불화를 일으키는 하나님이 아니라 무엇이든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셔. 내가 당신 속을 말해볼까? 당신 또한 가장 대접은 받고 싶은데, 의무는 행하기 싫은 거지. 당신이 가족 속에서 그렇게 멋들어지게 아무것도 남는 거 없는 희생양이 되었으니 내 마누라인 너도 그렇게 살라는 건가? 학부에서 대학원까지 7년 동안을 그렇게 했어. 나는 이제 못해! 적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희생은 사악한 것들의 희생제물이 되길 원하지는 않으셔. 오히려 하나님이 그 사악한 것들과 싸워 주시지. 하나님은 적어도 당신의 자녀를 보호하셔! 그런데 당신은 왜 가족에게조차 보호 받지 못하지? 당신 가족은 당신을 착취해 가고, 당신은 나를 착취해 가고 있을 뿐이야. 신앙이 착취야? 타인의 것을 다 앗아 가는 착취냐구? 나한테는 당신과 살아가는 게 기쁨이 없어! 당신이 신학공부를 하고 목사가 된다 한들, 나한테는 기쁨이 없어. 내가 왜 아무 의미 없는 희생물이 되어야 하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희생은 그리고 그 희생물은 내가 아는 한 권세가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배려와 도움으로 목회의 길을 가. 그리고 그 사랑을 다시 나누고 베풀어. 그런데 당신한테는 누가 도움을 주지? 하나님은 왜 당신에게 권세를 주시지 않으시지? 부르심 맞아? 어떤 누구도 도움을 주기는 커녕 착취해 갈 것도 없는데 몽땅 착취해 가고 나서, 당신이 목사가 되고 나면 또 들러 붙어서 내 아들이 목사야! 내 형이 목사야! 그러면서 또 오겠지.

사람들한테 목사님! 목사님! 이 소리 하나 듣자고, 사회적 지위 하나 얻자고 이 힘든 길을 가나? 몸둥아리에 사악함은 그대로 묻어 있으면서 마누라와 자식 한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도 모르면서 목사라는 지위를 갖고 남의 것을 더 착취해 갖고 오려고 이 길을 가려고...... 적어도 누군가를 더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이 길을 가는 거 아닌가? 그게 목회가 아닌가? 영혼을 사랑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되도 안는 신앙을 가져다가 나를 희생양 삼지마!”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고 있는 이웃이 깰 정도로 이 새벽이 떠나가라 소리 소리쳤다. 나의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은 표정을 이기죽 거리며 말했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당신 잘났으니까 그만해!”

나는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목사라는 당신의 사회적 지위가 아냐? 나는 사랑을 원해. 나는 적어도 사랑 받고 사는 아내 이길 원해! 그런데 당신은 사랑은 해주지 않고 온통 희생만 하기 원해. 예수의 제자들은 적어도 예수를 사랑했어! 그래서 그 희생을 가치롭게 보고 찬양을 한거야. 그런데 당신은 날 사랑해? 당신 가족이나 당신이나 차이가 뭐지? 다 뜯어먹고 뼈다귀만 남으면 버리려구.”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남편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내뱉지 못한 채,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나는 현관문에다가 대고 소리쳤다.

“이 새벽에 또 어디 가는데?”

남편은 나의 고통스런 외침 속에 숨겨 있는 내 고통을 들여다 보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자기 고통이 너무나 커 내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눈물이 목구멍까지 복받쳐 올라왔다. 자고 있는 아이가 놀라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괴성을 지르며 엉엉 대고 울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주님을 부르짖으며 외쳤다. 정말 내 영혼에 어둠이 가득 담긴 고통스런 밤이었다.

그 날 이후, 남편이 예배 중독에 미쳐 갈수록, 나는 남편에게 관심을 끊고, 무심해져갔다. 남편처럼 믿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기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새벽에 들어오든 말든 나는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아야할 나이인 나의 아이에게도 무심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 또한 무심한 병이 커질수록 분노 또한 비례법칙처럼 대나무 죽순처럼 쑥쑥 커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내 남편이 가족에게 품고 있는 분노가 나에게도 전이 되어 오듯이, 나의 노트북에 남편이라는 파일을 만들어 놓고, 세상의 모든 욕을 다 끌어다가 욕을 해댔다. 나는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미안함도, 분노도, 그 어떤 것도 감정조차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야 지리산 벌거숭이처럼 서 있는 고사목처럼, 차거운 눈밭에서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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