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칼럼]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밀턴, 페일리, 다윈은 이 질문에 어떤 답을 주는가
  • 앤드류 J. 윌슨
  • 승인 2018.09.2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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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김영사 역간)에 대한 대응으로 짧은 책을 썼었지만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종교부 기자가 갑작스런 전화를 해 내일 신문 1면에 실릴 변증문을 좀 써달라는 부탁을 했을 때, 나는 충분한 준비도 없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사실, 나는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글은 캔터베리 대주교가 언급한 말로 결론을 맺었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호킹의 글을 읽고 그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려고 했던 말인데, 그 말은 과학과 종교가 얼마나 심한 교전 중에 있으며 이것이 얼마나 일반적인 현상인지를 잘 보여준다. 호킹에 따르면, 사람들이 창조자를 믿는 유일한 이유는 우주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인데, 만약 사람들이 우주의 정체를 알아내면 창조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도킨슨에게 다윈의 진화는 신이 없음을 “거의 분명하게” 해준 사건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이에 대한 반대 주장을 펼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성경을 진리라고 믿기 때문에 진화나 빅뱅이나 그 밖의 것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전선은 이곳 영국에서만큼이나 미국에서도 분명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가들과 한 식탁에 앉는다면 
기독교, 진화, 인간의 기원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의 핵심 쟁점들은 내가 저녁식사 하는 장면을 바라보곤 했던 학자 세 명에 의해 요약될 수 있다.

캠브리지대학교 크라이스트칼리지를 다닐 때 나는 오크나무 판으로 만들어진 어두침침한 주방에서 밥을 먹곤 했는데, 벽에는 유명한 동문들의 유화가 걸려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존 밀턴, 윌리엄 페일리, 찰스 다윈 이 세 사람은 창세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꾸어놓았다. 이후로도 그들은 창세기를 읽는 세 가지 주요한 방법들을 꾸준히 대표하고 있다.

존 밀턴은 「실낙원」으로 유명한 작가다. 17세기 중반에 발표된 이 시는 의심할 여지 없이 영국에서 쓰인 가장 위대한 시다. 이 시는 에덴동산의 아름다움, 아담과 하와의 비극적 불순종과 타락을 묘사하고 있다. 유화 속의 밀턴은 단정하면서 조금은 여성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시는 장엄하다. 땅을 침략하는 죄와 사탄에 대한 그의 묘사는 극적이고, 시적이고, 대단히 신학적이다. 밀턴에게 창세기는 세상에 악과 죽음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주는 가장 중요한 책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18세기 철학자 윌리엄 페일리는 초상화 속에서 약간 살이 찌고, 안색이 붉고, 큰 검정색 베레모를 쓰고 있다. 오늘날, 그는 시계공 비유를 통해 신의 존재를 설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페일리는 그 어떤 사람도 시계를 보면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잡하고 정밀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고서 그것이 설계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배후에 성스러운 시계공이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는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 모든 것을 설계하고 창조하셨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가 아닌 어떤 것이 세상의 이런 특징들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이제 유화 속에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찰스 다윈을 살펴보자. 그의 얼굴은 음울하고 심각하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빅토리아풍으로 길게 턱수염을 기른 그의 얼굴에 있는 주름들은 오랜 세월 동안 눈썹을 찡그린 채 상자 안에 있는 작은 물질들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보기는 그렇게 보여도 그는 어마어마한 과학적 업적을 남겼다. 오늘날, 자연선택을 근거로 한 그의 진화론은 학계에서 광범위하게 인정을 받고 있으며, 여러 분야의 연구를 통해 그 확실성이 다각도로 증명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전통적인 창세기 읽기와 많은 부분에서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특별히 이것은 밀턴과 페일리가 창세기를 읽는 방식,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는 방식 모두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는 흔히 영화 제목인 “만약 이 벽들이 말할 수 있다면”(If these walls could talk) 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이 위대한 인물들이 초상화 속에서 나와 우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눈다고 상상해보자. 이 세 사람이 정치나 제국이나 창세기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혹시, 밀턴은 죄로 인해 타락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된 실재 인간 부부에 대해 이야기할지 모른다. 페일리는 세상의 복잡성을 들어 세상이 설계되었음을 주장하려 할지 모른다. 그리고 다윈은 (밀턴에 대항하여) 죽음은 언제나 있어왔다는 반론을 제기할지 모른다. 또한, (페일리에 대항하여) 자신의 이론이 세상이 설계되었다는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이 초상화들이 영화 <해리포터>에서처럼 다시 소생하여 대화를 나눌 수 없음이 애석할 뿐이다.

