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년 만에 백발이 되다
[에세이] 3년 만에 백발이 되다
캄보디아를 떠나고 싶어서 "아프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 이영룡
  • 승인 2019.02.22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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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빈민촌에서 3년째 사는 동안 검은 머리가 모두 백발이 되었다. 중국 영화에서 보는것 처럼 흰머리를 흩날리는 백발 노인이 되어 마침내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영양실조와 극심한 불안과 살벌한 공포와 계속되는 초조와 극심한 스트레스와 열악한 환경속에서 살아서인지 모든 검은 머리가 흰머리가 되었다.

그 동안 빈민촌에 살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번민했으면 이렇게 백발이 되었을까. 거울 앞에 서서 새 하얗게 변한 머리카락을 볼 때 마음이 침통해졌다. 동네 아이들이 할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벌써 할아버지가 되다니.......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대로 대책없이 무한정 살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발이 된 머리를 본 다음부터 한동안 잊고 살았던 '탈출'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 올랐다. 하루 빨리 도망가자. 이렇게 살수는 없는 것이다.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도망갈 마땅한 명문이 서지 않았다. 적당히 아프지 말고 더 많이 아프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차라리 더 많이 아프게 해 주세요. 누가 보아도 이 어려운 지역을 아파서 떠난다는 것이 정당하게 여겨지도록 많이 더욱 더 많이 아프게 해 주세요. 간절한 기도 제목이었다.

이렇게 방황하는 어느날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우체국에 갔다. 캄보디아는 우체부가 없다. 모든 편지나 우편물을 받고 보내기 위해서는 우체국에 사서함을 이용하여 받아야 했다. 전화나 팩스를 사용하고자 할때는 우체국까지 가야 했다. 어쩌다 한번씩 우체국에 가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고 편지가 오거나 소포가 오면 한국에서 가족이 오는 것 같았다.

우체국에 가는 것은 내 생활의 일부분이었고 편지가 오면 큰 소리로 몇번이고 읽었다.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 서서히 한국말을 잊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편지가 오면 혼자 소리 내어 읽었다. 가끔씩 한국에서 걸려오는 전화 외에는 한국말을 몇달이고 사용하지 않아 한국어 단어가 잘 또 오르지 않아 편지를 큰 소리로 몇번씩 읽었다.

큰 소리로 한글 편지를 읽어도 내 곁에는 한국말을 알아 듣는 사람이 없어 아무리 큰 소리로 읽어도 괜찮았다. 어쩌면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애절한 몸부림이고 간절한 짜증이자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고통스러운 앙탈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참 후에 혼자 주저 앉아 "한국으로 가고 싶어요" 라고 흐느끼곤 했다. 정말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내 조국 한국으로 가고 싶었다. 하나님은 왜, 사랑하는 내 조국으로 가는 것을 막고 계시나요.

이영룡 캄보디아 선교사

1997년부터 캄보디아 빈민촌에서 선교사를 시작해 현재까지 20년이 넘도록 캄보디아에서 사역하고 있다.
면류관을 얻을 때까지 100% 손해보고, 100% 적자를 각오하는 것이 선교지만, 나중에는 100% 열매를 맺는다는 각오로 캄보디아 빈민들을 섬겨왔다.
저서로 '따뜰락 빈민촌의 행복한 선생님', '착한 말꾸들', '낯선 땅 낯선 사람들'이 있다.
홈페이지 : www.hopecambodia.com , e-mail : hosoca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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