아직까지도 서구에서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이런 대화가 벌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다윈을 반대하는 페일리의 편에 서고 있다. 그들은 생명은 설계된 것이지 진화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페일리를 반대하는 다윈의 편에 선다. 그들은 생명은 진화된 것이지 설계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밀턴은 거부하고 다윈을 옹호한다. 그들은 동물과 인간은 애초부터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었지, 아담이나 하와나 타락 같은 것들 때문에 죽음이 생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다윈은 거부하고 밀턴을 옹호한다. 그들은 에덴동산, 아담, 하와는 실재 존재했고 동물과 인간은 타락 이전에는 죽을 운명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밀턴에게는 동의하지 않지만 다윈과 페일리에게는 동의한다. 그들은 진화는 하나님에 의해 설계되었지만 문자 그대로의 타락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또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페일리에게는 동의하지 않지만 다윈과 밀턴에게는 동의한다. 그들은 진화도 일어났고 문자 그대로의 타락도 일어났지만, 설계 논증은 단지 ‘빈틈의 하나님’(God-of-the-gaps, 현재의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들어 신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시도, 우리 지식의 빈틈에 신을 끌어들여 메우려 한다는 의미/편주) 논증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편, 저마다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더 악화시키려는 것인지, 본질적으로는 세 가지 입장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는 극소수 괴짜들까지 존재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도 믿고, 설계 논증도 믿고, 다윈주의자들의 진화도 믿는다. 내가 바로 그 괴짜들 중 하나다.

세 가지 모두 옳다면, 어쩌란 말인가
당연히 여러분은 나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내가 캠브리지대학교 크라이스트칼리지를 나왔다는 것 외에는 나에 대해 밝힌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깊은 논의를 진행하기 전에 잠시 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영국인이고 목사이자 작가다. 그리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논의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신념이 있다.

먼저, 나는 성경이 그 맥락과 목적과 장르에 맞게 잘 해석된다면 그 어떤 오류도 없다고 믿는다. 이것은 반드시 언급해야 할 부분이다. 왜냐하면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성경에 오류가 없다고 믿는 많은 사람들은 진화가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나는 권위 있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의 신뢰성과 완성도 그리고 실험 과학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정한다. 이것 또한 반드시 언급해야 할 부분이다. 왜냐하면,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과학을 신뢰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담과 인류의 타락이 실제 일어났다는 주장은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나는 밀턴, 페일리, 다윈의 주장이 근본적으로는 모두 옳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설계 논증, 타락의 역사성, 진화론은 모두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이 세 가지가 결코 화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는 죽음(밀턴 대 다윈), 설계(다윈 대 페일리), 인간 기원(다윈 대 밀턴) 및 그 밖의 여러 주제에 대해 너무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믿기로, 만약 크라이스트칼리지에 걸려 있는 유화의 주인공들이 어떻게든 그림 안에서 살아나올 수 있다면, 분명 그들은 그들의 차이점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죽음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밀턴은 실낙원의 처음 몇 소절에서, 서사시 형식으로 묘사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인간의 첫 번째 불순종,
그리고 세상에 죽음을 가져온 
치명적 맛을 지닌 금지된 나무의 열매, 
그리고 한 위대한 사람이 우리를 다시 회복시킬 때까지 
에덴동산을 잃은 채 겪어야 하는 우리의 모든 비통함이여, 
 
다시 말해, 밀턴에게 죽음이란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반면, 다윈은 죽음을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이미 수백만 년에 걸쳐 이 세상에 존재해왔던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두 가지 생각이 모두 옳을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은 당신이 죽음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다윈은 식물과 동물의 육체적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창세기를 보면, 이런 주장이 영 틀린 말은 아니라는 단서가 있다. 즉, 창세기를 보면, 식물들은 이미 타락 이전부터 사람의 먹이였고, 동물들이 처음부터 불멸하는 존재였다는 내용은 없다.) 한편, 밀턴은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 말했던 인간의 육체적 죽음과 영적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 하신 말씀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창 2:17, 3:19). 그래서 얼핏 보면, 다윈과 밀턴은 죽음에 대해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들은 단지 다른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다.

설계와 관련된 논쟁은 이보다 훨씬 더 뜨겁다. 한쪽 편에 서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도킨슨과 맥을 같이 하고 다윈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복잡한 생명은 진화한 것이지 설계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복잡한 생명은 설계된 것이지 결코 진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진화는 무작위적 과정을 전제한 것이기 때문에 설계(설계자)와는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다윈의 입장을, 후자는 페일리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처럼, 생물학자와 변증가는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어진 사안을 너무 심각하게 볼 필요는 없다. 물리적 요인들이 무조건 사적 요인들을 쳐내지는 않는 법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자들이 뇌에서 호르몬들과 화학물질들을 발견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랑의 망상」(The Love Delusion)이나 「사랑은 위대하지 않다」(Love Is Not Great)나 「마력 풀어헤치기: 자연현상으로서의 사랑」(Unweaving the Spell: Love as a Natural Phenomenon)과 같은 책을 쓰려고 하지 않는 이유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종종 매우 무작위적으로 보이는 과정을 사용하셔서 사물을 설계하신다. 어떤 경우에는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서 그렇게 하신다. 그랜드캐니언은 매우 무작위적으로 보이는 화산 폭발에 의해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에 의해 설계된 것이다. 로키산맥은 분명 불규칙한 지각 운동에 의해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하나님에 의해 설계된 것이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의 형성, 명백한 무작위적 과정이 신성한 설계와 무조건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만약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분이라면 이 세상에는 무작위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우리 눈에는 아무리 무작위적으로 보일지라도 말이다. (열왕기상 22:13-40에서 아합 왕이 “무작위로” 쏜 화살에 맞아 죽으리라는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을 보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주의 기원, 미세하게 작동하는 우주의 물리법칙, 정보와 생명과 의식의 발생에 대한 페일리의 논증이 여전히 그 유효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다윈의 이론이 상세한 차원에서까지 옳다는 인정을 받고 있지만, 그것을 가지고 진화는 무작위적으로만 일어났으며, 신의 설계는 무조건 배제돼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세 번째 문제는 가장 불편한 사안을 다룬다. 밀턴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실존 인물이라고 믿었다. 또한 아담은 흙에서 왔고,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에서 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다윈은 인간이 다른 생물과 계통을 공유한다고 믿었다. 사도 바울과 후대 사람인 밀턴은 아담을 역사적 실존 인물로 분명히 믿었지만, 현대 유전학은 가유전자(pseudogenes) 연구, 도약 유전자(jumping genes) 연구, 레트로바이러스 주입(retroviral insertions) 등을 통해 다윈의 견해에 어마어마한 과학적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 대다수는 밀턴을 옹호하고 다윈을 거부하든지, 다윈을 옹호하고 밀턴을 거부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모두 아담의 후손이지 다른 생물체의 후손이 아니다”라는 주장과 “인간은 다른 생물체의 후손이기 때문에 아담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라는 주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첫 번째 입장은 과학에 거대한 문젯거리를 제공하며, 두 번째 입장은 성경에 거대한 문젯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여기에 도움이 될 만한 논평이 있다. 하나님에 의해 직접 창조된 신석기 시대의 농부 부부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없었다고 말할 만한 증거는 전혀 없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져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된 최초의 인류가 아니라고 주장할 만한 근거도 없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았고, 뱀의 유혹을 받아 죄를 범해 추방당했고, 아이들을 낳았으며, 죽었다는 주장이 틀렸다고 말할 만한 증거도 전혀 없다. 그뿐 아니라, 사실 창세기는 모든 인류가 아담과 하와만의 생물학적 후손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가인이 두려워했던 사람들, 가인이 결혼했던 여자는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흙으로 창조되었는지, 이미 존재했던 다른 생물체로부터 생겨났는지, 아니면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 조성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밀턴과 다윈을 모순되지 않게 양립시키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밀턴(또는 창세기)이 아담과 하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중에 다윈의 진화론과 모순되거나 반박될 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 얽히면서 드러나는 큰 그림 
어떤 사람들은 이런 사안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목소리를 낸다. 존 스토트, 데렉 키드너, J. I 패커, 팀 켈러, 프란시스 콜린스가 그들인데 그들은 거의 모두 똑같은 접근 방법을 취해왔다. 하지만 이런 입장을 애매모호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무비판적으로 과학을 받아들이는 이들을 자유주의자로 여긴다. 다른 일부는 무비판적으로 성경을 수용하는 사람들을 보수주의자로 본다. 나는 두 호칭으로 모두 불려봤는데,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류 기원에 대한 연구를 해나가면서 위에서 언급한 모든 과정을 면밀히 살폈다. 물론 성경 연구가 가장 중요한 작업이었다. 다시 말해, 나는 문헌들과 성경을 읽으면서 그 진의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난해한 부분이 나오면 의문을 가져보고, 그런 다음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가 그 의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필요하다면, 유화 속 인물들의 사상을 더 면밀히 살펴보기도 했다. 기원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시적 접근법, 변증적 접근법, 과학적 접근법을 통합하는 것이며, 그러한 접근법들이 성경 텍스트를 어떻게 밝히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창세기가 말하고 있는 바를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복종하고 그것 안에서 기뻐하는 것을 의미한다.

언젠가 우리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정확히 알게 될 것이며, 밀턴, 페일리, 다윈의 말들 중 어디까지가 진실이었는지를 알게 될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찬양 행렬에서 당신과 만나게 될 것이다.
 


앤드류 J. 윌슨  「정말 하나님이 하셨다면?: 진리, 기원, 구속을 크게 경탄하며」(If God, Then What?: Wondering Aloud about Truth, Origins, and redemption)의 저자.

출처:크리스채너티투데이 한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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